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5.21.흙날. 맑음 / 섬모임

조회 수 885 추천 수 0 2016.06.03 15:57:47


서울에서 책읽기 모임 ‘섬모임’이 있었다;

낮 10시 50분 서울미술관에서 만나 ‘이중섭은 죽었다’전 관람, 석파정 거닐고,

점심 먹고 윤동주 문학관 지나 청운문학도서관 사랑채에서 책읽는 모임.

강남으로 옮아가 저녁을 먹고,

밤에는 한강변에 나가 차를 달여 내다.


이중섭이 1952년 즈음 부산시절에 그린 ‘봄의 아동’이 교무실 벽면에 있다.

세 해 동안 일곱 개 나라 공동체를 돌다 한국에 돌아왔을 때

제자(이렇게 칭하는 이가 몇 되지 않는, 스스로 쑥스럽기도 하고) 재은샘이,

그도 벌써 마흔에 이르렀겠다,

무사귀환 혹은 상설학교 개교를 앞두고 축하하는 그런 의미로 보내왔던 액자.

이후 이중섭은 그 그림으로 먼저 생각되는.


‘예술가들은 저마다 그 시대의 낙인을 지니고 있다.

가장 위대한 예술가는 그 낙인이 가장 깊이 박힌 사람이다.’

그렇게 말한 앙리 마티스를 좋아했다던 이중섭이다.

최열의 <이중섭평전> 서문에서 ‘홀로 천리 길 걷다 떠난 그의 생애’라고 썼다.

이중섭은 평안남도 평원을 떠나 평양, 도코, 부산, 서귀포, 대구를 거쳐

서울에서 행려병자로 세상을 떠났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아마도 그렇지 싶은데,

52년 장인의 부고에 일본인 아내와 두 아들을 보내고 오고간 애틋한 글월과

그 안의 그림들이 특히 아슴하고 아리다.

이중섭의 포효하는 듯한 소는 민족주의자들의 담론으로 쓰이고는 한다.

그런데 나는

일제강점기, 전쟁과 가난, 그 시대에 남편이고 아버지였던 한 예술가가 담았던

삶에 대한 관심을 읽는 것이 좋다.

글과 그림으로 남은 그 가족애, 사랑 그런 것.

그래서 그의 그림을 더욱 좋아한다. 그 무엇보다 아이들이 생기 있어서.

아고라(턱이 긴 자신을 그리 불렀던)가 발가락 군(아내를 부른)에게 보낸 엽서를

찬찬히 읽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살뜰한 뽀뽀를 보내오.’

‘오직 하나의 즐거움, 매일 기다리는 즐거움은 당신에게서 오는 살뜰한 편지뿐이오.

당신의 편지를 받는 날은 그림이 한결 더 잘 그려지오.’


이중섭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다 한다.

영화는 1950년 12월 6일부터 원산에서 시작한다지.

나는 그 날(물론 그 해는 아니지만) 태어났고,

이런 숫자는 괜스레 특별해지고는 한다, 좀 촌스럽긴 하지만.

이중섭은 죽었다, 그처럼 신화 말고 사람 이야기가 되면 좋겠네.


아, 여담 하나.

이중섭이 제주 있을 적 소 먹이던 아이 옆에서 그 댁 소를 그렸는데,

딱 그 소이더라지.

그 그림이 아이 아비에게 전해지고,

마침 병풍이 망가져 화가에게 부탁을 했는데,

해녀 살결도 보이는 그 그림을 병풍으로 쓸 수 없어 치워두었다던가.

그런데 그의 아내가 친척들이며 떡 싸줄 때 잘라서 썼다나 어쨌다나.


서울미술관 뒤란은 석파정.

전시회 아니어도 그곳만 거닐어도 좋겠는.


논두렁 상찬샘이 낸 점심을 먹고

윤동주 문학관과 시인의 언덕 지나 청운문학도서관 사랑채에 들어 책모임;

유발 노아 하라리의 <사피엔스>(2015).

‘From one Sapiens to another’

겉표지를 넘기면 속 페이지 1에 저자는 그리 쓰고 있다.

세상일이 이해가 안돼서 고민했고 궁금했는데

부모도 선생도 다른 어른들 누구도, 그들 역시 잘 모르더라고.

그런 걸 몰라도 전혀 개의치 않는 것처럼 보였고,

돈과 경력, 주택대출금, 정치 문제에 대해서는 걱정이 많으면서

인생이 뭔지 모른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놀랍게도 완전히 태평하더라고.

