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둔산에 들어 하룻밤을 묵고 왔네.

지난 1월 물꼬에서 있었던 ‘발해 1300호 18주기 추모제’,

오뉴월쯤 산 한 번 같이 가자던 모의가 있었더랬다.

두루 기별 드렸으나 다들 여의치 않아

발해 역사모임 회원이면서 동시에 물꼬의 논두렁인 주훈샘 상찬샘만 동행.

강진의 주작산으로 잠시 여정을 바꿔보려고도 하다 말 나왔던 대둔산으로!


앞선 기차를 놓치고 나니 배차가 1시간도 넘어 되어 사람들을 좀 기다리게 했네.

그런데, 만나기로 한 대전역에서 깜짝 놀라다,

등산복을 입은 두 남자가 때깔나게 화보처럼 앉아있어,

산을 오래 다닌 냄새를 풀풀 풍기며.

배낭까지 매니 어찌나 본새(‘뽄새’로 읽어야 제맛 나는)들이 나던지.

지난 30여 년 같이 올랐던 산도 여럿이다.


대둔산 오르는 길로야 논산 쪽으로 가는 걸음이 흔하나

우리는 산 아래서 점심을 먹고 천천히 태고사 쪽으로 오르다.

전북 완주, 충남 논산과 금산에 걸쳐있는 대둔산은

모악산의 두리두리하고 너른 어미 품에 견주어 엄격하다 했다.

태고사로 오른 길은 성큼성큼한 아버지 걸음처럼 몇 걸음 되지 않는 대신

바위투성이로 거칠고 가팔랐다.

호남의 금강산이라 불릴 만치 천여 개의 암봉이 6km에 걸쳐 있다지.

대둔(大芚)이란 인적 드문 벽산 두메의 험준하고 큰 산봉우리라는 뜻이란다.


정상 낙조대에 이르러 지는 해 앞에 오래 머물렀네.

어린 왕자처럼 의자를 놓고 앉음직한 해넘이였다.

저녁이 내리기 전 낙조대 아래 태고산장 데크에 일찌감치 텐트를 쳤다.

산장 뒤란의 소박한 마애불이 퍽이나 인상 깊었던.

작고 여린 것들을 지키고픈 소망에 닿아있기 때문이지 않았을지.


상찬샘이 가져온 꾸덕꾸덕 잘 마른 가자미 구이가 일품이었던 저녁밥상이었고,

달여낸 중국에서 막 온 햇차 영덕홍차가 깔꿈도 하였다.

워낙 알피니스트들이어 장비며들이 여간 아닌 선배들의 이야기는

삶의 지평이 다 넓혀지는 느낌이더라.

“오늘 쓰고 내일은 이거 옥선생이 챙겨가라.”

득템이라 하지,

에어매트도 얻고 그 위에 놓을 또 다른 매트도 얻고 간이 의자도 얻었네.

“이것도 물꼬 가져가고.”

남은 것들로 내려오는 가방 무게가 늘었으면 늘었지 전혀 줄지 않은.

어둠을 가르고 나눈 별싸라기 같은 이야기들,

이래서 산에서 같이 밤을 보내는구나 싶었던,

참으로 아스라하고 따스도 하였던!


이튿날은 발해 1300호 기념사업회 회장님이 대표로 호국영령을 위한 묵념도 했던 현충일.

살짝 빗방울 얼마쯤 다녀갔고,

아침 수행을 하기도 하고, 혹여나 하고 해맞이를 다녀오기도 했다.

태고사 유명한 일주문 석문으로 들어 공양을 하고

대웅전 관음전 나한전 종루까지 휘휘 한 바퀴 돈 뒤

느릿느릿 산을 빠져나왔네.

사는 일이 뭐라고… 별 게 있겠는지...

좋은 사람들과 같이 보내는 시간,

그만한 일이 또 어딨을까.


함께 걸어 고마웠다.

음... 어느새 우리 인연이 30여년이다!

그 세월 안에 물꼬가 있고,

물꼬 곳곳에 당신들 손길이 또한 있다.

물꼬가 늘 사람들 그늘로 살아가듯 그 그늘을 드리워주는 이들 가운데

당신들 그리 있다.


아, 이야깃거리를 만들어주느라 우리를 태워갔던 차가

나오려는 우리 뜻과 달리 그만 주저앉아버렸다.

긴급출동 요청.

그런 일마저 유쾌했던 이틀이었다.

역시 여행은, 음식도 그렇지만, 어디냐보다 누구와인.

같이 보낸 우리 생의 어느 한 때의 산오름에 거듭 감사.


그리고 나는 포털사이트에 ‘민주지산지기’로 선언하다.(아직 글 한 줄 시작하진 않았지만)

이제 서서히 나서겠다.

아이들의 학교이고 어른의 학교인 물꼬,

어른의 학교에서 산에 들어가기가 프로그램화 될 것이다,

진즉에 산오름이야 잦았다만.

지난 늦봄 곰배령 다녀오며 본격화 해야지 했던.

이 산자락에 든 뒤로 얼마나 오래 꿈꾸던 일인가.


대해리로 들어오니 품앗이 소정샘이 곧 다녀가겠노란 연락과

새끼일꾼 두엇이 다녀갈 방학을 목 빼고 기다린다는 소식 있었다.

고마운 연들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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