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비가 많았다. 아침에도.

낮, 환하게 여우비처럼 내리는 비, 봄비라 할 만.

여기는 봄이 너무 길어, 섬진강에서 온 한 전화가 그랬다만

여긴 그곳의 봄처럼 길고 긴 겨울,

그 끝자락인 갑다. 마을 어귀에서 봄 서성인다.

마을에서 모임이 있었고, 학교아저씨가 다녀오다.

‘스무하루 동안의 치유 일정’ 가운데 사흘째.


상담이 있었다.

일상을 함께하면 순간순간이 죄 상담이겠지만.

문제가 생겼던 지점을 차갑게 바라보기.

원인 분석, 그리고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지 머리 맞대기.


산골에서 비 내리면 좋다.

일단 일로부터.

그렇다고 안에서 할 일까지 없는 건 아니나

적어도 계획한 바깥일로부터는 놓여난다.

해건지기를 시작으로 아침을 열고,

덕분에 책을 더 읽고 영상물 하나 보고.

세월호 항적에 대해 이야기 나누다.

언론에서 통제된다면(한다면?) 이렇게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계속 이야기 되어야하리.

이것이야말로 잊지 않는 것.

그리하여 어느 날엔

우리 아이들을 그렇게 바다에 빠뜨린 사람들을 불러낼 수 있을 것.

그렇게 허망하게 떠난 우리 아이들이 그 진실을 밝히는 일을 도울 거라는 생각.


밤, 안개에 잠긴 마을을 헤쳐 다녔다.

전화 이야기를 꺼내다.

잠시 다녀가는 게 아니라 꽤 긴 날을 예서 보내는데,

아무래도 수행하는데 손전화를 치우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아이는 울음을 터뜨릴 정도로 난색을 표했다.

여긴 TV도 컴퓨터도 없다.

그나마 밤에 만지는 전화기가 얼마나 위로일까.

더구나 일상관계보다 sns에 더 의지하는 이라면.

설득했다, 조금 유치하게.(쪼잔하게, 는 사전에 없는 말이던가...)

네게 누가 아무 조건 없이 모든 정성을 쏟겠다는 이가 얼마나 있느냐,

자신의 이익들을 포기하며 너를 향해 그런 이웃이 있느냐,

그나마 한 해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홀로 여행 짬이 나는 2월

그것도 포기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보내는 시간도 포기하고,

강의도 포기하고(이건 경제적 이익을 포기하는 것이기도),

두어 곳에 가서 하기로 한 공부도 포기하고,

주마다 하고 있는 두어 개의 모임도 포기하고,

그런 만큼 너의 복학을 위한 준비를 같이 하려한다, ...

결국 동의를 얻어낸.

아이들은, 뭐 마흔 다 된 어른들까지 그리 부른다, 늘 그리 고맙다.

이곳에서 그들은 낡고 불편한 생활과 함께 많은 유혹들과 싸운다.

어쩌면 이곳에서 보내는 삶은

그 유혹으로부터 놓여나기, 혹은 그 유혹 떠나보내는 시간.

그래서 우리 삶을 둘러친 다른 일들에 눈 돌려보기,

그리하여 삶에 다른 가치관을 생각해보는 그런 시간.


바깥사람이 하나 들어오면,

타인이 있는 밥상은 아무래도 신경이 쓰인다.

세 끼 밥을 해멕이는 일이 퍽 마음 쓰이는.

(“살쪄서 가겠어요.”

오면들 흔히 그런다.

때마다, 그것도 꼬박꼬박, 더하여 참을 먹기까지, 건강한 음식을 바로바로 만들어먹으니.

집에서 밥 먹는 것 드물다는 얘기를 들을 때도 있고,

아예 반찬을 대놓고 꾸러미로 대먹는 집들도 흔하더라.

직장 다닌다면 그럴 만도 할 것.)

더구나 평소 워낙 간소하게 먹던 밥상이고 보면 더욱.

우리 젊은 선생들이 그립기도.

한 끼쯤 밥을 해먹는 일만 해도 일을 던다,

샘들이 여럿 와서 지낼 때면 하루 한 끼는 샘들이 그리 맡아주었더랬다.

달랑 내부 식구들만 있을 때라면 형편대로 각자가 먹기도 하고,

바깥수업이며로 나가 있을 땐 남은 이가 알아서 챙겨먹고.

스무하루 동안의 치유 일정에서 내리 예순이 넘는 끼니를 이어하는 건

적지 않은 부담이기도.

일정 가운데쯤은 학부모에게 밑반찬이며 먹을거리를 좀 부탁해볼 요량이다.

두문불출할 일정이니 더욱.

물론 그 사이 들어오는 이들 편에 부탁할 수도 있고,

산골 골짝골짝 다녀가는 황금마차(아시리. 트럭으로 다니는 마트?)도 없지 않지만.

잘 가르쳐 한두 끼쯤 밥상을 차릴 수 있도록도 해볼 참.

학습목표 하나!


겨우살이를 달였다.

멀리서 한 어르신이 직접 구한 것이다.

이 많은 걸 저 꼭대기 나무에서 잘라 내리려면 얼마나 애를 쓰셨을 거나.

달이다, 혈압으로 늘 걱정인 먼 곳의 벗을 위해.

일전에는 지리산에서 구해왔던 쑥효소를 보냈다.

그 역시 혈관 확장에 좋다지.

건강하시길.


잠 못 이루는 밤. 새벽 5시가 가깝다.

봄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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