크면 일상적인 세상사에 함몰되지 않고 큰 그림을 이해하는데 전력을 기울이겠다,

혼자 다짐했고,

그는 그렇게 했다. 그리고 <사피엔스>를 썼다고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3월 19일자에서 옮김)


p.19 역사의 진로를 형성한 것은 세 개의 혁명이었다. 약 7만 년 전 일어난 인지혁명은 역사의 시작을 알렸다. 약 12,000년 전 발생한 농업혁명은 역사의 진전 속도를 빠르게 했다. 과학혁명이 시작한 것은 불과 5백 년 전이다. 이 혁명은 역사의 종말을 불러올지도 모르고 뭔가 다른 것을 새로이 시작하게 할지도 모른다. 이들 세 혁명은 인간과 그 이웃 생명체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그것이 이 책의 주제다.


우리는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으며 어떻게 해서 이렇게 막대한 힘을 얻게 되었는가.

인지 농업 과학혁명이 인간과 그 이웃 생명체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그리하여 생명의 미래에 대해 더 현명한 결정을 내리기를.

결국, 만들어진 신화에 매몰되지 말고 인간 삶을 통찰적 시각으로 좀 봐라,

인류가 그리그리 태동했고 흘러흘러 우리 여기 있으니,

이제 당신은 어쩔래, 무엇을 위해 살래, 무엇을 할래 묻고 있다.

내 언어는 가난하여 하라리를 빌어

우리는(나는?) 우리가 욕망하는 신화를 의심하자고 같이 읽자 권했던 <사피엔스>였다.


p.174-175 고대 이집트의 엘리트처럼, 대부분의 문화에 속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피라미드 건설에 삶을 바쳤다. 문화에 따라 피라미드의 이름과 형태와 크기가 달라질 뿐이다. 피라미드는 수영장과 늘 푸른 잔디밭이 딸린 교외의 작은 집일 수도 있고, 전망이 끝내주는 고급 맨션 꼭대기층일 수도 있다. 애초에 우리로 하여금 그 피라미드를 욕망하도록 만든 신화 자체를 의심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리고, 밑줄긋기.

p.41 호모 사피엔스가 세상을 정복한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우리에게만 있는 고유한 언어 덕분이었다.

p.48 허구를 말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사피엔스가 사용하는 언어의 가장 독특한 측면이다.

p.155 생물학적 협력본능이 부족함에도 수렵채집기에 서로 모르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협력할 수 있었던 것은 공통의 신화 덕분이었다.

p.157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진 제국과 로마 제국에 이르는 모든 협력망은 ‘상상 속의 질서’였다.

p.124 농업혁명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였다.

p.129 농업혁명의 핵심이 이것이다. 더욱 많은 사람들을 더욱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있게 만드는 능력. ... 농업혁명은 덫이었다.

p.133-135 사람들은 왜 이렇게 치명적인 계산 오류를 범했을까? 역사를 통틀어 사람들이 오류를 범하는 이유와 동일한 이유에서였다. 사람들은 자신의 결정이 가져올 결과를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을 갖고 있지 않았다. ...

좀 더 쉬운 삶을 추구한 결과 더 어렵게 되어버린 셈이었고, 이것이 마지막도 아니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대학을 졸업한 젊은이 중 상당수는 돈을 많이 벌어 35세에 은퇴해서 진짜 자신이 언하는 것을 하겠다고 다짐하면서 유수 회사들에 들어가 힘들게 일한다. 하지만 막상 그 나이가 되면 거액의 주택 융자, 학교에 다니는 자녀, 적어도 두 대의 차가 있어야 하는 교외의 집, 정말 좋은 와인과 멋진 해외 휴가가 없다면 삶은 살 만한 가치가 없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 이들은 노력을 배가해서 노예 같은 노동을계속한다.

역사의 몇 안 되는 철칙 가운데 하나는 사치품은 필수품이 되고 새로운 의무를 낳는 경향이있다는 것이다.

p. 136-136 그저 배를 좀 채우고 약간의 안전을 얻는 것을 주된 목표로 삼은 일련의 사소한 결정이 거듭해서 쌓여, 고대 수렵채집인들이 타는 듯한 태양 아래 물이 든 양동이를 운반하는 삶을 살도록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p.147 앞으로도 우리는 우리 종이 집단적으로 힘을 키우고 외견상 성공을 구가한 것이 개개인의 큰 고통과 나란이 진행되었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하게 될 것이다.

p.151 그럼에도 수렵채집인의 생업경제에서 장기 계획을 세우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역설적이게도 수렵채집인들은 그 덕분에 맣은 걱정을 덜 수 있었다. 자기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일을 걱정해봐야 무의미했다.

p.193 문자체계가 인간의 역상에 가한 가장 중요한 충격은 정확히 이것, 즉 인간이 세계를 생각하는 방식과 세계를 보는 방식이 점차 바뀌었다는 점이었다. 자유연상과 전체론적 사고는 칸막이와 관료제에 자리를 내주었다.

p.211 역사에서 한번 희생자가 된 이들은 또다시 희생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역사의 특권을 누린 계층은 또다시 특권을 누릴 가능성이 크다.

