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5.12.나무날. 쏟아지는 별

조회 수 812 추천 수 0 2016.05.26 01:29:39


입하 지나며 여름 속으로 성큼 걸어간 계절이다.

아침 수행에 이제 땀이 삐질삐질.

이번 봄학기는 저녁 수업에 집중하며 학기가 흐르고 있다.


학교를 내려가기 전엔 달골 마당 풀을 뽑는다.

더러 일찍 내려가 밭에 들어가 보기도 하고.

마당 앞 수로 쪽으로 풀 무성하다.

저게 키가 더 크고 세가 커지면

나중엔 호미질도 못하고 결국 예취기를 돌려야 한다.

아직은 풀을 뽑아낼 수 있는 시기.

손 바삐 옴작거리는데 어데서 더덕향 짙게 흩어진다.

아코, 더덕 줄기 하나 뽑혔구나.

다행히 죽은 건 아니니 다시 잎 올라오거나 다음해를 기약하거나.

우리가 모르는 ‘사이 혹은 틈’이 얼마나 많은지.

사람이 모르는 ‘사이 혹은 틈’은 또 얼마나 많던지.

모르는 사이 거기 자리를 잡고 자신의 삶을 꾸리는 존재들을 우리 무심히 스치고,

그렇게 지나치는 숱한 존재들이 이 우주에 얼마나 얼마나 많을 것인가.


후미진 곳 들여다보기, 청소의 핵심을 말할 때 꼭 입에 올리는 문장 하나이다.

보이지 않는 곳을 잘 정리해두는 일은

마음결을 고르는 일처럼 누가 보거나 그렇지 않거나 정갈하고픈 마음.

고추장집 보일러실, 된장집 창고라면 사람들이 와서 들여다볼 일 거의 없는 공간에다

겨울 아니라면 평소 그리 쓰일 일도 별 없는 곳.

그런데 겨울 끄트머리에 그곳을 들여다보며

두어 해 동안 정리하려고 들어간 일 없고나 하고

날 푹해지면 날 잡아 청소하자 가마솥방 칠판에 적어는 두고

봄 훌쩍 떠나고 이미 여름 시작되는데, 그걸 하루 하기가 쉽잖더라.

오늘 드디어 하였고나.

청소는 그 공간에 무엇이 있나 알게 되고

그러면 필요할 때 그곳에 잘 쓸 수 있도록도 하게 되는 일.

아, 이게 있었구나,

으이그, 세상에, 쓰레기를 급한 마음에 당장 자루 속에 쑤셔두고 여태 그리 두었구나,

이게 다 뭐야, 있을 곳에 있어야지, ...

살림이 크니 석 달 열흘 가도 손 한번 대지 않는 곳이 한두 곳이 아닌.

하지만 마음 먹어두면 언제라도 또 하는 날이 오지.

그래 그래, 지금 못해도 마음을 먹는 것도 중요하다!


달골 명상정원 ‘아침뜨樂’에 마지막 굴삭기 작업 일정이 잡히다;

5월 23일 사흘을 예정한다.

잘하려면 한정 없는 일이 또 그런 일일지라.

그만큼에서 장비가 들어오는 일은 거두기로 한다.

그것에 쓰일 경제 규모가 한계치이기도 하고.

그 뒤로는 정말 사람 손이 해나갈 일이라.

아침마다 ‘아침뜨樂’에서 두어 시간 이상을 보내게 될 테다.

그렇게 해가 쌓이고 먼저 수행하며 잘 닦아놓으면

어변성룡(魚變成龍)이라, 물고기 변하여 용으로 하늘 오르듯

걷는 이들에게 그리 생기 돋우는 공간이 되지 않을소냐.


멀리서 두어 해만에 찾아온 이들이 있었다.

인근에서 모임이 있어들 왔다가 물꼬 들어와 자고 싶다 하였으나

저녁 수업을 하고 들어오자면 야삼경,

하여 고개 너머 모임이 있는 마을에서들 묵기로.

“그래도 얼굴은 보지요.”

수업 나가는 길에 넘어가다.

저녁 밥상을 준비하는 안주인을 위해선 불두화를 꺾어

찾아온 이들을 위해선 네 잎 토끼풀을 찾아서 쥐고가다.

산마을의 선물은 그런 것.

앵두가 나오면 앵두를, 산딸기가 나오면 산딸기를, 오디를, 감을,

찔레꽃을 꺾어도 가고, 진달래 생강꽃을 들고도 가고.


- 소식이 통 없으셨네.

- 나 혼자만 재밌으면 약 오를까 봐.

한참 만에 소식 닿은 벗이 있었다.

여러 곳으로 여행이 길었는 갑다.

나야 이곳이 여행지라, 날마다 여행이거늘, 그동안 다닌 세상구경도 적잖았고,

벗이 좋은 곳을 갔다면 반길 일.

외려 고맙다, 벗이 마음 좋다면, 한 사람이 잘 누릴, 재미진 일이 있다면,

더구나 내가 사랑하는 벗이라면 그가 좋은 일이 내게 왜 좋지 않을 텐가.

그런데, 좋은 곳에서 사람을 생각할 수 있잖겠는가 하는 마음은 들데.

자랑질 하려는 게 아니라, 그대 생각났네, 그렇게 소식 줄 만도 할 일.

아름다운 꽃 앞에서, 맛난 것을 먹으며, 좋은 곳에 가서, 길을 걷다가도

문득 그대 생각났다, 마음에 그가 들어오면 전해주기도 할 일.

- 사람 사는 게 뭐 있어?

그리 자주 말하던 선배가 생각난다.

그에게 문자 한 줄이라도 넣으리.

지금 넣고 다음 행 쓰기.


차를 챙겨준다는 선배 소식이 닿다, 물꼬의 논두렁이기도 한,

6월 첫 주말 산을 오르자는.

지난겨울 발해추모제에서 산 한 번 같이 갈까 하던 모의의 결론인 셈.

강진의 주작산을 오를까 한다.

사는 게 뭐라고, 좋은 사람들과 그런 시간 한번을 내지 못한다면 삶이 너무 건조하잖여.

그대, 언제 오시면 우리 마을길을 걸읍시다려, 밤이면 밤인 대로 낮이면 낮인 대로.

요새는 어른들 소식이 더 많은 물꼬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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