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위해 불어준 바람에 나도 달디 달았다...

들에서 허리를 펴는데 바람이 불었다.

너, 농사짓는 너를 위해 부는 바람 내가 덤으로 맞네 생각한 순간

‘산위에서 부는 사람 시원한 바람/ 그 바람은 고운 바람 고마운 바람/

들판에 농부들이 추수를 할 때...’

노래의 그 바람이 아, 이 바람이었구나,

그 바람이 내게 이르는 데 삼십년도 더 흘렀다 싶더라.

시간이여!


오전에는 고추밭에 있었다.

아직 남은 고랑이 여럿인데 손이 더뎠다.

더 일찍 시작했어야 했거늘, 들에서 일하다보면 꼭 드는 마음.

오후에는 달골에서 쌓인 장작을 잘랐다.

장순샘과 학교아저씨와 창고동으로 들이고 쌓았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밤, 그림 하나 잡았다.

마당을 지나 돌계단으로 저 너머에 이르는 풍경인데,

돌의 질감이 살아나지 못하고 색만 여러 가지 거듭 칠하곤 했는데

오늘 미리 안에 칠했던 색을 살리니 돌의 표정이 풍부해졌다.

우리가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보낸 시간들이 그처럼 헛된 게 아니다.

살면, 어떤 식으로든 그 삶이 하나의 벽돌이 되기도.


보육원에서 위탁교육 신청, 9월에 열흘로 잡아놓은 일정에.

망설인다.

지금 힘이 좀 달리는 까닭도 있지만,

인근 도시를 건너가 주에 세 차례 상담을 시작한 아이가 있는데,

위탁교육 기간에는 아이들과 하는 특별한 나들이가 아니라면 산마을을 나가지 않고

그 기간 동안에 있는 바깥수업이며 모든 바깥 일정을 일단 멈추고

오직 이 안에서 스물네 시간 아이들과 머무르니

결국 어느 쪽 아이가 더 급한 문제를 지니고 있는가가 관건.

하루 이틀 말미를 가지고 결정키로.


입안은 또 헐었다.

지난 한 해도 자주 입 안 사정이 그러했다.

사람을 잃고 속은 속대로 통증이 오더니 입안도 그렇다.

밤 10시부터 새벽 2시까지 주로 하는 책상 앞의 작업을 못한지 긴 날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이 그저 잠 속으로 빠져든다.

하나는 안다, 이대로 아주 손을 놓지는 않으리란 걸.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4774 2015.10.31.흙날. 맑음 옥영경 2015-11-23 683
4773 2016. 3.26.흙날. 맑음 옥영경 2016-04-11 683
4772 2016. 4. 8.쇠날. 갬 옥영경 2016-04-14 683
4771 2016. 6.21.불날. 흐림, 하지 옥영경 2016-07-16 683
4770 2016. 8. 4.나무날. 뫼르소의 태양 옥영경 2016-08-10 683
4769 2016.12.21.물날. 비 옥영경 2016-12-30 683
4768 164 계자 닷샛날, 2019. 8. 8.나무날. 소나기 / 민주지산(1,242m) 산오름 옥영경 2019-09-10 683
4767 2021. 8.22.해날. 맑음 / ‘멧골책방’에서 책 대신 잔디 옥영경 2021-08-29 683
4766 2014. 6.18.물날. 가끔 흐림 옥영경 2014-07-04 684
4765 2014. 6.29.해날. 오후 몇 방울 비 옥영경 2014-07-16 684
4764 2014. 9. 3.물날. 흐리다 빗방울 잠깐 지나고 옥영경 2014-10-06 684
4763 2015. 2.19.나무날. 맑음 옥영경 2015-03-13 684
4762 2015. 3.31.불날. 흐리다 비 옥영경 2015-04-29 684
4761 2015. 5.12.불날. 갬 옥영경 2015-07-01 684
4760 2015. 6.14.해날. 아침 쥐꼬리 소나기 옥영경 2015-07-20 684
4759 2015. 7.15.물날. 맑음 옥영경 2015-08-02 684
4758 2015.11. 9.달날. 맑음 옥영경 2015-12-04 684
4757 2016. 6.22.물날. 흐림 옥영경 2016-07-16 684
4756 2016. 7.16.흙날. 비 옥영경 2016-08-06 684
4755 2019. 5.10.쇠날. 맑음 / 10년을 정리하네 옥영경 2019-07-09 684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