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2.23.불날. 맑음

조회 수 676 추천 수 0 2016.03.16 12:27:01


우박 떨어진 새벽,

면소재지 장순샘네 밭에 손 보태기로 한 학교아저씨 마을을 나섰다.

아침 버스 시간에 맞추느라 이른 밥상을 차려드리고 가마솥방을 나오니

그제야 일하기 좋으라고 딱 그친 하늘.

곧 해건지기로 여는 아침.


어제부터 교무실 곳간을 정리하고 있다.

양편을 다 뒤집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하는 만큼 '스무 하루 동안의 치유 일정'이 있는 이번 참에 또 해보는 게지.

오는 샘들이 잠깐잠깐 하는 것엔 한계가 있기 마련.

그걸 왜 제대로 좀 못 했냐 할 게 아닌.

잠시 오는 이라도 일하기 좋게 살고 있는 사람이 기본 정리를 했어야 하는 일.

이제 이런 일을 구역 구역으로 나눠 길지 않게 일부만 손을 대는 방식.

날밤 새우며서라도 다 끝내야 직성이 풀리는 세월이더니

나이 탓인지 요령 덕인지 요즘엔 큰살림 하는 법이 이러하다.

오늘은 구겨진 비닐들을 난롯가에 가져와 녹이고 다시 감고,

그래도 구김이 남는 것들은 다림질도.

늦게 말린 곶감을 손질하기도 하였네.


그런데, 머리가 깨져나갈 듯한 데다 한기도 들고 근육이 뻑뻑하기도.

그리고 이 밤, 해우소를 들락거리고 있다.

하루 단식이야 흔한 일인데,

이레씩 봄가을로 십 수 년을 해왔고,

최근 두어 해는 가볍게 철마다 짧은 단식.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데,

과식이 원인인 듯도 하고,

감기인가도 한다.

아침부터 있었던 불편한 전화가 몸으로 왔는가 하기도.

자고 일어나 보기로.


그래, 불편한 전화로 시작한 이른 아침이었더랬다.

지난여름 계자 마지막 날 강강술래를 하러 모이던 고래방에서

아이 하나 혼자 뱅글뱅글 돌다 툭 넘어졌는데 다리에 금이 간 일이 있었다.

계자 끝나고 서울 큰 병원으로 갔더니 부러졌더라했고,

입에 담지 못할 욕설과 고함을 아비로부터 듣기도 했다.

물꼬에는 오랜 인연이거나, 대개 물꼬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가지고,

아니면 신뢰를 가진 분의 소개로 아이를 보내며 그에 준하는 신뢰도를 갖는 분들과 달리

툭 떨어진 인연이기도 하여 격하기 더했던 듯.

(그간 코뼈가 팔이 부러지거나, 턱이, 눈가가, 머리가 찢어지기도 했던 아이들의 부모님께 다시 깊이 감사.

내 아이가 부잡해서 그렇다거나,

선생님들이 더 놀라셨겠다며 외려 위로하고 걱정해주셨던.)

지난 10일 최종 메일에 이르는 시간까지 벌 선 아이처럼 보낸. 그게 또 도리였고.

좋은 마음으로 모여 손발 보탰던 선생들이 마음 다치지 않게 지키고 싶었고,

그러느라 정작 계자에 함께했던 부모님들께 상황에 대해 제때 전하지 못해

뒤늦게야 일의 서툼을 한탄하기도.

함께 있었던 아이들이야 상황이 심각하지 않았음을 알았다 하더라도.

아이들의 모든 시간이 우리 눈 안에 들어있었다는 당당함(?)이

그나마 어려운 시간을 덜 아프게 지날 수 있게 해주었다.

“옥샘 뒤에 우리 있잖아요.”

그리 말하는, 아이 적부터 물꼬를 와서 품앗이샘에까지 이르게 된 이들의

지지와 응원 또한 큰 힘이었지, 늘처럼.

시간 지나 해도 넘기고 아이 엄마랑 주고받은 메일을 끝으로,

물꼬의 사정을 헤아려준 덕분에 많지 않은 송금으로 합의된, 지난 일이 되었다 여겼다.

헌데 날벼락 같은 아침 댓바람의 전화.

(그리고 나는 몇 날 며칠 이 글을 날 것 그대로 '물꼬에선 요새'에 옮겨도 되냐 고민했다.

그동안 말로 전할 수 없는 시간들이 어디 없어서 글이 되지 않았겠는가.)

“니들 애들 사랑하는 사람 맞아? 맞냐고?”

“(그 정도 금액으로) 배째라 이거야?”

“능력 없으면 사랑도 하지 마!”

그리고 욕설로 일방적으로 끊어진 전화.

그가 처음 그런 것도 아니었다.

아이가 목발을 짚고 다니는 동안 곁에서들 얼마나 고생스러웠을까 헤아리면서도

이쯤 되니 미안함과 안타까움과 송구함과 그 모든 걸 넘어 슬금슬금 화가 기어왔다.

수화기를 놓고 한참을 마냥 앉었네.

학교에 대해 알아보고 가만 두지 않겠다는 협박 때문이 아니었다.

어떤 일이 내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의 사람의 반응들에 대해 생각했다,

오래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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