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는 아침에 그쳤으나 바람은 점심때까지도 마을을 흔들었다,

시간 지날수록 잦아들기는 하였지만.

이른 아침 수행을 끝내고 새벽 버스를 타고 나갈 아이를 위해 밥상을 준비하러

학교 마당을 가로지르고 있었는데,

문득 뒤에서 무언가 당겨 돌아본다.

무거운 나무현판이 종잇장처럼 날려 기둥의 솔라등을 치고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아...

동시에 게시판도 맥없이 앞으로 엎어져버렸네.

된장집 지붕도 밤새 덜렁거렸다.

달골은 별일 없으려나.


집안의 큰 어른 한 분이 다녀가라는 전갈을 보내왔다.

큰 삼촌은 동생들을 먼저 보내고,

남아있던 또 한 동생인 막내삼촌을 2주 시한부 삶을 병원에 놓고 계셨다.

또 한 분이 떠나시는구나...

병원부터 들렀다가 큰 삼촌 댁으로 향했다.

“우리 집안이 얼마나 공부가 되어있는 집안인고 하니...”

뭐 그런 거다.

“이제 좀 면이 서네.”

“그래봤자 옛일이지.”

무릎 꿇고 들으며들 속삭인.

일본에서 전시하셨고, 서예대전에서 대상을 받으셨던 작품을 주셨다.

글이 당신 꼿꼿했던 세월처럼 힘 있고 살아 펄펄 뛰었다.

문외한이 보아도 뛰어난.

내용을 풀어본 즉,

예로부터 이제까지 엎드려 살피고 우러러 관찰하니 오직 임금이 복을 짓는 것이라.

임금의 길이나 결국 어른의 길이고 교사의 길이고 사람의 길이었다.

아이들 가르치는 곳이니 새겨 읽을 만하리라고 주신 것.

“일반 가정에는 걸 수도 없을 게다.”

달골 창고동 벽에 걸어두리라 한다.


군대 간 민우샘 글이 닿았다.

부대에 꽃들이 한가득 피어서 아름다웠던 물꼬의 여름과 겨울을 회상했다고.

‘사회에 있을 때 이리저리 치이고 바쁘게만 살다보니

차라리 군에서는 아무 고민 없이 마음 놓고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이것도 또 절대 예삿일이 아닌 걸 한껏 느끼고 있습니다.

... 세월호 2주기를 보도하는 여러 매체들을 보다가,

문득 옥쌤이, 물꼬가 생각나서 오랜만에 글 남깁니다.

... 아직 잊지 않고 있습니다! 가까운 미래에 다시 뵐 수 있길.. 건강히 지내십시오!’

먹먹했다.

시간 흘러 어여어여 보세나.

면회도 가리. 대구라 했지.


한밤, 물꼬의 논두렁이고 학부모이고 벗인 시인 문저온님과 오랜 통화.

먼 곳에 이리 가까운 벗이 사니 삶이 또한 복되다.

이생진 선생님 시잔치에 대해 의논하다.

그가 사회를 보면 어떨까. 그리하기로 한다.

사회를 봐왔던 아리샘이 전체 감독을 맡고, 밥바라지는 옥영경이.

그런데, 이생진 선생님이 여전히 움직일 수 있으실까?

사모님이 병상에 계셔

평생 섬을 돌았던 선생님이 요새는 겨우 달마다 하는 인사동 시모임만 나가고 계신다 했다.

이 먼 곳까지 오실 수 있으시려나...

글월 드렸다.

하루하루 살아내느라 여름 가고 겨울 가고 봄이 오는 동안

(엄밀히 말하면 노는 것까지 하느라고 바쁜)

이적지 전화 한번을 드리지 못 하고 있었던.

‘지난여름 황망하게 교통사고로 가장 가까웠던 선배를 잃는 것을 시작으로

여럿을 연이어 떠나보내고

도대체 정신을 차릴 수가 없는 시간들이 길었습니다.

불가에서 두 번째 화살을 맞지 말라 하였으나

슬픔으로 고통스러웠고,

제 삶도 덩달아 흔들리던 시간들.

갑자기 선생님 시잔치의 계절이 다가온다 싶자

적어도 오늘 밤은 생기가 일고 있습니다.’

내년에는 물꼬의 안식년이라 일정들 또한 그리 쉬게 될 것이니

올해는 꼭 하고 싶다,

무엇보다 이 산마을에서 선생님을 너무나 그리워한다 말씀드렸다.

혹여 못 오게 되시더라도 우리는 6월에 모여 시를 함께 읽을 것이다.

그런데, 예년처럼 밤이 아니라

올해는 서너 시 모여 학교에서 차를 달여 마시고,

낮 5시 달골 올라 시를 나누고,

내려와 저녁을 먹고 뒤풀이를 하는 일정이면 좋으리 한다.

달골 명상정원 ‘아침뜨樂’ 여는 잔치도 되겠다.

물꼬의 오픈하우스 같은 시잔치,

낯선 이도 오고, 그 어느 것보다 중한 건 늘 일로 주로 모이는 물꼬 샘들이

이날만큼은 같이 누리러 모이는 날.

6월로 설렌다.

사람을 힘겹게 보내느라 탈진 상태였던 시간이 바닥을 치고 올라온다.

고맙다, 내 삶의 훌륭한 도반들!

어느 해 그 6월의 모임에서 깊어진 인연 하나 있다.

먼 곳으로 갈 그이를 잘 보내는 시간이 될 수도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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