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하. 여름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맥량(麥凉), 맥추(麥秋)로도 불리는 것은 ‘보리가 익을 무렵의 서늘한 날씨’이기에.

‘초여름’이라고 맹하(孟夏), 초하(初夏), 괴하(槐夏), 유하(維夏)라고도 부르는.

쑥버무리가 딱 좋은 날.


아이들이 왔고, 어른들이 왔고,

가기도 하고, 묵기도 한다.

물꼬는 5월 가정학습주간 동안 ‘범버꾸살이’ 중이다.

아이들이야 물꼬를 여러 번 다녀가도 부모들이 여기까지 들어오는 경우는 흔치 않다,

계자도 영동역에서 아이들을 부려주니.

하여 학교안내모임부터.

“제가 왜 물꼬를 좋아하는지 알겠죠?”

교문에서 끝난 물꼬투어에서 자랑스럽게 아이들은 부모님께 그리 말했다.

저녁을 먹을 때 한 어른이 아이에게 물었다.

“어린이날 선물 받았어?”

“물꼬에 오는 게 선물이죠.”

아, 고맙기도 하여라.


밥 먹고,

모래사장에 풀도 뽑고, 소도를 고르는 일도 같이 했다.

틈틈이 아이들은 책을 읽기도 하고 목공도 하고

해먹을 그네삼아 흔들거리기도 하고

저마다 어린이날을 누렸다.

싱싱한 하루였다.

해질녘 어른들은 다시 호미와 글겅이를 들고

소도 안의 땅을 다 쪼아 편편하게 고르는 마지막 작업을 끝냈다.

엊그제 예비교사연수에서 1차 작업을 하고 가서 편했던.

해가 기울 때까지.

다시 밧줄로 모양을 가다듬고.

아이고, 글겅이질에 허리며 어깨가...

(흔히 일어를 그대로 써서 ‘네기’라고. 돌을 골라내거나 이랑을 평평하게 일굴 때 쓰는.

글겅이라면 원래 마소 털을 빗기는, 쇠로 만든 빗 모양의 기구인데, 쇠스랑은 아닌,

가장 근접한 낱말일 듯.)


저녁 밥상을 물리고 설거지를 하고 있을 적

유기농을 하는 광평농장 식구들이 왔다.

“먹는 밥에 그냥 숟가락 걸치기요.”

들에서들 바로 온 걸음이라 아직 식전들이었다.

위탁교육 왔던 벌들을 데려가려 온 걸음.

지고추며 사과며 머윗대장아찌며 많이도 날라온 먹을거리들.

친정이 어디 다른 곳이겠는가.

“생강 밭 맬 때 갈게요.”

작년에도 물꼬 식구들이 밭 매러 갔더랬다.

“품앗이 해야겠네. 우리 기계 가져와 운동장 한 번 밀게요.”

해마다 김장배추를 그곳에서 같이 키워 보내오신다.

손 한 번 제대로 보태주지 못하고...

얼마나 많은 이들이 물꼬를 멕여살리는지.

그 그늘들이 물꼬를 계속 존재할 수 있게 한다.


“옥샘을 생각하면... 애틋함이 있어요...”

그랬더란다.

초등 2년 때부터 보았던 아이가 스물대여섯 살에 이르렀다.

최근 수년은 보지 못했다.

어느 해인가, 시청광장에서 비폭력평화물결 세계대회에서 강강술래 진행을 맡았을 적

그 아이를 거기서 몇 해만에 반가이 보기도 하였고나.

그때 한 대안학교의 고등과정을 마치던 무렵이었던가.

그런데 오늘, 몇 해를 물꼬 안에서 일했고,

긴 세월(무려 20년) 지나 최근 물꼬에 손발 다시 보태고 있는 품앗이샘이

그 아이랑 만났다고 전화를 해왔다.

오늘 누구를 만났는지 아세요? 선생님도 아시고 저도 아는...”

“지윤이?

디자인학교를 다니는 동료 학생들과 무슨 소품을 가지러 왔더라지.

그리고 어린 날 물꼬를 다닌 시간들을 얘기하며

“내년에는 물꼬가 쉰다고 하니까 이번 여름에는 꼭 계자에 가야지 해요.”

그랬다지.

아, 소식 멀어도 간간이들 그리 물꼬 누리집을 챙겨보는 모양이다.

그래, 우리 계속 걷고 있다.

아, 애틋함, 그러니까 그 아이가 다녀가던 마지막 시기,

물꼬는 공동체를 해체하고 더 이상 계자조차 계속 할 수 없겠다 했을 적

물꼬에서 자란 중고생 대학생들이 이곳을 지켜나갔다.

특히 아람이와 소연이와 지윤이, 이어 연규와 윤지와 수현이.

고등학생들이었던 그들이 거뜬히 어른 몫을 해주며 이곳 주축으로 계자를 살려냈다.

그리하여 1989년부터 시작되었던 물꼬의 걸음걸이가 2016년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는 것.

힘에 겨웠으나 참으로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고맙다, 내 어린 벗들이여!

멀리서도 그렇게들 물꼬를 여전히 지켜내고 있고나.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내일은 또 내일의 사람들이 들어올 것이다.

묵은 이들이 나가기도 하고.

5월 1일부터 8일까지 여기는 지금 ‘범버꾸살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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