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3.26.흙날. 맑음

조회 수 681 추천 수 0 2016.04.11 02:06:40


대해리는 도로공사 중.

2차선으로 길을 넓힌다, 이 산마을에.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은 반가워하고, 물꼬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이제 어느 곳으로 가란 말이냐,

뺑덕어미 간 뒤 오뉴월에 물소리 반겨듣고 목욕하고 나왔더니

옷을 도적맞아 주저앉아 울음 울던 심봉사 마냥

마음 서늘하다.

길이 지나가는 곳에 있던 경로당은 어제 마을회관으로 이사를 했고,

쉼터 앞께는 기존의 길옆으로 임시로 다닐 길이 만들어졌다.


진해 다녀오다, 새벽에 나서.

꽃 아직 넘치지 않으니 사람 역시 많지 않아 느슨했고,

고목이 품은 꽃몽오리만으로도 충분히 꽃구경마냥 벅찼네.

부부가 되는 젊음들이 싱그럽기도 하더라.

개나리와 물오른 수양버들 실컷 담아왔다.

가끔 진달래도 불긋거렸고나.

배꽃 살구꽃도 넘치더이.

꼭 남도 아니라도 어디나 그럴 봄이나

부디 마음에도 봄이 이르시라.

몸 보시!

가서 그 과정에 함께하는 일이 가장 큰 축하이지 않겠는지.

바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주례를 서기 전까지 혼례잔치라면 신랑각시 있으면 되지 하고

집안이고 이웃이고 벗네고 가야하는 일이라고 생각지 않았다.

그런데 주례를 서고 났더니

그날이 한 사람의 생애에 얼마나 큰 지점일 수 있는가 헤아리는 마음 각별하게 되고,

그 뒤론 학교 일정과 아주 무리하게 겹치지만 않으면 달려가는.

일찍 닿아 해군회관 뒤란에서 책도 읽고 한갓졌네.

병색이 완연한 선배 한 분도 보다. 물꼬의 오랜 논두렁이기도.

간간이 인사 넣어야겠다. 사람 사는 일이 뭐라고...

빗방울 몇 잠시 다녀가다.


서둘러 돌아왔다.

동행했던 선배가 황간역에서 부려주었고, 바삐 들어오다.

물꼬가 현재 하는 기능으로서는 아이들 학교보다 어른의 학교가 더 크겠다.

어른의 학교!

달골 명상정원 ‘아침뜨樂’만 해도 굳이 대상 나이대가 있는 건 아니지만

어른들의 마음다듬기를 위한 목적이 더 크다 할 수도.

부부연을 맺는, 마흔 줄에 이른 이들이 왔다.

예뿌더라. ‘함께’ 살겠다고 결정해서 더 그럴지도.

혼자 있는 것이 너무 익어져서 같이 사자는 것이 쉬운 결정이 아닐 수도 있을 나이.

사랑은 때로 귀찮은 일이지, 퍽.

사랑을 잃었을 때 우리는 한편 홀가분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사랑의 책임, 관계의 책임이란 게 무엇이더냐.

저울질을 하자면, 귀찮지만 기쁨이 더 큰 줄 아는 눈이려니.

비겁하게 뒤로 물러서지 않고 다가오는 삶 앞에 함께 마주하겠노라는 것 아닐지.

내 삶도 벅차지만 네 삶도 안아내 보겠다 그런 용기 아닐지.

너도 그러냐, 나도 그렇다, 그렇게 같이 하고 있다는 신뢰가 어떤 것보다 큰 배경이려니.

으음...

그런데, 정말 사랑의 책임, 관계의 책임이란 무엇일까...

누가 뭐래도 내 아내 또는 내 남편의 편?

돌팔매에 아내 또는 남편을 온몸으로 지키는 것?

좋은 것보고 맛난 것 먹으며 그를 생각하는 것?

어찌되었건 이 세상에서 사랑만한 일이 어디 있으랴!


달골에다 방을 냈다.

“어디 팔려가는 거 아니구요...”

낯선 산골에 와서 마을에서 툭 떨어진 산 아래 커다란 집에

한밤중 아무도 없이 부부만 내려놓으면 무서울 수도 있잖을지.

아직 달골로 올라가지 못하고 있는 이번 학기.

차(tea)를 여러 차례 달여 자정 가까워서야 차(car)로 올려주었다.

아침은 같이 산길을 손 붙잡고 내려오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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