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건지기’.

산마을의 아침에 여럿이 모여 하는 수행은 또 감동이라.

간밤에 ‘실타래’가 길었던 아리샘,

수행을 하며 들고난 마음을 나누는 자리에서

오래 말을 잇지 못하고 결국 눈시울 붉어졌는데,

이심전심이었네.

그래서 또 수행하는 시간이 귀해졌더라.

우석이도 수행방을 들고나다 저도 요가매트에 앉기도.

우리 삶이 곧으면 아이들도 그러하지 않겠는지,

딱히 무얼 가르치지 않아도.


‘업기’.

늦은 아침을 먹고 전교조 대의원회의를 떠나는 아리샘이 짐을 꾸릴 녘

하늘이 우박을 거두고 볕을 쪼이자 까치가 울고,

차가 한 대 들어왔다.

귀옥샘이 달려 나가 뒤에 온 이들을 맞아주셨네.

희중샘이 커다란 딸기 상자를 안고 어머니 아버지를 앞세우고 들어서다.

“부모님 모시고 올라구요.”

2월 빈들 일정을 물으며 희중샘이 지난 겨울계자 끝에 그러고 돌아갔더랬다.

아들이 10년을 꽉 채워 보낸 물꼬에 드디어 어르신들이 함께 오신다,

설렜던 시간이었다.

그 10년이 어디 그냥 10년이었던고.

여름과 겨울 방학이면 세 차례씩 하던 계자에도 내리 함께하던 희중샘은

계절과 계절 사이도 자주 들고났다.

허니 실제 질감으로는 20년 세월도 족히 될.

차를 달여 냈고,

김동현님 당신 살아오신 길고 길었던 세월을 몇 권의 소설로 풀어주시는 동안

우리 서로 업어주었다.

‘누군가를 업어준다는 것은 / 희고 눈부신 그의 숨결을 듣는다는 것 /

그의 감춰진 울음이 몸에 스며든다는 것 / 서로를 찌르지 않고 받아준다는 것 /

쿵쿵거리는 그의 심장에 / 등줄기가 청진기처럼 닿는다는 것 //

누군가를 업어준다는 것은 / 약국의 흐릿한 창문을 닦아주는 일 /

흩어진 영혼을 자루에 담아주는 일’

(박서영의 ‘업어준다는 것’ 가운데서)


낮 버스를 타고 기표샘이 와인이며 빵이며, 연규샘이 양말이며 세제며 생활용품들을 들고

주혜샘, 화목샘과 들어왔다.

전역하고 사흘째 빈들에 걸음하겠다 연락해왔던 화목샘은

건강하고 단단해져서 돌아왔고,

대처 나가 공부하고 있는 딸 같은 연규샘이 고향집인 양 들어왔으며,

첫 걸음하는 주혜샘이 기표샘과 동행했다.

(저녁밥상에 장순샘도 합류)


학교를 돌며 공간 안내가 있었고,

낮밥을 먹고 불가에서 젊은이들은 그들대로 낯을 익히고

엄마들은 모여 바느질을 했다.

발도로프 인형도 만들고, 조각이불도 엮고, 벽걸이 장식도 꿰매고.

“와, 완전 직업인이신대요!”

귀옥샘의 바느질도 예사롭잖더니

김명순님의 속도는 또 대단했다.

아니나 다를까 양장점 하던 언니를 도와 소싯적에 바느질깨나 하셨다는.

우석이도 곁에서 바늘땀을 이었네.


‘우리가락’.

우리 아이들처럼 후루룩 익히고 연습하고 공연한.

(구음을 외고 손장단과 몸장단을 익히고 바로 악기 잡고 가락 연습 20분이면

풍물 공연을 하는!)

평생 한 번 해보고 싶었다던 김명순 엄마,

오래 전 했으나 잊혔다는 백귀옥 엄마,

어릴 적부터 물꼬에서 가락을 익혀왔던 기표샘, 연규샘, 희중샘, 화목샘,

아, 다들 추임새 절로 들어가는 장단이었다.

주혜샘은 온 몸을 던지두만.

배움의 즐거움! 가락의 흥겨움! 서로 눈을 맞추고 숨을 타는 느꺼움!


저녁 밥상을 물린 뒤 ‘실타래 2’.

못 다 한 이야기들을, 혹은 아직 하지 않았던 이야기들,

그렇게 실꾸러미에서 실을 풀었다.

준비한 주제를, 이 시대를 건너가는 이야기를, 요새 하는 생각을,

그리고 고민을 열고 나누고 머리 맞대다.

깊은 경청과 따스한 바라봄과 자기 원하는 지점에서 말하기!

아, 연규샘, ‘섬모임’에서 같이 읽기로 한 책을 풀었어도 좋았을 걸.


늦은 밤, 달골 올랐다.

먼저 따라 올라온 우석이가 준비를 도왔고나.

서둘러 옮기는 물건에도 손을 보태고, 창고동 난로를 피우는 일을 거들기도.

‘夜단법석’과 ‘장작놀이’.

젊어 좋더라, 여섯의 품앗이샘들 난롯가에서 고구마를 굽고 노래를 듣고

지금을 살아가는 이야기들로 밤이 다 가겄더라.

‘고맙습니다, 우리 이 산골에 또 이리 모여 이런 한 때를 보낼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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