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6.10.쇠날. 맑음

조회 수 689 추천 수 0 2016.07.06 12:07:31


날이 쨍쨍,

그래도 가끔 희멀건 죽 같이 되는 순간이 있기도.

비 소식은 있는 듯도 하다 사라지고 사라지고.

사흘에 한 번씩 달골 올라 명상정원 ‘아침뜨樂’ 측백 물주기,

저녁마다 밭에 물주기,

아침 혹은 저녁마다 달골 마당 물주기, 날마다 하는 수행처럼.


달골 마당은 몇 가지 꽃들이 피고지는 데,

이즈음의 꽃들이 날이 갈수록 자잘해진다.

가물 땐 그렇게 크기를 줄여

살길(오랫동안 이 낱말을 두 단어로 알았다, 띄어 써야 할)을 찾는 그들이다.

긴축재정 같은. 사람살이나 저들살이나 매일반이라.


‘하루’는 ‘일이 될라고’, 혹은 ‘일이 안 될라고’로 정리되는.

오늘을 말하자면 ‘일이 될라고’.

화가 한 분, 일찍이 십년도 더 전 물꼬가 상설학교 시절

인근 도시에서 여기까지 넘어와 아이들과 작업을 해주었던,

오랜 시간 흐른 뒤 두어 해 전 뵈었네.

기회 있을 때면 재능기부하신다 했는데,

마침 달골 명상정원 ‘아침뜨樂’을 그림으로 좀 담아야겠기에 도움을 청하다.

스케치를 해놓고 수채화를 그릴 참인데,

대여섯 시간은 해야 할 작업에,

시간도 시간이지만 내 형편없는 붓질을 믿을 수 없어.

선뜻 다녀가마 했고, 오셨다.

일이 될라고, 명상정원 여는 잔치가 되는 셈인 이번 6월의 시 잔치에

안내도로 잘 쓸 수 있겠는.


오늘은 일이 될라고 오 작가님 그렇게 다녀가고,

일이 될라고 이즈음 대해리에 도로 확장 공사를 하고,

일이 될라고 3년 전 도로 공사에 왔던 소장님을 만나고,

일이 될라고 그 때 일했던 굴삭기 기사가 또 들어오고,

일이 될라고 그제 만나고, 어제 일을 부탁하고, 오늘 현장을 다녀가고,

일이 될라고 다음 주 주말에 겨우 난다는 시간이 낼모레 해날 가능하게 되고,

일이 될라고 자재를 실어오기로 하고(아니면 트럭을 또 섭외해야는데)...

‘아침뜨樂’ 들머리 땅이 뒤집어 널부러진 채 시 잔치를 하겠구나,

그 사이 일을 하기엔 너무 빠듯하네,

무엇보다 어디서 또 굴삭기를 들어오라고 하나, 하루치 일로는 움직이지도 않는 그네인데,

뒤척이던 일이 그렇게 풀렸다.


일이 될라고 세탁기가 오늘 들어왔고,

닷새에서 열흘은 걸린다 했던 일인데,

무거운 이불은 학교에 내려가 빨아 와야 할, 그랬는데,

드디어 와서 돌아가기 시작.

빨래를 어렵게 어렵게 하는 걸 보다 못한 기락샘이 얼마 전 주문해준 것.

그런데 일이 될라고,

빼낸 세탁기를 학교에 내릴라는데,

물류 차에 싣는 순간 아무리 짧아도 몇 만 원의 운반비를 내야한다나 어쩐대나,

가는 길이라 해도 그렇다는,

불과 1km,

- 그 돈 주시면 제가 짊어지고 가겠어요.

그렇게 한바탕 웃는 결로 봉사할 게요로 전환된 기사의 말.


“제가 인생에서 간절하게 원하는 것은 안돼! 안되더라구요.

무심코 하는 일이 되더라고, 무심코!”

얼마 전 한 벗이 전한 말.

그렇게 ‘무심코’ 하루하루를 더하고,

그러면서 되고 있다, 일들은.

그래서 되는? 무심코?

그건 아마도 힘을 뺀다는 말일 게다.

힘이 빠져야 일이 된다는.

잘 해야 한다는 강박이 우리를 옥죄고 일은 외려 그 경직성으로 엉키는.

너무 잘 하려 할 때 뭔가 그르치지 않던가 말이다.

자, 그냥 헐렁헐렁, 다만 정성스럽게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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