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야 오는 줄 아는 것이 봄이다, 무슨 일인들 그렇지 않을까만.

봄인가 싶더니, 뒤척이는 밤이더니,

밤, 닷새 만에 기온은 다시 영하 10도에 이른다.

어제만 해도 영상 10도가 훌쩍 넘는 한낮이었더니.

피려고 준비하던 봄꽃들이 깜짝 놀랐겄다.

바람도 많았던.

‘스무하루 동안의 치유 일정’ 닷새째.


어제 하루 단식 뒤의 아침 해건지기.

“못할 것 같은데요.”

하지만, 했다. 하더라. 하지.

어제는 보이는 낱말마다에서 먹을거리와 연결하는 아이로 즐거웠네.

논어강독 하다가 ‘사리’가 나오자, “라면사리”,

교무실에서 쓰레기통을 지나다 아, “통닭”, ...

곡기를 끊어보면 먹는 거 귀한 거 안다.

하루 배를 비우고 힘은 떨어졌으나 얼굴이 말갛다. 예뿌다.

그러려고 한 단식이었고.

뭔가를 참아본 경험도 소중했다.


일상 건사하기는 계속된다.

아이들과 끊임없이 하는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늘 긴장하며 살 수는 없지만 정성스럽게!

설거지 뒤 행주질과 널기, 바닥 걸레질하고 빨기, 개수대 음식물찌꺼기 버리고 정리하기.

모든 허드렛일은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

(그런데, 허드렛일? 무엇이?

먹고 입고 자는 것보다 중한 일이 있겠는가.

인문학 강의를 가거나 하면 꼭 들먹이는 이야기가 있다.

민족사관고를 나오고 서울대를 다니던, 인문학지식이 어마어마하던 우리 모샘,

처음 물꼬 와서 방을 닦으러 가는 걸레에서 물이 줄줄 흘렀댔지.

그게 우리 공부하는 학생들의 현주소라고...)

우리는 고전 강독 시간을 ‘고시공부’라 일컫듯,

일상훈련의 시간을 ‘시집살이’로 부르며 즐겁다.

생활에서 어른들을 통해 자연스레 익히던 일들이

그 무엇이나 공부가 돼버린 건 아쉽기도 하지만,

그걸 또 소중하게 공부거리로 삼는 물꼬의 과정들이 의미 있는!

“아, 결혼 안할래요.”

“그런데, 누군가를 소중히 여기면 그를 위해 하게 되지. 엄마들 봐!”

쓰는 방 널어놓은 물건들 가지런히 하기,

욕실 불끄기, 문 닫기, 온수기 쓰고 끄기...

사는 일이 그리 길기도 하여라.


잘 멕였다 전해라.”

삼시 세 때 따끈하게 잘 해먹이기.

이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하지 않겠는가 한다.

정성스럽게 지은 밥, 이 밥이면 무엇이든 하리.

저녁상을 물리고 칼바람 이는 산마을 고샅길을 오늘밤도 걸었다.


끊임없이 재잘대는 아이,

틀어놓은 수돗물 소리에도 가끔 묻히고 걸레 빠는 일에도 묻히고.

“잠깐 흘려듣기에는 중요한 얘기인 걸.

저녁 하루재기 시간에 다시 한 번 자세히 해보도록.”

어떤 이야기도 흘려보내지 않으려.

그래야 그를 알 것이므로, 그래야 도울 수 있을 것이므로.


청소년 대상이라는 문학서도 같이 하나 읽다.

책이랑 벗하는 시간도 많은 한낮이다,

점심 밥상을 물리고 오후 일로 넘어가는 시간이 아주 여유 있으니.


<논어> 제9편 자한편

28 子曰 "歲寒, 然後知松栢之後彫也."

(자왈 "세한, 연후지송백지후조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다른 나무보다 나중에 시듦을 안다."


새길 조(彫)가 여기서는 시들 조(凋).

날씨가 혹독해서야 송백의 기상을 안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가 여기에서 왔구나.

살면서 우리가 만나는 논어 구절들을 책에서 확인하는 기쁨.


31 唐棣之華(당체지화), 偏其反而(편기반이)

산앵두나무 꽃이 나부끼며 뒤집히네

豈不爾思(개불이사), 室是遠而(실시원이)니라

어찌 그대를 그리워하지 않으랴만 그대의 집이 멀구나

子曰 “未之思也(미지사야), 夫何遠之有(부하원지유).”

(이 시를 읽고) 공자 말씀하시기를,

“그리워하지 않는 것일 테지. 무엇이 멀리 있다는 것인가?”


생각하지 않는 것이지 어찌 멀다 하겠느냔다.

시간이 많다고 움직이는 게 아니지.

마음이 동할 때 움직인다.

마음이 가면 없는 시간도 어떻게든 만들어내는 게 사람이다.

마음이 없어 가지 않고, 마음이 없어 오지 않는 것.

그가 오지 않는다.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가지 않는다. 그 역시 마음이 없기 때문인 게다.

아니면... 우리 늙었다.

젊음은 나이에만 있는 게 아니란 걸 우리 안다.

더 이상 불의에 분노하지 않을 때도 우리 그러할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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