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9. 8.불날. 맑음

조회 수 669 추천 수 0 2015.10.01 08:11:55


움직여야 한다, 마치 그러지 않으면 얼어 죽는 혹한의 눈 속에서 길을 잃을 것처럼.

하면서 힘을 내야 한다. 그래야 힘이 난다.

지난 열흘, 생사람을 보내는 것마냥 불시에 죽어버린 사람을 보내는 일이 쉽지 않았고,

기운이 다 빠져있는 위로 배앓이가 심했다.

깨어있는 건지 잠 속인지 물에 둥둥 떠다니는 것처럼

이승인지 저승인지 경계가 흐릿하기도 하고

내가 한 말인지 내가 한 생각인지 구분이 되지 않고

의욕 없이 그리 시간이 흘렀다.

그래도 밥을 먹고 해우소를 가고 더러 전화를 받고

그리고 눈에 보이는 마당의 풀을 뽑기도 했다.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다는 말처럼 웃는 게 웃는 게 아니고 말하는 게 말하는 게 아니고.

언제까지? 지금까지! 이제 일어날 때.

움직이면서 생각하기.

지난겨울 자유학기제 기획서를 쓰던 무렵 혹독하게 아팠던 위가

더 심해진 강도로 찾아왔고,

자가진단과 자가치료를 넘어 이제 병원을 기대어 상태를 알아야 하잖을지 싶은 지점.

웬만해선 병원 치료를 할 뜻이 없다 해도 그 다음은 그 다음이고.


달골 널려있는 것들을 정리하고

학교 부엌으로 가 냉장고를 좀 들여다보고

교무실로 이동.

밀려있는 일을 또 얼마나 많을텐가.

우선 달골에 할 측량 관련 날을 받아야 한다.

군청으로 전화부터 돌리기.

여러 군데 밀린 전화만으로 오전을 다 흐른다.

오후에는 고래방 뒤란의 꽈리를 몇 뿌리 달골로 옮겨 심고

달골 햇발동 부엌 앞 넘어지던 개나리줄기들을 잡아주었다.

벌레 다 먹은 잎들 사이 새로 뻗어 오르던 가지들이 데크에 널부러지고 있었다.

남도에서 집안 어르신 한 분 흑마늘을 만들어보내셨다, 위를 앓는다 하니.

얼마 전엔 마늘을 찧어 꿀에 재운 것도 왔더라니.

다시 교무실로 돌아가 일을 이으니 6시까지 꼬박이었다.

퇴근해야지...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나날을 이어갈 수 있기를.

상담이며 메일이며 수업이며 기다리는 일들이 포화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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