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9.17.나무날. 맑음

조회 수 651 추천 수 0 2015.10.16 08:34:39


기온차 심하고

하늘은 높고

가을이다.

날이 힘을 내기 다행하다.

벌써 스무 날에 이른다, 사람 하나 황망하게 보내고 힘이 다 빠져나가기.

이렇게 영영 생의 발랄함이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단 생각이 간밤에는 들더니

아, 이 찬란한 아침이 고마울세.


아희야, 외롭고 힘들고 슬플 때 너는 어이 견디느냐.

그걸 발견할 수 있다면 된다.

늘 견뎌내야 하는 삶이라면 힘에 부치겠지만 어디 우리 삶이 언제나 그러하더냐.

다행하게도 우리 삶엔 소소한 기쁨들도 있을지라.

그것이 영화일 때도 있었는데,

최근 한 벗 덕에 다른 즐거움을 가졌다.

산골에 아주 들어와 살게 되면서 활자로부터 멀었다.

책 잘 안 읽었다는 말.

그럼에도 가끔 아이들에게 책을 아주 읽지 않는 사람이지 않을 수 있었음은

젊은 날 읽었던 덕.

흔히 고전이란 게 너도 읽고 나도 읽고 아비가 읽고 자식이 읽는 책이니

다행히도 얘기가 가능했던.

게다 신간 소식에 귀기울이거나 가끔 읍내 도서관 서가를 거닐기도.

그렇지만 말 무성한 삶의 꼴에서 몸에 더 집중하면서 책이 아주 멀었던.

그런데 요새 책 좀 쥔다.

이렇게 마음 어두울 때도 숨어들어 웅크리기 좋은 둥지.

바느질도 같은 까닭 되었다.


이웃마을 어르신네 건너갔다 왔다.

당신들의 어깨를 안마하며 내 어깨를 거기 두었으니.

우리가 견딜 방법은 얼마나 많은가.

어르신들은 유기농으로 키운 사과와 포도와 사과즙을 실어주셨다.

이웃 벗네에선 바구니 가득 가지와 해바라기 꽃이 왔다.

내일부터 이틀 사람들을 맞을 것이고

거기 장식할 꽃을 부탁했더랬다.

새벽 1시쯤 학교를 나오다 정리해둔 쓰레기를 봤다.

내일은 아무래도 바쁘겄다. 본 김에 하기, 산골 너른 삶을 사는 방법 하나이다. 지금 하기.헌데 누구라도 이리 손이 되어줄 때 일은 얼마나 수월한가.

기락샘이 움직여주었다.


몇 편의 짧은 글을 올리려 물꼬 누리집에 들어간다.

너무 오래 방치하고 있다.

메모해두었던 글을 문장화하고 올리려니 인터넷이 움직이질 않는다.

시계는 새벽 세 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쉬라는 거구나, 쉬게 하는구나.


아, 오늘 사람 하나 다녀갔는데, 10년 전쯤의 어느 한 때를 생각했다.

그런 적 있었다. 한 때 세상 시끄럽게 헤어져야 했던.

옥선생님 혹은 옥샘은 옥영경씨가 되고 옥영경이 되더니 옥C로 불렸더라 한다.

사람의 호칭은 그런 거다. 관계를 반영하는.

쉽지 않은 10년이었다.

그러나 한편 순조로웠고 평탄했고 행복했다. 10년 전 그 일만한 일의 경험이 우리 삶에 그리 잦겠는가.

때린 놈은 뻗고 자고 맞은 놈은 평생을 멍들었다, 서로에게 그런 것이기라도 하였던가.

때로 헤어지는 게 낫다, 옳다. 잘 헤어졌다!

살면서 그보다 어떻게 더 악하게 헤어질 수 있었나 싶어도

거기서 끊을 수 있었던 인연이 행운일 수도 있으리, 더한 꼴 안 보고.

그리하여 서로 행복했으리.

그런데, 그런데, 그래도 아름다웠던 날들 있었고, 그리움은 그리움대로 남기도.

그게 사람의 일일지라, 사람의 마음일지라.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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