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4.28.나무날. 맑음

조회 수 719 추천 수 0 2016.05.11 11:33:29


이제야 푸성귀 모종을 들였다.

씨를 놓아 길러내는 것도 있지만

이렇게 해마다 모종을 사들이기도.

종자를 받지 못하도록 하는 거대 종자기업들의 농간으로

토종이 아니면 길렀던 것에서 씨를 받아 다시 키우기 쉽지 않은.

세 종류의 고추에 남새밭에 놓을 몇 가지 채소,

더하여 올해는 수박도 몇 포기 놓아 볼거나.


달골 오르는 길에 전주가 새로 놓이고

굵은 전기선으로 바꾸느라 공사가 종일 있었다.

그런데 겨우 차 한 대 오를 수 있는 길이라

결국 물꼬의 창고동 앞까지 와서 차를 돌려내려가게 된.

그런데, 비 온 뒤라 질퍽거리는 땅이 다 패이고,

밀려난 바퀴는 그만 우체통을 들이받아 망가뜨린.

공사 끝내고 가기 전 복구를 부탁했다.

저녁 상담을 나가기 전 현장을 보고 깜짝 놀란.

야물게 해주고 떠났더라, 물꼬에서 늘 하는 얘기처럼,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드문 일이었다.

감사하다 문자 넣었다.


범버꾸살이에 다녀가겠다는 윤실샘의 연락이 있었다.

대학시절 물꼬에 손발 보태고

교사 임용 뒤에도 한참을 물꼬에서 가는 보육원에 함께 움직이고

물꼬의 논두렁이기도 했던.

연구년으로 3년을 일곱 개 나라 공동체를 도느라 물꼬를 비운 동안

물꼬를 지켜냈던 한 사람.

한국을 떠나기 전 가회동에 있던 물꼬로 와서 마지막 밥을 같이 먹었고,

한국으로 돌아오던 비행기를 공항까지 나와 기다려주었던 바로 그니.

결혼 6년 만에 아이를 낳았고, 그 아이 일곱 살에 이르렀다.

그 아이 자라는 동안 소식 닿지 못했고나.

‘윤실샘, 너무 뜻밖이라 반갑다는 인사가 다 모자랐네.

그대들이 만들어온 물꼬, 우리들의 물꼬!

어여 오소.’

그들이 있어 지금 여기 이른 물꼬라.


오늘 먼 섬에서 엽서 하나 닿았다.

그저 어디를 다녀왔노라는 건조한 문장들이었으나

그건 긴 시간 묵은 감정들을 터는 말걸기로 읽혔다.

관계는 작은 것 하나로 엉키기 시작하기도 하고

마찬가지로 작은 하나로 긴 세월의 감정이 풀리기도 한다.

그래서, 그러므로, 봐야 한다, 그리고 말해야 한다.

보면 아무것도 아니고,

말하면 또한 그토록 가슴에 사무치던 일이 아무것도 아니기도 한.


그리고 그대 연애에 부쳐-.

자주 우리 비겁하고 게으르다.

그런데 말이다, 어쩌면 비겁하고 게을렀다기보다

시간이 지나고 열정이 식어 다른 관계나 일들에 밀린 게 아닐지.

헌데, 그건 자연스러운 것.

그 희미해진 감정을 이어서 쌓아가는 건 함께 보낸 돈독한 시간, 신뢰,

혹은 일상을 공유하고 같이 차곡차곡 살아가며 아껴주는 시간들이지 않겠는지.

그리하여 호기심 같은 초반의 사랑과는 다른 질감의 사랑을 쌓으며

긴 세월을 같이 늙어가는 게 아닐지.

그런 걸 정말 사랑이라 부르는 게 아닐까.

상대가 내 온 생을 걸만치 여전히 매력적이어

날 살아 펄펄뛰게 한다면야 더할 나위 없을 환상이겠지만.

내가 뭔가 얻으려면 다른 어떤 걸 또 포기하기도 하는 게 생일 것.

사랑의 책임은 홀로 누린 자유의 일정 정도를 제물로 원하기도 할 것이다.

내가 저 사람을 정녕 사랑하는가에 답이 있잖겠느뇨.

뭘 주어도 아깝지 않을 이와 ‘뜨겁게’ 그리고 ‘정성스럽게’ 고운 사랑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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