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들모임.

어느 때보다 작은 빈들이니 한 사람 한 사람 하고픈 것들도 하나씩 챙겨하자.

낮이고 밤이고 길을 걷자 했고, 저녁상을 물리고 산마을 고샅길을 걸었다.

윗마을과 아랫마을 사이 공간이 빈 곳에 이르렀다.

뿌연 하늘에 흐린 달을 배경으로 산이 둘러치고 마련된 무대에서 판소리!

“이렇게 재미있는 얘기였어요?”

심봉사가 주막에서 뺑덕 어미를 잃고 홀로 황성길을 가다,

물소리 듣고 달려가 풍덩 들어가 목욕을 하며 마음 좋아졌네,

허나 그만 옷을 잃고 한탄하고,

다행히 태수를 만나 옷을 얻어 입고 낙수교를 얼른 건너 시원한 데 앉다,

아낙들 방아를 찧어주기까지의 그 새옹지마와 구구절절한 사연의 소리를 해설과 함께.

“아, 멋져요!”

멋들어진 밤이었네.


바깥나들이를 가자, 제주도가 거론됐고 진도 완도가 입에 올려졌더랬다.

비행기 삯을 모으는 새끼일꾼들도 있었다.

그런데, 안에서 하게 됐고,

마침 중고생 중간고사가 마지막 주에 몰려 오기가 쉽잖게 되다.

대학생들도 중간고사 아직 끝나지 않은 학교들이.

게다 아이와 오기로 한 한 부모 가정에게는

5월 초 ‘범버꾸살이’에 더 여유롭게 다녀가며 상담을 하면 어떻겠냐 권했고,

문의한 한 가정에 답글을 못 보내는 속에 빈들이 있는 마지막 주에 이르러

어제야 겨우 역시 ‘범버꾸살이’에 다녀가면 어떻겠냐 메일 넣었다.

그렇게 되니 결국 물꼬의 주요 식구들이 봄학기 일정을 의논 차 모이게 된 상황.

가볍고, 또한 깊을 시간이겠다 했다.

그리고, 그러했다.


아침부터 달골 올라 마당 꽃밭을 돌보고, 창고동 청소를 하고,

가까운 식구들만 모인다고 햇발동 청소는 모두 같이 잠자리 들기 전 하자고,

식구들이 오니 또 이런 맛이 있다.

버스가 들어오고 사람들이 내리고,

부랴부랴 학교로 달려 내려왔다.

그 먼 길을 저리 또 바리바리 싸서 왔고나.

김상희 엄마는 또 떡을 해서 보내오셨다.

먼저 차를 내다.

오느라 애썼다, 사느라 욕봤다, 사흘을 같이 아름답게 여행하자.


저녁 밥상을 준비하는 동안 사람들은 운동장에서 키 큰 냉이꽃들을 뽑아냈다.

사람 같이 산다, 사람이 이리 살아야지 싶더라고.

밥상에는 좋은 인디음악들이 함께했다.

늘 음악이 흐르는 가마솥방,

이번 빈들은 그렇게 모인 사람들이 노래도 준비키로 했던.

‘그 중에 그대를 만나’도 들었네.

좋더라. 하기야 무슨 노래인들 좋지 않았을 순간이랴.

옥샘께 바치는 노래라나 어쩐대나.


그렇게 대단한 운명까진 바란 적 없다 생각했는데

그대 하나 떠나간 내 하룬 이제 운명이 아님 채울 수 없소


별처럼 수많은 사람들 그 중에 그대를 만나 꿈을 꾸듯 서롤 알아보고

주는 것만으로 벅찼던 내가 또 사랑을 받고 그 모든 건 기적이었음을


그렇게 어른이 되었다고 자신한 내가 어제 같은데

그대라는 인연을 놓지 못하는 내 모습, 어린아이가 됐소


별처럼 수많은 사람들 그 중에 그대를 만나 꿈을 꾸듯 서롤 알아보고

주는 것만으로 벅찼던 내가 또 사랑을 받고 그 모든 건 기적이었음을


나를 꽃처럼 불러주던 그대 입술에 핀 내 이름

이제 수많은 이름들 그 중에 하나 되고

오~ 그대의 이유였던 나의 모든 것도 그저 그렇게


별처럼 수많은 사람들 그 중에 서로를 만나 사랑하고 다시 멀어지고

억겁의 시간이 지나도 어쩌면 또다시 만나

우리 사랑 운명이었다면 내가 너의 기적이었다면’


상을 물리고 바느질을 잡고 있는 곁에서들

실타래와 야단법석이 이어졌네.

“오늘은 뭘 먹을까, 다섯 개의 메뉴 가운데 하나?”

곡주도 한 잔.

건조했던 마음들을 서로 어루만지다.


참, 금룡샘한테서 낡은 달골 세탁기를 대신할 소식이 오다.

마침 아파트에서 쓸 만한 세탁기가 나온.

이른 아침 연락이 왔다. 출근했는데 다시 댁까지 가서 챙겨둔 모양. 고맙다.

그런데, 언제 어찌 실어오나, 가까운 날이긴 어렵겠는데...


그리고, 그대 연애에 부쳐-

사랑하지 않았거나 혹 비겁하진 않았느냐.

사랑하면 상대가 아플 때 같이 아프더라.

죽음은 2인칭일 때 가장 슬프지 않더냐.

나도 아니고 그도 아니고 너일 때 가장 아프지 않더냔 말이다.

사랑하는 이가 어려운 일을 겪을 때 걱정 되고 뭔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게 되더라,

사랑이 맞다면 말이다.

우리 자주 비겁하지, 손해볼까봐, 내가 다칠까봐, 내 걸 잃을까봐.

그래서 나이 들어서 하는 연애가 어려운 듯.

물불 안 가리는 그런 거 잘 안 하니.

거짓말이 문제가 되었다 하였느냐.

한 순간의 거짓말이 문제가 아니다.

알고도 모르고도 우리 거짓말을 하지.

다만 그 시간 상대가 겪었을 마음, 그가 어떤 상황 어떤 마음이었겠구나

짐작하고 헤아리지 못한 것이야말로 실수가 아닐지.

사과하렴, 당신 마음이 어려운 때 내가 외면해서 미안하다고.

그리고, 꼭, 여전히 사랑한다면 사랑한다 말해주거라.

나아가 그의 방식으로 사랑을 해주어라.

나도 그대를 사랑하므로 그대의 방식으로 말하나니,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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