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3. 1.불날. 맑음

조회 수 713 추천 수 0 2016.03.22 07:07:27

 

해건지기.

몽고가 수행방에서 향을 피워주었다.

아이가 애쓰고 고마웠다며 다가와 가뜬하게 안아 올려주었다.

혹여 힘이라도 좀 빠진 아침이면

몽고가 수행 끝에 엄지와 검지로 하트 모양을 내밀며 하는 인사에

금세 유쾌해져 우울이 거두어지고는 했다.

오늘아침은 또 뜻밖의 인사에 뭉클하고, 따뜻해진.

마음 맑은 영혼 앞에 서는 일은 자주 고마웠고,

사람이 정녕 무엇으로 사는가를 생각게 했다,

이렇게 온전하게 제 몫하며 살 수 있는 이도

필요유무 능력고저로 버려지고 다치는 세상에서.

우리는 이 아이들을 어떻게 지켜낼 수 있을 거나.


‘삼일절 특사’, 다시 올 것이기에 가석방.

우리들이 보낸 하루하루는,

해건지기-아침 밥상-고전 강독-손풀기-낮밥상-일-바느질-저녁밥상-산보-강독-하루재기,

그런 것들로 채워졌다.

매운 아침이었으나 낮은 들고나는 이들 맘 좋아라고 봄 햇살.

사택 묵었던 자리들, 이부자리를 털고 쓸고 닦고,

빨 것들을 내고, 욕실도 솔로 밀었다.

갈무리글을 썼고, 일정 마지막 밥상 앞에 앉았다 버스에 올랐다.

살면서 많은 것들이 흐려가도

어느 날 우리는 또 마음을 가지런히 하며 사는 일에 정성스러워지지 않던가.

수행의 시간이 습이 되기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우리 삶 어디엔가 배였으리.

그리하여 아무 일 일어나지 않을 것 같던 동토에서도 밀어 올리는 싹의 힘처럼

우리 삶에 툭툭 그리 봄 부를 테다.

애썼다, 애썼다, 애썼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불편한 이곳에서, 춥기도 추운 산마을에서,

때로 시집살이라며 모질기도 모질었던 훈련의 시간에서,

마음결을 끊임없이 고르던 지겹기도 지겨웠을 날들에서

참말 애썼다, 아희야, 아희들아,

같이 있어 눈물나게 고마웠던 우리들이여!


아이들이 나가는 버스(한 아이는 아침 버스였네)에 금룡샘 이어 들어오고,

장순샘도 건너왔다.

서로의 저녁을 위해 양손에 들고들 오신 꾸러미들.

“서로 그리 좋아해?”

스무하루동안의 수행을 마친 물꼬에 애썼다 했고,

다가올 봄날을 이야기하다.


그리고,


스무하루 동안의 치유 일정 끝, 그 사이 여럿이 들고났다.

다음은 그 가운데 하나가 남긴 갈무리글.

맞춤법도 그대로, *는 주를 단 것.


"난 ‘21일간의 치유 프로젝트’를 하기 전에는 뒷정리, 전자기기를 사용할 때 절제하는 것, 최소한의 외출준비, 규칙적인 일상과 운동하는 습관 등이 되지 않았고 내 행동들은 대부분 느리고 수동적이었다. 타인과의 관계들도 주로 SNS로만 소통하는 관계들이었다.

물꼬에 와서 난 자신이 있었던 자리를 나서기 전에 항상 돌아보기, 전자기기는 중요한 일정을 하는 중에는 정말 다급한 상황이 아니면 사용하지 않기, 아침엔 크렌징폼 말고 물만으로만이라도 씻고 나가기, 일은 시키지 않아도 하고, 날렵하게 정성스럽게 하기, 타인과 소통할 때 말은 또박또박하되 분위기 살피기, 매일 조금이라도 운동하기, 바느질, 어깨넘어로는 판소리 등을 배웠다.

난 이제 물꼬에서 했던 일을 기억하며 최소 아침 8시 15분에 일어나서 출근하는 엄마를 배웅하고, 점심을 먹기 전 대배를 40개(* 세 번만 하랬더니 굳이 마흔 개는 한다는. 혼자 하는 게 어려워 옥샘이랑 절하려고 물꼬 온다는 어른들이 다 있는데)를 한 다음, 점심식사와 설거지가 끝난 후 집안을 꼼꼼히 치우고 어지럽혀져 있는 곳은 정리할 것이다. 일주일에 최소 2번은 내가 직접 요리해서 밥상을 차리고 잠자리는 단정하게 할 것이다. SNS로 하는 관계는 줄일 것이며 주5회(* “두어 번만 하라니까...”) 나가서 가벼운 운동을 할 것이다. 책은 문학책(* 감각적이고 가벼운 책이란 의미)말고 교양책을 읽도록 노력도 할 것이다. 엄마가 바느질을 할 때 옆에 앉아 함께할 것이고 가끔 판소리도 미약하게나마 연습을 할 것이다.

물꼬는 내 문제점뿐만 아니라 내가 하지 못했던 일들도 발견해주어 극복하게 해주었다. 난 21일간 프로젝트를 한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집에서 매일 이것저것을 배워 사회로 나가는 과정을 거친 것이다. 비록 시간이 지나서 내가 여기에서 배웠던 것들, 다짐했던 것들을 잊을 수도 있겠지만 다음엔 더욱 성장한 모습으로 치유 프로젝트가 아닌 그냥 시골의 할머니댁을 찾는 것처럼 가볍게 쉬는 목적으로도 물꼬를 찾았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자유학교 물꼬 영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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