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오는 여름 들목 같은.

바람 거칠었고, 마른비가 간간이 허공을 가르며 나렸다.

그래, 어떻게 오늘 같은 날 하늘이 조용할 수 있겠는가.

세월호 2주기.

삼풍이 무너지고 그 1주기를 기억한다.

현장 주차장에서 살풀이를 추었고,

교대까지 거리제를 지내며 이동하여 아이들과 추모제를 지냈다.

비바람에 도심 한가운데 나무가 뿌리째 뽑히기도 했고,

하여 자리를 늦도록 지킨 건 겨우 얼마 되지 않았던 그해 초여름의 을씨년스러운 풍경.

세월호 1주기 작년에는

하루 종일 아무 말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일기장은 비어있었다.

그리고 2주기. 오늘은 어떤 뉴스도 듣지 않겠다, 보지 않겠다.

까닭을 아는 이별도 이리 숨쉬기가 어려운데,

고작 그 열흘에도 몸에 떠난 이가 살아 자지도 먹지도 못하고 보냈거늘,

왜 죽었는지 어떻게 죽었는지 모르고 국가의 폭력에 자식과 벗을 보낸 그 몸들은

이태를 어이 견뎠을까나...


고래방 앞쪽으로 냉이꽃들 키 훌쩍 커 있어 점심답에 뽑아냈다.

그제부터 오며가며 뽑고 있는 중.

비 내려 들어와 바느질을 좀 하고 났더니 훌쩍 시간이 갔고,

기숙사에 있는 아이가 들어오는 저녁답.

힘 좋은 그 아이를 기다렸다.

부엌 곳간에 있는 보조 냉장고를 결국 꺼내기로 했다,

새 물건이라 해도 좋을 냉장고이나 어차피 무리하게 고쳐 쓸 건 아니어.

여름 계자를 위해 보조 냉장고가 하나 있기는 해야 하여

어디 노는 냉장고 없을까 했는데,

간장집에 성능 떨어진다 여겼던 냉장고가 알고 보니 바람칸이 막혔던 것.

선배가 올 때마다 먹을 걸 재워놓는다고 오래전 넣어준.

나이 스물 때부터 곁을 지켜주었던 선배는 때때마다 그의 그늘을 그리 느끼게 한다.

냉장고를 빼내고 그 결에 곶간을 정리하고 닦아냈다.

그 자리에 간장집 부엌 냉장고를 내려 집어넣고.

크기가 있던 것의 절반에나 미칠까 하나 요긴할 것이다.


자, 하던 결로!

고래방 곁 묻혀있던 김장김치를 꺼내왔다.

많이도 먹고 잘도 먹었던 것이나 아직도 적지 않다.

해마다 2월 빈들이든 4월 빈들에서 했던 일을 이번엔 마침 네댓 모인 김에 하기로.

총각김치는 한 꾸러미밖에 먹지 않아 두 꾸러미나 남았다.

배추김치 세 꾸러미.

총각김치는 그대로 김치통에 쟁이고,

배추김치는 짜서 비닐마다 넣었다,

작년엔 눈발 날렸지, 그땐 누가 있었지, 그때 막걸리도 마셨네, 그런 수다들을 떨며.

부엌 냉장고와 보조 냉장고 일부를 채워 넣고

달골 냉장고의 냉동실까지 넣으니 정리 끝.

(아직도 겨울 지난 살림이 달골로 올라가지 못하고 있고나...)

아고, 큰일했네!

다들 욕봤다.


간밤에야 열흘 만에 달디단 잠을 잤다.

두 해를 오직 매달리며 마음을 썼던 일이 무너지고

스산하기 짝이 없는, 도무지 먹지도 자지도 못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오늘, 내 삶에 동행했던 몇의 도반을 생각하였네.

무슨 일이 있어도 나를 지지하고 격려하는,

어떤 순간에도 날 주눅 들게 하지 않고,

머리 부스스한 아침이나 들일에서도

흰머리 희끗희끗한 지금도 귀여워하고 사랑한다 존경한다 말해주는,

내 작은 정성스런 손 자락 하나에도 언제나 고맙다고 전해주는,

그리고, 사는 일이 그만 지겹고 아득하여 죽고 싶은 순간에 죽고 싶다고 고백할 수 있었던,

아, 그들이 날 일으키고 손잡고 걸어 주었구나.

그게 한 사람도 아니고 둘이고 셋이고 넷이고 보면...

사람 때문에 죽지만 또한 사람 때문에 사는...

단 한 사람만 내 편이 있어도 저버리지 못할 삶이려니.

내 삶도 누군가를 살리는 길이기를.


오싹하기까지 한 거친 바람이 쉼도 없이 달리는 밤.

이민을 위한 모든 서류를 완료하고 이제 인터뷰만 남겨놓고 있는 이는

추자도 올레를 걷고 막 돌아왔단다.

하지만 출장을 간 이는 강풍으로 제주공항에 발이 묶여 집에 가고 싶다 문자로만 왔네.

오랜 벗인가를 만나러간 한 친구는 무사히 돌아왔을까.

다들 너무 고생스럽지 않으시기로,

사는 곳이 꽃구경인 이곳처럼 모다 아름다운 여행길이시라.

그나저나 저리 들썩이는 된장집 지붕이 이 바람에 붙어있기는 할까,

학교의 낡은 살림들은 괜찮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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