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4.14.나무날. 맑음

조회 수 806 추천 수 0 2016.04.19 01:46:52


봄나물.

냉이 가고나니 파드득나물과 머위 두릅들이 밥상에 올랐다.

두릅은 두어 주가 절정.

봄나물을 노래하던 멀리 떠난 벗으로 또 울컥하였네.


오늘은 수업에서 수채물감을 썼다.

명도조절을 물로 하는.

다른 색을 같은 명도로 만들기 위해 우리는 무수하게 터치를 하다.

무언가에 집중하면 그게 명상.

마음에 다가가는 작업들을 공으로도 하고 그림으로도 하고 앉아 명상하며도 한다.

모든 것이 재료.


아이한테서 전화가 들어왔다.

“너거 엄마도 꼭 책을 읽고 있더니 너도 그러는구나.”

식당에서 만난 한 어른이 반기며 밥을 먹이고,

그의 친구 분이 용돈까지 쥐어주었다고.

대해리 마을길에서 공사하며 물꼬랑 맺었던 인연.

아이 하나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던 일종의 아포리즘은 언제나 유효하다.


어렵게 연락을 했는데, 돌아오는 답이 없어 조금 소침함이 스미는 일 있더니

에고, 오늘에야 사유를 알았네.

바로 답문자를 받았던 것인데,

번호가 달라져 있어 무슨 광고 문안으로 보고 무시하고 말았던 것.

오늘 다시 연락을 하고 번호 달라졌다는 문자가 같이 들어와서야

상황을 이해하였다.

그런 일 더러 있겠고나,

의도하지 않게 오해가 얼마든지 만들어질 수 있겠고나 새삼스러웠다.


한 벗이 섬에 가는 길에 같이 가자고 했다.

그런데, 그 섬에 나는 가지 않는다. 아마도 오랫동안 그럴 것 같다.

장소는 공간만을 점하는 존재로서의 의미만은 아니다.

모든 사물이 갖는 혹은 말이 갖는 중의처럼 그 역시.

세 번이나 좋지 않은 기억이 되풀이 되고 보면 그곳에 다신 갈 수 없겠다는 마음이 든다.

결국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겠다.

그 섬과 결부된 어두운 기억이 꼬리를 물고 삶을 흔들던 시간이 있었다.

그건 다시 그곳에 가서 극복하고 싶은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냥 그리 묻어두는 일도 있다.

그가, 우리가 그라고 부르는 사랑하는,

그가 가서 산에 오르고, 그가 가서 섬을 가고, 그가 가서 ...

이제 그는 가고 없는데, 살아남은 내게 그곳이 다 무슨 소용일까.

하지만 시간은 힘이 세니

시간이 마구 흘러가고 나면 다시 그 섬에 갈 날이 올 수도...

하여 망각을 사랑하노니.

그것이 또 사람을 살게도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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