가을무 싹이 올라온다.

달골 풀을 매다.

대체의학모임을 하다.

그런데... 그냥 했다.

기운이 다 나간 몸은

무슨 비장함으로서가 아니라 그저 당면하면 당면하는 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먹되 안에 들어가 날것 그대로 있다,

쑤셔 넣은 자루의 무엇처럼 그리 있었다...

사람을 보내는 일이 그러했다.

절친한 벗이 세상을 버렸다.


흙날엔 비 흩뿌리는 대아수목원에 있었다.

주말이 왔고, 방문하기로 약속한 대로 간 걸음이었다.

콩밭이던 달골 묵정밭에

채플이든 명상센터든 햇살과 바람이 따스하게 노니는 치유정원을 꿈꾸고 있는 여러 해,

가끔 그곳을 위해 여러 정원을 둘러보고는 해왔다.

그런데 수목원까지는 동행인의 차로 갔으나

들머리에서 그만 몹시 앓아 쓰러지다시피 의자들에 길게 누워버렸다.

누운 것은 한동안의 내 언어이기도 했고, 움직임이기도 했다.

떠난 사람을 따라 말도 가버려 최소한의 말만을 하며 한 주를 보냈다.

내일부터 가을학기 시작인데, 움직여야 하는데...


달날 겨우 가을학기를 열었다.

가마솥방에 물기 없는 화분들이 보였다.

물을 주었다.

그렇게 눈이 보이는 일을 하며 학기를 시작했다.

위탁교육 전까지는 바깥수업만 챙기면 되니,

두어 가지 관내에서 해야 하는 일을 더하더라도

다소의 시간은 벌어져있을 테다.

사람들과 학기를 여는 찻자리도 없이 문을 연 가을학기.


혹시 아픈 건 아니냐, 글이 왜 자주 올라오지 않느냐,

전에는 자주들 물었고, 그나마 뜸한 글이 잦으니 물음도 그만큼 잦아들었는데도

그래도 여전히 그 말을 안부삼아들 넣어오고는 한다.

갈수록 할 말이 없고 그만큼 쓸 말도 없다.

사람까지 하나씩 보내는 일의 주기가 더 짧아지는 나이여서만은 아니다.

마감이 닥쳐서야 글을 쓰는 오랜 습이 사라지진 않았지만

그렇게 몰려서 하면 달아오른 말들이 튀어나오며 글이 되기도 했지만

그마저의 쏟던 힘도 바람 빠진 풍선처럼, 이제는 팽팽하던 기억을 잃고 쭈글쭈글해져 늘어진 그 고무풍선처럼

그리 맥빠졌다.(제발 삶이 그리 맥빠졌다고 치환되는 문장은 아니길)

다른 건 몰라도 누리집의 물꼬요새만은 챙겨야지,

그것조차 날이 길어진다.

안 쓰니 더욱 안 쓰게도 되는 듯, 모든 일의 습관이 그러하듯이.

쏟아지는 말들이 너무 많다.

아무리 안 보고 안 읽는다 해도 어쩔 수 없이 노출되는 글들을 읽으며

눈에 닿는 매체들의 무수한 말들에 지치고, 넘치는 말들에 치인다.

나까지 거기 보태랴 싶은 핑계를 달고 글은 더욱 글이 되지 않고.

하지만 환상을 키우지는 않게, 그러나 잊히지는 않도록 하는 물꼬의 언론매체 만나기의 원칙처럼,

그렇게 잊혀서는 안 되는 물꼬의 필연이 또한 있기에

오늘도 어찌어찌 한 줄을 써보려...

끄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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