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보라 몰아치는 이 아침도 우리는 운동장을 가로질러 본관 문을 열었고,

여느 날과 다름없이 해건지기를 했다.

전통수련하고, 티벳 대배를 백배하고, 앉아 호흡명상하고.

눈은 기세가 더 등등해있었다.


스무하루 동안의 치유 일정’이 끝나기 하루 전,

산오름을 가자던 오늘이었다.

달골 갔다,

눈을 가르고 가는 길이니 웬만한 산 하나쯤 오르는 것에 견주어도 되겠다 하며.

귀마개가 있는 모자가 아니었더라면 퍽 힘들었을 길.

욕실 휴지통도 비우고, 방들 이부자리를 털고, 거실 바닥도 쓸어내고,

그렇게 빈들모임 사람들이 다녀간 자리를 돌아보았다.

내려오며 미끌, 온 다리 긴장을 다한 몸은 마을에 내려서니 등이 다 아팠던.


밥하기를 잘 가르치고 밥상을 받아먹겠다던 야심찬 계획이 있었으나

우리에겐 겨우 하루가 남아있었다.

점심에 된장찌개를 끓였고, 보게 했고,

그대로 따라 저녁에 다시 된장찌개를 먹자 했다.

“미리 육수를 만드는 것도 방법이지만,

바로 멸치며 육수 재료들을 넣고 같이 끓일 수도 있어.”

마침내 몽고가 끓인 된장찌개를 먹었다.

누구보다 맛있더라. 예의? 그런 거 아니고. 소 뒷걸음이라고 할 거나.

“설거지까지 풀코스로 안 되나?”

“그건 안 되겠는데요.”

이곳에선 누군가가 밥을 하면 다른 누군가는 설거지를 하기로 하므로.


어제부터 벼락치기 강독 중.

우리가 스무하루를 위해 준비했던 책들은 사서(논어, 맹자, 대학, 중용)였다.

그런데, <논어>만 해도 스무 날 가까이 가버린.

하여 나머지 책들은 어떤 책인지 안면 겨우 익히게 된.

‘<대학>은 문리(文理)로 보는 책이 아니라 논리로 보는 채이고, <중용>은 논리로 보는 책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 책이다. <대학>의 그 논리는 성리학의 세계관이고, <중용>의 그 마음은 우주와 내가 하나되는 마음이다. 그러므로 ‘제대로’ <대학>의 문으로 들어가서 <중용>의 문을 나오면 선비 한 사람이 만들어진다.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사는 것이 선비의 길인가를 제대로 알게 되는 것이다.’[<대학·중용>(이세동 역) 옮긴이의 말 첫 문단 가운데서]

<맹자>(박경환 역)는 또 어떤 책이던가.

공자의 이념이 맹자의 사상적 토대가 되었던 듯.

맹자는 사상가이기 이전 정치가. 유학을 전파하려 유세를 다닌 것이 아니라

제후로 등용되어 실제 정치에서 유학적 이념을 실현하고자 했던.

하여 철학적 논변이 아니라

실체 정치와 관련된 구체적 대안과 그것을 위한 이론적 근거들을 담은 책이 <맹자>.

‘<맹자> 맹자하면 떠올리게 되는 성선설은 인간의 본질에 대한 지적호기심에서 나온 철학적 주장이 아니다. 그것은 그가 실현하려했던 이상적인 정치의 가능 근거로서 제시된 것. 그가 제시한 수양론 역시 이상적인 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도덕적 인격을 갖추는 방법으로 제시된 것. 따라서 <맹자>의 기본적인 성격은 정치사상서!’(해설서 가운데서)

정치를 힘에 의존하는 당시의 패도정치를 비판하면서,

통일된 천하의 왕이 되는 가장 빠른 방법으로 왕동정치를 통한 민심의 획득을 제시.

왕도정치란 군주를 포함한 지배계층의 도덕적 각성을 바탕으로

백성의 경제적 복지를 보장하고

도덕적 교화를 실행하는 복지국가와 도덕국가를 목표로 하는 정치.

‘왕도정치를 실행하지 않고 백성에게 고통을 주는 군주는 이미 군주가 아니라 패악하고 무도한 사람에 불과하므로,

이 경우 혁명을 통한 군주의 교체는 당연하다’(2·8 무도한 왕의 제거)

그런데 맹자는 자신의 자질에 비추어볼 때 왕도정치의 실행이 어렵다는 선왕에게

사람이라면 누구나 나면서부터 지니고 있는 도덕적인 마음의 자연스런 실현이므로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라 한다.

그의 수양론도 왕도정치의 첫째 조건인 도덕적인 마음의 각성과 그 구현 방법을 제시한 것.

욕망을 줄임으로써 도덕적인 마음을 가지고

그러한 도덕적인 마음의 근원인 도덕적인 본성을 길러내는 것이 맹자의 수양론.

인성론과 수양론과 함께 사회분업론도 맹자의 중요한 사상.

지배계층은 도덕적 마음으로 백성에게 왕도정치를 시행해 도덕적인 사회를 실현하고,

피지배계층은 생산노동에 종사해 도덕적 사회의 물질적 기반을 제공해야 한다는.


고전들이 우리에게 남긴 건 무엇이었던가.

한 자 한 자 곱씹으며 명상하듯 보낸 시간은

우리의 삶을(살아온, 살아갈) 정리정돈하게 하지 않았나 싶은.

죽는 날까지 고민할 어떻게 살 것인가의 또 한 답이지 않았겠는가 하는.


2월이 갔다.

2015학년도 마지막 날이다!

(‘스무하루 동안의 치유일정’의 마지막은 내일까지 잡혀있지만...)

수고로 왔던 모든 생에 찬사를. 그 속의 하나였던 내게도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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