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비 다녀간 아침이었고,

흐리다 오후 또 비 내렸습니다.

이른 아침 ‘아침 뜨락’부터 다녀옵니다.

달골에 만들기 시작한 치유정원을 그리 부릅니다, 제대로 이름을 갖기 전까지.

꼭지에 연못이 있고,

남쪽 가장자리 쪽으로 ‘광장’이 있습니다.

바위 강단이 있으며 그곳을 반원으로 둘러친 돌의자들이 몇 겹으로 층을 이루고 있지요.

그리 크지 않은 나무 몇 그루가 그 바깥으로 안정감 있게 그늘을 드리우고,

그 아래로 또 다른 나무 한 그루가 주제처럼 자리를 잡았습니다.

서서히 그림을 그려나가리라 합니다.

꿈꾸는 일은 즐거운!


아래 위, 그러니까 달골과 학교 청소.

10월 위탁교육 이레를 엽니다.

보육원에서도 오고 일반가정 아이도 있고.

하지 못했던 한 아이의 아버지와 짧은 면담.

“식사는 잘하고 계셔요?”

“자식을 먼저 보내는 것만큼 슬픈 일이 없다지만

 배우자를 잃는 상실감이야말로 가장 견디기 힘든 일인 것 같습니다...”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쓸쓸함이 눈물처럼 배나오는 음성이었습니다.

사랑하지만 헤어질 수밖에 없는 관계들이 있습니다.

서로 변할 수 없음을 아니까...

“애들 걱정할 것 없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생명력으로 잘도 살아나갈 것이니.

우리나 잘 삽시다. 우리가 행복한 게 중요해요. 그래야 아이들도 행복합니다.

뭘 어줍잖게 가르치려들지 말고 우리 삶에 집중하기로!

잘 데리고 있다 무사히 보내드릴게요.”


아이들에게 하루흐름을 안내하고,

같이 학교 뒤란으로 돌아가 밤을 주웠습니다.

저녁 밥상을 아이들도 돕느라 감자를 깎고 양파껍질을 벗기고.

밥상을 물린 뒤 그림명상을 하고 하루재기를 하고 날적이를 쓰고.

태풍 오듯 온 바람으로 마음 조금 신산했으나

달골 따뜻한 거실에 모여 우리가 보낼 날들(기본 일정 외에는 서로 논의할)에 대해 들려주고,

실타래(상담쯤 되려나요)를 풀었지요.

아이들을 잠자리에 보내고 상담자료를 보며 마음 먹먹해졌습니다,

이 아이들을 어쩌나.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묻습니다.

좋은 마음으로 잘 먹이고 잘 재우고 잘 듣고 기도하는 것 말고 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그림명상 때 아이 하나 얼굴이 구겨졌더랬지요.

“망쳤어요!”

“해보고!”

최상일 수 없을 수도 있지만 최악이 아닐 수 있게 더 나아가 보기로 합니다.

최상이지 못할 때 우리는 버렸다고, 망쳤다고 하지요.

그래도 가보면 최상은 아니어도 뭔가 얻을 수도 있지 않겠는지요.

오늘 그림은 그러했으나, 그 그림을 던지지 않고 내일 또 이어가기로 했답니다.


십여 년 만에 한 선배 교사와 통화.

뜻밖에 남겨져있던 교무실의 자동응답기.

어제인 듯했습니다, 헤어진 지. 이심전심이었으리 합니다.

부산의 한 풍물모임에서 물꼬 이야기가 나왔던 모양이고,

어느 여선생이 물꼬 없어졌다 하더랍니다.

“어, 한 번씩 홈페이지 들어가는데, ...”

안 들어간 얼마 사이 정말 무슨 일이 있는가 하고 학교에 전화 넣었다 했습니다.

가지고 계신 제 번호는 오래 되어 바뀌었으리 하고 문자 남길 생각도 못했다는.

음, 그랬군요.

아마도 입학하고 졸업하는 상설제도가 없어졌으니 그리 전달되었던 모양.

하하, 어쨌듯 물꼬는 여전히 나름의 가치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요.


쓰고 나니, 오늘은 무슨 바람에 합쇼체 문장을 쓰고 있군요.

마음이 결연해질 때 해라체가 되더니

또 다른 결연함에서 또 합쇼체가 되기도.

뭐 이래도 저래도 지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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