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3. 9.물날. 흐림

조회 수 682 추천 수 0 2016.03.29 00:52:15


다시 기온 점점 내려간다.

그래도 풀들은 봄을 기억하노니.

꽃밭이며 남새밭이며 돌 사이 마른 낙엽을 긁어내거나 둑을 만들거나.

평상에는 때늦은 곶감이 말라가고 있다.


봄엔 바람이 많지.

아직 아린 겨울이 꼬리에 매달려 있으나

그래도 봄 들녘이다.

지리산 아래 한 폐교에서 사흘째.

이번 학기 시작하는 나흘은 이곳에서 하고 있다.

손님을 맞다, 연락 없이 찾아든.

미리 알아 맞을 채비하면 좀 더 나은 찻상이고 밥상일 수 있을 것이나

그리 있는 대로 내는 밥상도 좋다.

밥이 되는 동안 마당에 나가

방풍 신선초 냉이 쑥 돌나물 광대나물 부추 뻐국채, 뭐나 다 좋다,

풀을 뜯어와 샐러드로 내다.


사람 손이 닿은지 오래인 폐교 부엌,

큰 손님들 드나들어 살림은 많고,

하지만 한 번에 다 치우지 않는다.

성질대로 밤을 새워서라도 하려드는 거 그런 거 이제 안 한다.

나이를 먹어 힘에 부쳤거나, 게으름이 좀 생겼거나, 아니면 여유가 생겼거나,

그것도 아니면 안 해도 안 죽는 줄 알았거나.

할만치만.

하루에 고무장갑 끼면 그 결에,

빗자루 들었으면 그 결에,

걸레 들었으면 그 결에 조금 더 영역을 넓혀 치운다.


소리 동무와 북 치고 소리했다.

소리를 하다보면 북에 소홀하기가 또 쉬운.

그게 익어야 또 박을 제대로 찾아갈 것이고

그래야 소리 또한 제 길을 잘 갈 것.

그렇게 짝을 이뤄 되는 일들이 있다.

이게 충분히 익으면 저것도 또한 익게 되기도.


기온 다시 내려간다 하나

봄이 가락을 타고 덩실거리며 걸어온다, 저기.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1934 2015. 2.14~15.흙~해날. 맑음, 이튿날 비 옥영경 2015-03-13 691
1933 2014. 8. 6.물날. 비 옥영경 2014-08-10 691
1932 2014. 6. 4.물날. 흐리다 빗방울 옥영경 2014-06-24 691
1931 2013. 9.18.물날. 맑음 옥영경 2013-09-25 691
1930 2021. 8.22.해날. 맑음 / ‘멧골책방’에서 책 대신 잔디 옥영경 2021-08-29 690
1929 2017.11. 6.달날. 맑음 옥영경 2018-01-06 690
1928 2016.12.19.달날. 비 옥영경 2016-12-28 690
1927 2016. 6. 3~4.쇠~흙날. 뿌연 하늘, 그리고 비 옥영경 2016-07-06 690
1926 2016. 3.18.쇠날. 비 옥영경 2016-04-06 690
1925 2015. 5.12.불날. 갬 옥영경 2015-07-01 690
1924 2015. 4.11.흙날. 맑음 옥영경 2015-05-12 690
1923 2015. 2.16~17.달~불날. 비, 이튿날 흐림 옥영경 2015-03-13 690
1922 2015. 2.10.불날. 맑음 옥영경 2015-03-11 690
1921 2014.10.20~21.달~불날. 비 내린 종일, 이튿날 쉬고 내리고 옥영경 2014-10-31 690
1920 2014. 5.15.나무날. 가끔 해, 그리고 바람과 바람과 바람 사이 옥영경 2014-06-04 690
1919 2014. 3.15.흙날. 맑음 옥영경 2014-04-05 690
1918 2014. 2. 7.쇠날. 흐리다 저녁부터 눈 옥영경 2014-02-28 690
1917 2014. 2. 3.달날. 맑음 옥영경 2014-02-18 690
1916 2013. 6.10.달날. 맑음 옥영경 2013-06-23 690
1915 2016. 8.19.쇠날. 맑음, 달 좀 봐! 옥영경 2016-09-08 689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