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2일 불날 물먹은 하늘

조회 수 1236 추천 수 0 2005.04.17 01:59:00

< 4월 12일 불날 물먹은 하늘 >

곶감집이나 조릿대집 아궁이 앞에서 불쏘시개 종이를 찢다
더러 예전 살던 이들의 재미난 흔적들을 만납니다.
저녁에 아이들이 수학공책 하나를 챙겨 내려왔습디다.
그런데 이 녀석들 자기 생각주머니에
그 공책에 적힌 수학필기를 옮겨 적고 놉니다
(수업시간 해야하는 필기라면 얼마나 지겨웠을지요).
뜻을 아냐구요,
행렬 항등원 그런 말들이 나오는 '수학 2'를 말입니까?
셈놀이가 한창 무르익어가자
수학공책도 이제 예사로운 게 아니었던 겁니다.
그렇게 안면이 있으면 그걸 공부할 마음도 나는 날 있겠지요.

우리의 채규 선수가 오늘 검도 시간에 젤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그게 뭘 어쨌냐구요?
채규가 노니작노니작 했더랬거든요.
심드렁했단 말이지요, 검도가, 거의 유일하게.
그런데 오늘은 어찌나 목소리가 컸던지요.
채규가 갑자기 우렁차게, 예, 정말 우렁차게 기합을 넣고
기세좋게 검도샘 앞으로 달려나가는 겁니다.
저 역시 달려가서 죽도를 내리치고 채규 뒤에 줄을 섰는데,
그가 물어왔습니다..
"선생님은 누구 풀었어요?"
뭔 소리인가 했지요.
곧 알아차리고 되물었습니다.
"너는 누구?"
씨익, 그리고 아주 환해지는 얼굴로 대답합니다.
"정근이형아요!"
호구를 갖춰입은 검도샘이 아이들에게 그랬거든요.
"내리치면서 스트레스 다 풀어!"

포도밭 풀을 한바탕 맨 아이들은
작은 움집도 만들고(지난 학기 중심생각 '흙'의 연장)
시내에도 내려가 놀았답니다.
"비취도 찾았어요!"
한데모임에서 오늘 하루 자신들을 행복하게 한 것들을 꼽아보았다네요.
"크리스탈을 찾아서 행복했어요."
"저는 비취요!"
"포도밭 한고랑을 다 매서..."
살구꽃이 피어서도, 셈놀이에서 계산기를 써서도, 검도에서 화풀이를 해서도,
기락샘이 미국에서 곧 돌아오신단 소식을 들어서, 새참으로 고구마를 먹어서...
아이들의 소박함이 징소리처럼 마음을 울립니다.

"한데모임에서 결정하고 하자."
하도 대나무들을 베 내리자,
또 그것이 작업한 뒤 운동장에 널리자,
아이들끼리 그리 의논을 했답니다.
지들도 과하다 싶은 건 안다 그 말이겠지요.
예, 같이 살다보면, 일이 제 일이 되고 보면,
삶터와 교육의 장이 같으면 규칙 따위들도 어른이 줄 것 없습니다요.
운동장 청소도 지들 차지가 되니,
마을하고 지내는 일도 남의 일이 아니고 보니...

트럭 등록하러 군청 갔다가 작은 소란이 있었지요.
그런데 그 소란을 떨고 나니
본인이 없음 안되고, 아님 위임장이 있어야 다음 일이 되는 건데,
위임장 없이도 일을 맡아주신답디다.
단체로 등록하는 서류에 필요한 것들이 더 있는데
그것도 이러저러 처리가 됩니다.
게다 학교 직인도 있어야는데 없이도 일이 넘어가요.
좋은 말들이 오갈 때도 안되는 일이면
목소리 높여서도 안되어야지요.
"착한 사람 나쁘게 만드네..."
얘기를 전해들은 우리 애들이 그럽디다.
역시 이 얘기를 들은 제 선배가 그러데요.
"야, 니가 이제 세상 사는 법을 아는구나."
서글퍼집니다요.

이웃 재홍이랑 채규가 크게 싸웠습니다.
이웃을 만나 사는 일, 좋기만 하겠는지요.
게다 좋은 모습을 만난다면 더 좋겠지만
사는 일이 어찌 그렇기만 하던가요.
오늘은 그 일로 아이들 한데모임이 길었더이다.

공동체 어른저녁모임에선 '화'가 화두였네요.
화를 참는 것은 해결이 아니지요.
여전히 화는 남아있으니까.
그건 자신을 억압하는 거지,
왜곡이란 말입니다.
화를 안내는 것, 화가 안나는 것에 대해
어른들 역시도 오늘은 얘기가 짧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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