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5.11.물날. 갬

조회 수 715 추천 수 0 2016.05.26 01:27:09


밤이 하얗다.

검은등뻐꾸기가 밤새 운다.

소쩍새 오기 전 밤을 메우는 새.

산마을은 그렇게 천지를 채우는 존재들로 늘 풍요로운.


오래 함께 산 가장 가까운 도반이 건네 온 몇 마디,

최근 달골 햇발동 거실에 있던 강신주의 <김수영을 위하여>를 빌려가 읽고는.

내가 그대 살아온 날을 알잖아,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가는, 이라고 운을 떼기 시작,

시인이 필요 없는 세상, 자유로운 개인들이 사는 세상,

공동체도 맑스도 김수영도 결국 같은 꿈을 말한 게 아니겠는가,

김수영을 흔히 혁명시인 참여시인이라 하는데

그런데 같은 이념아래 뭉치고 그것을 지향하는 게 아닌

시인이란 단독자를 꿈꾸는 사람,

그렇게 홀로 걸어간 사람, 그리하여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걷는 사람,

그러므로 그대가 시인이다, 그러데.

애정을 가진 이가 진지하게 건네는 말은 여운이 길어

‘내가 살아가는 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더라.

자신의 길을 갈 것, 누구라도!

그리하여 그대 또한 한 시인일지라.


어르신 한 분이 밥 한 끼 준비해주셨다.

“오늘은 무슨 명분이래요?”

그냥이란다. 옥선생 밥 한 번 안 하게 하는 정도란다.

밥을 내는 일, 귀한 일이다.

이 산골에서 그저 밥이나 해먹고 사는 일이

미약한 한 존재가 겨우 하는 ‘저항’의식인 나로서는 더욱.

(‘저항’에 대해 뭐 굳이 사족을 달자면,

사 먹지 않고 밥을 짓는 일을 귀하게 여기고 의미 있게 한다는...)

열심히 사는 후배에 대한 격려가 고마운 저녁이었네.


요새는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사람들의 근황을 알 수 있다.

심지어 원치 않을 때도 소식을 듣기가 쉽다.

하지만, 타인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실시간으로 알고 싶지도 않고

내 삶 역시 그러길 나는 원치 않는다.

하여 물꼬 누리집의 ‘물꼬에선 요새’만 하더라도

날마다 기록을 할지라도 한두 주 넘게 간격을 두고 글을 올린다,

게으르거나 일에 밀려 그럴 때도 있지만.

오늘 다음 주에 들꽃을 안내할 산행을 검색하다가

뜻하잖게 얼마 전 그 곳을 다녀간 사람들의 사진을 보다.

그런데, 한참을 보지 못한 한 사람을 거기서 본다.

대개 관심도가 비슷하니 그러그러한 동네에서 서로 근황을 알게도 되지.

보이니 또 보게 되더라.

그가 늘 손에 달고 다니는 물건이 있는데, 보이지 않았다.

그의 세계가 또 다른 세계로 넘어갔나 보다.

즐겁고 좋으면 또 만날 테다.

하기야 즐겁고 좋아도 또 비껴가기도 하고,

그러다 어느 모퉁이에서 마주치기도 하고.

중요한 건 지금 서로가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

그랑 ‘봄’도 더는 현재형이 아니다, 지나간 시간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과거가 된다.

헌데 말이다, 과거는 어떤 식으로든 우리에게 남고,

그래서, 그러므로, 또한 늘 ‘현재’이기도 하다는 것에 소스라치게 또 놀라는 사람살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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