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4. 7.나무날. 흐림

조회 수 773 추천 수 0 2016.04.14 03:14:07


사전 투표를 하고 왔다.


마음이 참담할 때, 이렇게 절이라도 하지 않았더라면...

고맙다.

아침 수행은 시간에 대한 단련이라.

지난 섣달부터는 주말에도 거르지 않는 해건지기.

몸 풀고 티벳 대배를 백배하고 명상하고.

오늘 절은 절할 수 있는 아침이 허락됨에 대한 감사기도였나니.


충북도교육감 비서실에서 전화가 왔다.

도교육청과 지자체와 군부대와 또 두어 곳과 연계할 일이 있다.

엊그제 일을 시작했고, 긴 걸음이 될 것이다.

일이 모양을 좀 갖춰지는 대로 두루 알려드리기로.


어제는 달골에 올라 수선화 몇 뿌리를 심었다.

거제도 공고지 산으로 선배가 나눠준 것이다.

내년에는 꽃을 볼 수 있으리라.

이미 심겨져있던 몇 뿌리도 새끼를 쳤다.

이 또한 꽃 핀 뒤 뿌리를 갈라줄 것이다.

그렇게 해를 거듭하면 밭을 이루는 날도 오리라.

햇발동 안으로 들어와 있던 화분들이며도 내놓고

마른 가지들을 잘라주기도 하고 물을 흠뻑 주기도 하고.

달골 들머리에 어제 심은 삼나무 세 그루에 물도 주었다.


지난밤은 밤새도록 비가 내렸다.

저녁답에 내리기 시작한 비가 차츰 굵어지다 야삼경에 세차게 내리더니,

아침까지 내리는 빗소리를 들었다.

그들이 건네는 말은 때로 거칠고 때로 부드러웠다.

이러다 쓰러지고 말겠다,

그런데, 죽으러 들려 해서가 아니라 살기로 하여 밤을 새웠다.

꼬박 지난 두 해 '오직' 몰입하고 공을 들였던 일 하나 있다.

그런데, 날아가 버렸다!

마치 신파조의 드라마처럼

모든 걸 포기하고 사랑을 약속한 남자랑 만나기로 한 역으로 가방 하나로 간 여자,

하지만 비겁한 남자는 나타나지 않은,

그래서 이제 어디로 가야하나 처연해진 모양.

다리가 후덜거려 멈춰지지가 않았다.


생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거야 어디 한두 해 겪었더랴만...

싯다르타는 위대했다.

감정은 외부 세계의 사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신체 내부에서 일어나는 과정.

모든 감정은 일어났다 사라진다.

그러하니 일어났을지도 모르는 무언가를 공상하는 대신 지금 이 순간을 살기.

두 번째 화살을 맞지 말라지.

슬픔과 분노가 일어났으되 그것이 사라지기를 원하는 집착을 품지 않는다면

계속 슬프고 분노하긴 하겠지만 그로부터 고통스럽지는 않다.

내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가 아니라

내가 지금 무엇을 경험하고 있는가에 집중하라.

실재를 있는 그대로 경험하기!


사람이 쌓은 것들일랑 얼마나 쉬 무너지는가.

언젠가 오랜 명상을 한 명상음악의 대가가 나와서 민감한 질문 앞에 버럭 화를 내더란다.

한동안 그에 대한 반응들이 화제였다, 명상하는 이들 사이에.

결국 명상 헛것 했단 말이 주류였는데,

수행이란 것이 그런 것 아니겠는가.

대단히 뛰어난 고승조차도 득도하고도 수행을 멈추지 않는 건

그것을 유지하기가 그토록 어렵다는 말 아니겠는지.

왜? 우린 존재적으로 끊임없이 처음으로 돌아가고 돌아가고 하니까.

우리들이 흔히 이루었다는 평화, 그거 얼마나 살얼음인가.

깨지기 쉬우니 또 수행하는 거고.

관계도 그렇다. 얼마나 허망하냐.

한때 죽고 못 살아도 헤어지고, 가끔은 더럽게(?) 헤어지기까지 한다.

안타깝지만, 사람의 일이 그렇다.

뒤돌아보지 말고 그대 잘 가라,

결국 그런 노래를 부르고야 만다.

사는 일이 그러하다.

반복해보노니,

‘내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가 아니라

내가 지금 무엇을 경험하고 있는가에 집중하기.

실재를 있는 그대로 경험하기!’


또래 여자 친구가 많지 않다.

그나마 이국으로 갔거나, 세상을 떠났거나, 먼 지방에 있거나.

지난밤 새벽 3시, 한 벗과 연락이 닿았다.

얼굴을 본지가 언제였던가. 명륜동에서 최루탄에 콧물 찔찔했던.

눈물이 흘렀다. 내 아픈 날 그의 목소리가 눈물이 되었다.

가는 이가 있으면 오는 이가 있고,

죽어 떠난 이가 있으면 살아오는 이가 있고...

홀로 막걸리를 한잔했다.



기억상실


머릿속에 나뭇가지들이 뻗어있고

바람에 툭툭 가지가 부러지고

새가 날아와 집을 짓고

가끔 죽은 새가 떨어지고

뱀은 자꾸 기어오르고

깃들 새들을 지키려 안간힘을 써보지만

그러나 그러나 노쇠하여

더 이상 지킬 수가 없을 때

차라리 불을 지르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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