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8일 쇠날 가벼워진 옷

조회 수 1153 추천 수 0 2005.03.21 21:33:00

< 3월 18일 쇠날 가벼워진 옷 >

"그렇다면 낼은
우리 입에 들어오는 수돗물이 도대체 어디로부터 오는지 가보자."
"그럼, 서울로 가요?"
비단 정근이만이 아니었지요.
상수원을 가리라 하니 대번에 서울일 거라 짐작하는 아이들입니다.
우리 살이의 대부분의 중심은 서울이라 생각하는 게지요.

상수원을 찾아갔습니다.
이 대해골짝 큰길 따라 돌고개 마을로 오릅니다.
봄이 오느라 대지가 어찌나 요동치는지
요샌 바람 없는 날이 없습니다.
마침 밭에서 일하시던 성길이 아저씨네 아줌마를 만나
물탱크가 어디에 있는지 다시 확인을 했더라지요.
"석현 가다가 새마을 지나면 바로 있어, 길 위에."
한참을 오르다 북쪽을 등진 벽에 기대고 모여앉아
들고 간 간식거리를 부리니 이젠 먹는 걸로 싸우는 일은 줄었네요.
"아무래도 지나친 것 같애."
물탱크까지 길을 안내하던 이 동네사람 류옥하다는
길을 만드느라 달라진 풍경에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다시 길을 아래로 잡아 대해리와 석현리 가운데 있는 새마을을 막 향하는데,
아이들이 소리를 쳤더라지요.
"저기요!"
"물탱크다!"
작년에 상수도사업소에서 다시 정비한 곳입니다.
같이 뚜껑을 들고 안을 확인합니다.
"열쇠를 채워놓지 않아도 돼요?"
당장 누구라도 우리의 물줄기를 해할 수 있다는 생각에 미치나 봅니다.
"시멘트예요."
돌을 쌓아 했어야 잖을까...
우리는 나중에 달골에 물을 어떻게 모으고 어떻게 내릴지를 생각해봅니다.

다시 그 탱크의 물이 어디로부터 시작되고 있는지 찾아오릅니다.
아직도 얼어있거나 눈이 남은 시내를 오르고
그러다 길이 툭 끊어지거나 도저히 사람 발 길 들일 수 없으면
나무숲길 경사지를 기어 올라가 상수원 가는 닦은 길을 걷습니다.
버들강아지가 자주 우리를 불러 세우고
험한 길이 우리를 어깨 겯게 하네요.
"무슨 살아남기(요새 한참 우리 아이들 읽는 무슨무슨 살아남기 과학책)
같애요."
"이렇게 공부하는 물꼬가 좋아요."
"탐험을 하는 것 같애서 가슴이 떨렸어요."
다음 시간쯤엔 수도를 관리하고 계신 어르신들과 좌담회를 하려지요.
내려오는 길엔 물어볼 것들을 정리해 봅니다.
얼마마다 관리하는지,
누가 하는지,
관리비는 무슨 돈으로 하는지,...

하우스로 몰려간 아이들은 씨를 뿌렸습니다.
상추 쑥갓 들깨를 어찌 뿌리는지 안내를 받고
저들끼리 뿌렸답니다.
시금치는 막대를 찔러 씨앗 두 셋을 넣고,
나머지는 그냥 솔솔 뿌렸다데요.
게다 재를 뿌리는 걸로 마감을 했답니다.
더러는 빗자루로 살살 쓸며 흙까지 잘 덮었다지요.
어른들은 아래 다랑이밭을 정리하고.

가마솥방에서 영어가 있었습니다.
부엌살림이 주제였지요.
실제 사전에 있는 것과 다른 낱말, 그러니까 현장어도 알려줍니다.
미국에 산 경험이 이럴 땐 또 도움이지요.
재밌어들 했습니다.
'재미'는 공부의 중요한 요소임에 틀림없다마다요.

돌아서면 배가 고픈 류옥하다 선수가,
클려고 먹성이 더하거든요,
불 때는데 와서 뭐 먹을 것 없냐 물어옵니다.
푹한 날 새참시간에 꺼내려고 간장집 냉동실에 얼려둔 요걸트가 있었지요.
하나 주고 모자라면 나가는 길에 사다 놓지 하고
꺼내주었습니다.
"몰래 먹는 건 싫어.
차라리(내가 먹는 양이 개미 눈꼽 만큼이라도) 나눠 먹으면 모를까..."
도로 넣어뒀지요.
여덟 살이 되더니 온 변화입니다.
작년엔 아이들로부터도, 유치부라고 설거지에서도 빠지고
먹는 것도 혹 하나 남을라치면 제 차지였거든요.
아비가 미국에서 와 있을 땐
슬쩍 초코파이 하나도 얻어먹더니만...
아이들이 그렇게 성큼성큼 크고 있답니다, 여기.

정미혜님이 지섭이랑 물날 아침까지 가마솥방일을 도운다 오셨고
품앗이샘들(오승현 김상운 염현정 박혜진 김주연)이 오셨습니다.
정말, 정말 신비하기까지 한, '돌아가는(살아가는)' 물꼬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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