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수업을 하고 돌아와 늦은 밥을 먹다.

국수를 말아먹으며 홀로 가마솥방에 앉았는데,

냉장고에 남아있던 막걸리도 한 잔 하다.

평화로웠다. 혼자가 가져온 평온, 좋았다. 고마웠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입주과외의 경험이 있으니

아이들을 만난 세월이 적잖다.

그래도 여전히 어려운 수업들이 있다.

오늘 그랬다. 진척 없는.

그것이 학습적인 영역이라면 또 다를 것이나

마음, 그거 얼마나 갈래가 많은 길이더냐.

내 마음도 작용하고 아이 마음도 작용하고

그 마음들을 둘러친 관계들도 작용하고.

사람 하나 마음 문 여는 일이 어렵고 또 어려운 그런 날이 있더라.

혼자인 시간이 좋다, 오늘은.


손이 못가고 있던 테두리 깨진 플라스틱 너른 채반 하나

오늘은 실로 꿰매주었네.

자주 하는 말이지만 돈으로야 얼마나 할라고.

그렇게 쓸 수 있도록 만드는 것에 의미를.

물꼬에서 살고자하는 방식이 그런 것 아니겠는지.


달골 명상정원에 심고 다음에 쓰기 위해 가식을 해둔 측백을

이웃마을에서 열 그루 주었으면 했다. 실어주었다.

나눌 게 있으니 좋다.

지자체와 도교육청, 그리고 군부대와 연계할 일로 오늘 첫 연락.

길이 멀 것이다.

낮에는 12학년 아이 하나 대학진학 문제로 긴박(?)한 조율들이.

첫 두 개의 모의고사를 1%에 진입하고,

가상전형에서 서울대 생명공학부 1등, 응용화학부에서 6등.

도전해볼 만하겠다고 고무된 아이였는데,

과학탐구 영역에 문제가 생긴 것을 학교 측도 잘 모르고 있던 것이어

부랴부랴 진학지도교사와 대책 논의.

요새는 할아버지의 재력과 엄마의 정보력으로 대학을 보낸다더니...

입시문제, 얼마나 간단하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인지 방법이 없지 않으면서

복잡하게 만드는 까닭들이 있을 테지.

이럴 때 ‘거지같은 세상’이라고 욕들을 하는 것일 테고.


한식이었다, 성묘도 하고 개사초(改莎草)도 하는.

무덤이 헐었으면 이때 잔디를 다시 입힌다지.

요새야 길 좋고 차 많으니 꼭 절기 아니어도 걸음이 쉬운.



성묘


내 살 집 지으러 먼저가신 아버지 곁으로


내 옷을 지으러 따라가신 엄마 주소는


전라북도 정읍시 산외면 동곡마을 앞산


눈 어둔 울 엄마 두고 간


무명실 끼운 시침바늘 들고 좇아간


음력 시월 스무하루 눈보라 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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