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온 0도.
바람이 몹시 불었고, 쑤욱 차졌다.
연탄 천 장이 또 들어왔다. 앞서 천 장이 왔더랬다.
땔감은, 올해 쓸 것들은 있다.
오후, 학교아저씨가 기락샘이랑 류옥하다랑 학교 본관 뒤란 비닐을 쳤다.
제도학교를 다니는 아이는 그렇게 틈틈이 산골살림을 살펴준다.
이제 무말랭이를 만들고 무시래기를 말릴 일이 남았다.
마지막으로 김장.
(쌀은 벼농사를 놓은 지 여러 해니 갈무리 운운할 것 아니고.)
그리되면 눈에 갇히는 날도 걱정이 없을.
'옥선생님, 제가 먼 길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멕시코로.'
'얼마나?'
'기약은 없습니다.'
그리고 오늘 갔다,
결정하고 한 달도 안 된 시간동안 직장을 그만두고 여행을 하고 가방을 싸고.
차마 보지 못했다. 목소리도 듣지 않았다. 문자만 남았다.
그 누구보다 나를 인정하고 이해하고 정리해주던 선배를 황망히 보냈고,
한 때 운동가요를 만들다 절집으로 들어가 스님이 된 선배를 보냈고,
그리고 이제 그를 멀리 보냈다.
두어 달 벗들을 그리 잃고, 쓸쓸하였네.
20년 전 가장 가까웠던 벗을 백혈병으로 보내며
슬픔보다 그가 없는 세상이 쓸쓸하여도 나는 이적지 살았고,
보내고 보내고 또 보내고도 이리 살았네, 살아있네.
아무쪼록 몸 보전하시라. 언제고 다시 오시라.
약이 왔다. 비위를 앓고 있었다.
간간이 그 소식 듣고 있던 한의사인 벗이 보냈다.
남도에서 어르신이 보낸 것이며 이웃에서 준 것이며
좋다는 음식들이 있었지만 별 차도가 없었다.
‘뭘 하나 보냈어요.
흑마늘이며 당도하는 것들이 있는 것 같아 미루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약을 좀 써야지 않을까...
칡즙은 하루 한 봉만 드시고
아님 두었다 드셔도 되구요.
멋대로 보내는 약이지만 부디 차도가 있으시기를.’
그의 말은 늘 시이고, 그의 글 또한 그러하며, 그 앞서 그의 마음이 시라.
먹먹했다. 누가 내게 그리할 것인가.
당신이 또 나를 살리나니, 적막한 삶이더니.
그는 알까, 모두 보내고 달랑 당신만 남겨놓은 내 삶인 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