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봄날이었고, 어제부터 다시 한겨울 속으로. 아침 영하 8도.

새벽과 밤, 마른 눈발 흩날렸고, 그리고 바람, 바람.

‘스무하루 동안의 치유 일정’ 엿새째,

어김없이 해건지기로 아침을 열다.

고마운 일이다, 이 아침에도 산마을에서 우리 수련하고 수행하고! 복이다.


치유 일정 가운데 한 주는 보육원의 위탁교육이 있을 예정이었다.

오늘 협의하기로는 날을 미루기로 하다.

오늘부터 바느질도 시작했다.

감을 고르고 마름질.

하루흐름 가운데 점심시간이 길다,

이른 아침부터 시작해서 밤 11시에야 끝나는 여정이라.

세 시간여. 충분히 홀로 쓰이는 시간.

덕분에 <열다섯 살의 용기>를 읽기도.

오후엔 땀내나게 밖에서 일하다.

참을 내고.


장순샘이 건너오다.

3월 1일에 끝나는 21일 동안의 여정,

우리는 끝날을 ‘삼일절 특사’라 부른다.

몽고(아이를 그리 부른다)가 붙인 이름자다.

“또 올 거니 가석방이죠!”

그래서 장순샘의 방문은 ‘면회’가 되었고,

다음 걸음에는 사식도 넣어주고 영치금도 준다나.

그래서 산골 하루를 까르르거렸다.

이전에 위탁교육기간에도 본 적이 있는 몽고를 향해

얼굴이 너무 밝아져 보기 좋다 했다.

몽고도 장순샘도 고마웠다.


<논어>강독.

우리는 이 시간을 고시공부라 일컫는다.


신영복 선생의 <담론> p.33

풀 위에 바람이 불면 풀은 필언必偃, 반드시 눕는다. 바람이 불면 청보리 밭의 보리가 눕습니다. 위정자들은 백성들이 풍화하기 위해서 시를 수집하고 시로써 백성들에게 다가갑니다. 위정자들이 백성들을 풍화風化하고 덕화德化한다고 하지만 백성들은 반대로 노래로써 풍자諷刺했습니다. 바람이 불면 물론 풀이 눕기는 하지만 그건 일시적입니다. 다시 일어섭니다.


그래서 초상지풍에 수지풍중초부림 이라 풍자하는 대구를 달고 있다고.

‘수지誰知, 누가 알랴, 너는 모르지?’

그리고 김수영의 <풀>. 바람보다 먼저 눕지만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아마 여기서 착상한듯하다고.


처음엔 그 부분을 <논어>에 실린 걸로 읽었다.

그런데, 12 안연편 19장 가운데,

君子之德風. 小人之德草. 草上之風. 必偃.

군자지덕풍. 소인지덕초. 초상지풍. 필언.

(윗자리에 있는) 군자의 덕은 바람이고 소인(백성을 비유)의 덕은 풀입니다.

풀은 위로 바람이 불어오면 반드시 눕습니다.


<담론>에서 다시 찾으니 이 표현은 <시경>에서 왔다고.

草上之風草必偃 誰知風中草復立

초상지풍초필언 수지풍중초부립

풀 위로 바람이 불면 풀은 반드시 눕는다.

누가 알랴, 풀은 바람 속에서도 다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한밤 추위를 뚫고 본관 책방에 좇아가 <시경>을 꺼내들다.

찾을 수가 없네.

...없다!

어디에서 온 구절일까...

이제 선생님 떠나시고 물을 길도 없는.

그나저나 책읽기는 이런 재미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래서 앞에 읽는 책이 다음 책으로 향하는 길목이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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