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골을 내려오면서는 버들강아지를 꺾어왔다.
봄이면 꼭 가마솥방에 들이는 식구 하나.
큰 굴삭기 작업 사흘째.
지난 가을에 하던 나흘까지 더하면 이레.
아래 밭가에서 바위들을 캐와 명상정원 /아침뜨樂‘(가칭) 들머리 경사지에 쌓는다.
굴삭기가 그리 움직일 때 사람들은 정원에 남겨진 제법 큰 나무들에 붙어
가지들을 잘라내고 다듬었다.
삽을 들고 들여왔던 철쭉과 회양목 각 130그루 가운데
그 위로 회양목을 열다섯 그루도 심다.
물 충분히 주고.
나머지는 다음 작업 때하기 심기 위해 일단 묻어두었다.
4월 초에는 작은 굴삭기를 들여와 나무 심는 작업들을 좀 하려.
굴삭기 작업 차례를 기다리기 힘든 계절이다.
이틀을 미리 말해두었다.
물고기 등 쪽으로 스트로브잣나무 정도로 둘러칠까 한다. 나무를 알아보고 있는 중.
명상정원 아래 밭으로 배수관도 묻다.
물이 많은 곳이다. 골이니 물이 고일 밖에.
모자라는 관 두 개만큼은 자리만 파두다.
이 역시 다음 굴삭기 작업 때.
예정했던 작업을 마치지 못하고 해는 지고 굴삭기는 떠났다.
내일부터 회사로 들어가 일을 한다 하기.
‘아침뜨樂’의 입구가 될 계단은 손도 대지 못했고,
물고기 꼬리 쪽, 그러니까 정원의 맨 아래 쪽은 결국 정리가 되지 않은 채였다.
계단 들머리 작은 못을 두려던 일도 하지 못한.
다음 일은 다음 걸음에!
마을 형님이 대파를 보냈다.
들에서 늘 탐이 나는 것은 실한 대파.
그걸 보면 뽑아오고 싶은 유혹이 들고는 한다.
남의 밭에서 늘 욕심이 가는 게 대파라고, 어째 우리는 대파농사는 잘 안 된다,
언젠가 드린 말씀을 기억해내고 보내셨다.
이 따뜻함들이 산골살이의 고단함을 덜어주는.
그리고, 그대 연애에 부쳐-
아이들이 다투어 다른 샘들이 교무실로 보낼 때가 있다,
나라고 별 수가 있는 것도 아닌데.
그러면 양편의 이야기를 한 사람씩 충분히 하게 한다.
“으음, 그렇네. 네가 옳네.”
“으음, 그렇네, 네가 옳네.”
이쪽저쪽 번갈아가며 그러고 있노라면 어느새 피식 웃고들 만다.
황희 정승의 지혜를 흉내 내는 것.
그러다 할 말이 끝에 이르면 침묵이 들고,
그리고 말없이 손만으로 출입문을 향해 나가라 손바닥을 흔들면,
그냥 간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맘에 담겼던 말을 충분히 하는 것만으로 때로 문제가 해결되기도.
또 다르게는 아주 끝까지 가열차게 싸우는 아이들이 있다.
그럴 때 그 이야기들 끝에서 조용히 묻는다.
“길은 두 개야. 1번, 같이 논다. 2번, 안 논다.”
어느 쪽을 고를 거냐 묻는다.
그러면, 대개 “같이 논다.”로 결론짓는다, 놀 사람 많지 않은 학교이니.
그렇지 않을 땐 안 노는 거지.
그러고 보니 많은 경우 그렇게 해결을 한다.
길은 두 개다, 하거나 안 하거나.
아하, 그렇구나, 관계에서도 그렇겠구나, 만나거나 그렇지 않거나.
뭐가 그리 어려우랴.
계속 만나거나 아니면 안 만나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