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겨울 밤하늘의 보름달은,
서구에선 성탄에 보름달이 뜨면 럭키문이라 한다지, 38년만이라던가,
더욱 팽팽하다.
벽소령에서의 저 달은 얼마나 더 크고 밝을 것인가.
해건지기 뒤 차를 달이는 이른 아침이었다.
네팔에서 온 차를 벗이 나누어주었다.
닐기리 어디쯤에서 부는 바람 같은 향.
목공실로 가 있던 부러진 상다리도 고치고,
아이들 와 있을 적 갑자기 물에 문제라도 생길까 예비용 물통을 비워내고 씻고 다시 채워두고,
버렸던 다림판을 결국 다시 들여와 천을 씌우려 재단하고 바이어스 테잎을 찾고,
손에 잡은 김에 옷가지 몇과 베개와 이불 끝단 재봉질.
그리고, 류옥하다랑 옷방 정리.
계자 앞두고 먼저 들어온 두 엇의 선생들이 가장 힘겹다는 일이 옷방 이불방 정리이라
이번엔 덜 힘들라 미리 먼저 손 한번 거치기.
그 방에서 제 입성을 골라오던 아이라 제 옷방 정리하듯
보이는 이불들이며 저 안 쪽 구석 여러 계절 손이 닿지 않은 곳까지 뒤집어 먼지를 털어낸다.
일을 맡기면 걱정이 없는 친구이다.
학교를 가지 않고 오래 산골에서 살아낸 아이가 그마저도 야물지 못하면
다른 아이들이 학교 다닐 고생에 견주어 너무 편안했지 않았겠는가.
“이런 날도 일해?”
“사는 일이 그렇지. 이게 ‘성탄’이지.”
저 먼 옛적 인류에게 걸어와 사랑과 자비를 전했던 소식을 우리 경축하는 날이
불탄일이고 성탄절이지 않더뇨.
기표샘이 겨울 계자 건으로 연락을 했다.
물꼬의 일이 그러하다.
출근하고 퇴근하는 일이 있는 직업 공간이 아니라 그저 사는 공간이니.
밥도 하고 청소도 하고 그런 일상이 함께하는 곳, 사는 곳!
게다 내일부터 주말 이틀은 겨울 청계,
열둘의 청소년들이 달려온다.
한 사람이 쓰러졌다. 덜컥했다.
혹여 스스로 목숨을 저버리려 했는가.
그 죽음을 바라볼 사람들의 가눌 수 없는 슬픔을 어이 볼 수 있을까,
지레 겁이 났다.
다행히 호되게 아픈 마음이 몸으로 간 것.
그래야 한다와 그렇게 되지 않는 자신 속에서 일어난 충돌은
그예 사람을 쓰러뜨리고 말았다.
떠나간 사랑과 그 사랑을 보내지 못한 사람의 이야기가 거기 있었다.
산으로 떠난 사람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고,
산 아래 남은 사람은 그렇게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갔다.
그는 영혼을 두고서야 병실을 나왔네.
시간이 필요한 일들이겠다.
삶의 의욕을 잃은, 그것이 꼭 개인 삶의 내용 탓이기만 할까, 시절까지 우울하니,
사랑을 안고 인류에게 왔던 성인의 품에서 오늘은 위로 받으시라.
그리고, ‘죽을 힘’을 다해 살기로, 살아보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