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2.22.달날. 흐린 정월대보름

조회 수 762 추천 수 0 2016.03.13 01:53:33


‘스무하루 동안의 치유 일정’ 열사흘째.

지난 흙날에서 미뤄진 두 번째 하루 단식을 오늘 한 까닭에

오곡밥도 나물도 못 먹고 부럼도 못 깨고 귀밝이술도 물 건너간.


한 번 해봤다고 수월하단다, “밥을 두 번 안 먹은 거니까...”,

무슨 말인가 했다.

엊그제부터 평소 물꼬 흐름대로 두 끼 밥상.

그러니까 세 번 먹던 때는 세 번을 굶는다 생각하니 힘들었다가

두 끼가 되니 수월타 느껴지더라는.

조삼모사일세.


교무실 곳간 청소.

오는 샘들 손에 늘 맡겼다.

시간을 들여서 해야 할 일을 계자 앞두고 단숨에 하려니 쉽게 정리가 되지 않았을.

그렇지만 부직포 상자와 옷감 상자를 들여다보며 속이 좀 상하기도.

쓰레기가 섞여 있기도 하여.

계자 일정 가운데 ‘열린교실’을 끝내고 마구 담겨져 왔기 쉬웠을.

너무 오래 돌보지 않았구나, 반성하다.

버려진 것, 낡은 것들을 아껴 쓰고 다시 쓰고 살려 쓰던 살림,

잘 쓰면 얼마든지 또 잘 쓸 수 있는 것을 낡은 채로 마구 두진 않았나...

잠시 오는 샘들이 정리하는데 한계가 있었을 것.

전체 살림을 잘 모르니 어느 걸 버리고 말아야할지 가늠키 어려웠을 테다.

맡은 이들이 일을 잘 수행하도록 먼저 정리가 좀 필요했을 것.

부직포를 꼬랑지 같은 가는 부분들 잘라내고 다림질도 하고,

옷감들 역시 다림질을 해두다, 기분 좋게 쓰일 수 있도록.

바느질함도 상자를 갈며 실꾸러미며 바늘과 부속품들을 정리하고,

말린 종이들이며 비닐들이며 구겨진 것들 펴고 다시 말고.

수년 간 한 번도 쏟아져본 적이 없는 상자도 있었더라.

털실상자도 열어 풀고 감고.

차곡차곡 이런 정리의 시간이 참말 좋았네.

몽고에게는 크레파스 정리를 맡겼다.

오늘 못하면 내일, 그것도 아니면 모레, 그리 이어가면 될 일.

그런데, 곳간 정리를 도운 최고의 손은 금룡샘의 상자였으니!

두어 해 여러 가지 물건들이며를 보내올 일들 있었는데,

일하시는 회사의 규격 상자였던 것.

그게 또 곳간 선반용으로 마련한 것처럼 길이가 딱이었네.

일정한 상자들이 줄로 늘어서니 안성맞춤.

또 고마운 금룡샘이었을세.


“둥근 모양은 어떻게 해요?”

모여 앉아 바느질을 하는 저녁.

바늘질도 손풀기처럼 명상에 다름 아닌.

하기야 이곳의 일상 어디가 그렇지 않을 곳이 있을까.

무엇엔가 집중하는 모든 것이 수행인!

덕분에 곁에서 조각이불을 만드는 중.

재단만 해놓고 짬을 내지 못하던 일이더니

또 이렇게 할 짬이 놓이네.


오늘 십 수 년 전 이곳에서 얼마쯤 머물다 간 젊은 한 친구의 소식을 듣다.

내가 말을 잊거나 잃거나 헤매는 동안 그는 차곡차곡 글을 쓰고 있었노니.

기자로 자리를 잡고 소설도 내고 에세이집도 냈고,

다시 기자는 매체가 아니라 기사로 말하는 거라며 직장을 나와

빛나는 기사들을 쓰고 있었다.

훌륭하게 살고 있어(그만큼 단단한 글들이었다) 고마웠고,

그리고 반성했네.

써야지!


<논어>(김원중 역) 제19편 자장 5장

子夏曰 “日知其所亡, 月無忘其所能, 可謂好學也已矣

자하왈 “일지기소망, 월무망기소능, 가위호학야이의.”

자하가 말했다.

“날마다 내가 모르던 것들을 알게 되며, 달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잊지 않도록 하면 배움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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