p.245-247 ... 하지만 이데올로기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보다 더욱 중요한 발전이 기원전 첫 밀레니엄(기원전 1000년~기원전 1년)동안 이루어졌는데, 바로 보편적질서라는 개념이 뿌리를 내린 시점이었다. ... 호모 사피엔스는 사람을 우리와 그들로 나눠서 생각하도록 진화했다. ... 최초로 등장한 보편적 질서는 경제적인 것, 즉 화폐 질서였다. 두 번째는 정치적인 것, 즉 제국의 질서, 세 번째는 종교적인 것, 즉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같은 보편적 종교의 질서이다.

p.342-343 그러면 왜 역사를 연구하는가? 물리학이나 경제학과 달리, 역사는 정확한 예측을 위한 수단이 아니다. 역사를 연구하는 것은 미래를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다. 우리의 현재 상황이 자연스러운 것도 필연적인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그 결과 우리 앞에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가령 유럽인이 어떻게 아프리카인을 지배하게 되었을까를 연구하면, 인종의 계층은 자연스러운 것도 필연적인 것도 아니며 세계는 달리 배열될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우리는 역사가 하는 선택을 설명할 수 없지만 그 선택에 대해 매우 중요한 발견을 할 수는 있다. 역사의 선택은 인류를 위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역사가 펼쳐짐에 따라 인류의 복지가 필연적으로 개선된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 인류에게 이로운 문화가 반드시 성공하고 퍼진다든가 덜 이로운 문화는 사라진다든가 하는 증거도 없다. 기독교가 마니교보다 더 나은 선택이었다든가 아랍 제국이 페르시아의 사산 왕조보다 더 도움이 되었다는 증거도 마찬가지로 없다.

p.356 과학혁명은 지식혁명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무지의 혁명이었다. 과학혁명을 출범시킨 위대한 발견은 인류는 가장 중요한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모른다는 발견이었다.

p.389 ... 과학과 제국과 자본 사이의 되먹임 고리는 논쟁의 여지는 있을지언정 아마 지난 5백 년간 역사의 가장 중요한 엔진이었을 것이다.

p.401 무엇이 현대 과학과 유럽 제국주의 사이의 연대를 구축했을까? ... 핵심요인은 식물을 찾는 식물학자와 식민지를 찾는 해군장교가 비슷한 사고방식을 가졌다는 데 있다. 둘 다 무지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했다. 이들은 “저 밖에 무엇이 있는지 나는 모른다.”고 말했다. ...

p.431 근대 경제사를 알기 위해서 정말로 이해할 필요가 있는 단어는 하나밖에 없다. ‘성장growth’이란 단어다.

p.516 그러므로 현대사회의 속성을 규정하려는 모든 시도는 카멜레온의 색을 규정하려는 것과 비슷하다.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유일한 속성은 끊임없는 변화다.

p.561 이 책의 시작에서 나는 역사를 물리학, 화학, 생물학으로 이어진 연속체의 다음 단계라고 말했다.

p.585-586

“우리는 무엇이 되고 싶은가?”

우리가 시도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은 이들이(길가메시 프로젝트) 가고 있는 방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우리는 머지않아 스스로의 욕망 자체도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마도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진정한 질문은 “우리는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가?”가 아니라 “우리는 무엇을 원하고 싶은가?”일 것이다. 이 질문이 섬뜩하게 느껴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이 문제를 깊이 고민해보지 않은 사람일 것이다.


저녁을 먹고 한강변에 자리를 깔았다.

곡차에 과일, 모카포트로 커피도 끓이고, 차를 달였다.

댁이 가까운 상찬샘네에서 바리바리 짊어지고 왔다.

상찬샘의 강점 가운데 하나는 그 귀찮은 과정을 굳이 하는 것!

김아리 공연규 윤희중 이철욱 신금룡 이상찬 백수현 박도영 마은식 지복현과 벗, 옥영경이

나중에 오기도 하고 먼저 가기도 하면서 함께했다.

다음 달 모임은 6월 빈들모임인 시 잔치 ‘詩원하게 젖다’로 건너뛴다.

달마다 한 차례라고 하지만 그렇게 간간이 모이고 있다.

누구든 동행하시라.

다음 책은 얇은 아주 가벼운 읽을거리로

책을 즐겨 읽지 않는 이도 편히 앉을 수 있도록 하자 싶은.


아, 섬모임에서 남은 회비를 물꼬 후원비로 내놓다,

주머니 돈이 쌈짓돈이지만.

우리 샘들 늘 그리 손 보태고 돈 보태고, 그렇게 물꼬를 꾸려나간다.

물꼬 복!(요새 우리는 복이라 느끼는 순간마다 누구 복인지를 따지는 농들을 하며 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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