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5.30.달날. 맑음

조회 수 782 추천 수 0 2016.06.16 15:16:41


며칠 전부터 검은등뻐꾸기 소리 멀어지고 쏙독새가 가까이 운다.


날도 더워지고 처지면서 아이들도 어른들도 마음 덩달아 힘든갑다.

일은 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하며 가는 것.

공부가 잘 되기도 하지만 또 그렇지 않기도 하지.

쌓인 일로도 무겁다면, 밀린 공부로도 무겁다면,

그 누가 자신의 일을 대신하겠는가,

앞에 놓인 것부터 하다보면 끝이 있을 테지.

하다하다 못 다하면 또 할 수 없는.

자, 같이 힘내서 또 걸어봅시다려.


어둑해서야 달골에서 내려오다.

측백나무 얼마 쯤 물을 흠뻑 주었고,

그렇게 하다보면 150그루를 다 주는 날 올 테고.

돌을 몇 바구니 라비린트 공간에 가져다 들머리에 labyrinth 라 썼다.

그걸 ‘아침뜨樂’ 물고기 형상의 꼬리에서 저 꼭대기까지 옮기느라

소사아저씨랑 둘이서 땀에 흠뻑 젖었네.

한 두 개씩 안고 오르다, 손수레에 실어 끌고 밀기도.

그래도 못 다한.

쉬엄쉬엄 생각난 듯 또 더해갈.


오후엔 잠시 운동장 가 소나무 곁에 만드는 소도의 한 구성인 돌탑을

두어 줄 올리다. 이런 걸 경로당 화투패 돌리듯 한다던가.

목공실에서 달골 계곡에 놓을 안내판도 하나.

계곡 길 끝은 막다른길,

그런데 대해골짝에 야영장이며 펜션이며 몇 개씩 들어서니

길을 잘못 찾아 이 막다른 길로 들어와 차들이 엉키고,

외길인 데다 막다르니 서로 아주 곤란해지기 여러 번.

두어 달 전부터 부쩍 그런 일 잦으니

그곳을 적어도 하루 한 번은 꼭 오르내려야 하는 물꼬로서는 곤란한.

사는 사람이나 농사일로 드나드는 이들이야 당연히 그 길을 쓴다지만

낯선 사람들이 엉뚱하게 들어서지 않도록 안내를 하기로.

금룡샘이 이번에 시 잔치로 현수막들을 만드는 결에 '길없음'도 한 장 만들어주신다 하니

그걸 붙일 판을 만든 것.

그 일로도 은근 마음 무겁더니 또 그리 돌 하나 내려주신.

또 ‘아침뜨樂’ 안내막도 더하여 만들어주신다는.

해서 며칠 전부터 시안이 오고가고.

멀리서 그리 마음 쓰고 손 보태니 다른 일들을 좀 볼 수 있는.

“고맙습니다!”


면사무소도 다녀왔네, 냉장고를 실어가 달라고.

쓰던 것이 크기도 하니 예서 어찌 처리가 안 되는.

부엌 곳간에 있던 문 네 짝자리 영업용,

그리고 달골에서 내려와 그 자리에 넣었으나 결국 못 쓰게 돼버린 500리터짜리 하나.

수거 딱지 받아오고,

이제 예취기를 돌릴 시절이라 휘발유랑 섞어 쓸 오일도 사오고.


달골 올랐다 어두워서야 내려오지만 마을은 아직 땅거미 남아

어스름을 기대고 어제 심은 고구마 밭에 물주고 들어오다.

오래 같이 살았던 외조부모 생각도 하였네.

늙은 부부가 하는 농사일, 어둑해서야 노부부는 들에서 돌아왔는데,

그리 철없는 나이도 아니었건만 그 잘난 공부한다고

들에서 돌아온 할머니가 해주는 밥상을 받았더랬다.

회한이...

이런 순간 아들도 생각노니.

이 골짝에서 9학년까지 제도학교를 다니지도 않고

물꼬 안살림이며 들일이며 오래 많이 움직인 그였다.

그 어린 아이를 기대고 나는 내 삶에만 집중해왔던.

그나마 지금에 이르러

그렇게 일을 했던 삶이 공부를 해나가는 근간이 되어준다고는 하나

그때는 얼마나 힘에 겨웠을꼬.

마음 아렸다...

한편 내 복일지라.(요새 이곳에선 복이다 싶을 때 누구 복인지를 따지는 농지거리를 하고 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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