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비 살짜기 다녀갔으나 겉만, 아주 겉말, 나 비라네 하고 속삭이기만.

못의 수위도 여전했다.

잠시 그래도 제법 내린 순간 있던 걸 했는데도 역시 겉만 또 적셨나 보다.

말개진 아침, 달골 명상정원 ‘아침뜨樂’이 곱겠고나.


아침수행을 마치고 천천히 샘들을 깨웠다.

엊저녁 늦도록 일했던 터라 최대한 늦게 잡은 시간이라지만

잠이 모자랄 모두이다만 어쩌랴.

가벼운 아침거리로 요기를 하고 창고동과 햇발동 청소.

그래도 창틀이며 베란다며 욕실이며 손이 많이 가는 곳들을 진즉에 해두었더니

창고동 중심으로 조금만 움직이면 되었던.

아침뜨樂으로 올라가 각 구역 팻말도 세우고.

같은 시간 아래 학교에서는 점주샘이 들어와 장독대부터 윤을 내고,

음식 재료들을 다듬기 시작했다.

곧 달골에서 내려와 합류한 샘들은 시 잔치 행사 준비를 하고.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하는’, 그리고 ‘일’이 주는 즐거움!


다들 국수를 삶아 먹고,

서울에서 한 차로 내려온 상찬샘 금룡샘 정호샘 세순샘 줄리아는

달골 올라 엊저녁부터 먼저 와있던 샘들이 하던 아고라 돌의자 바로 세우기.

내가 사진 찍으러 왔는데, 왜 이 더운 날 이런 걸 하고 있나 싶었으나

함께하는 그게 이유가 되더라는 정호샘이었네.

아리샘이 나가서 이생진 선생님과 현승엽샘을 역에서 맞아오고,

달골에서는 전승찬샘과 희중샘과 이종철샘이 음향을 준비할 적

머리 위에는 정호샘의 드론이 날며 상황을 찍고 있었다.

부엌에서는 저녁밥상 준비.

이제 아이들이 좀 자라 여유가 생긴,

남편 미루샘이 휴직을 하고 다섯 식구가 지리산 아래 들어간 뒤 확실히 여유로워졌다,

유설샘도 부엌에 붙어 움직이고,

벌써 세 해에 이른 시 잔치 밥바라지 점주샘 있어

들여다볼 것 없이 밥상차림이 순조롭고 있었다.

지난 달 다녀가고 오기 쉽잖았던 서현샘 불려 내려와 교문 앞 안내석을 지키고.


낮 3시 차를 내다.

김천에서 김미희샘 박상숙샘 난정샘 오미자차와 연잎차 청차를 준비해오셨네.

차를 좋아하는 금룡샘이 좇아다니며 퇴수기도 찾아오고 흥도 돋우고 바라지를 하다.

다식을 먹으며 먼저 온 이들 인사도 나누다.

박주훈샘과 어울림산악회 사람들은 오르기로 했던 산을 민주지산으로 바꾸어

예 이르렀네.


4시 30분 달골을 오르기 시작하다.

시 잔치를 아침뜨樂에서 5시에 하기로 했던 바.

마을 서쪽에 있는 달골은 그 시간은 해가 뉘엿뉘엿하는 시간.

아, 아침뜨樂을 처음 내보이는 자리이기도! 설레임...

나무 막들 둘러친 아고라에서 시인 이생진 선생님과 가객 현승엽샘이 무대에 올랐다.

(음향에 차질이 생겨 승찬샘이 한참을 고생했고,

부랴부랴 영동에서 종철샘이 불려와 다른 연장선을 챙겨왔다.

기다리는 동안 불편한 돌의자였으나 물꼬에 모이면 불편을 정감으로 바꾸는 사람들이라.

다행히 볕도 기울기 시작하는 달골.

그 순간이 또한 詩였나니!)

선생님의 시집 <반 고흐, ‘너도 미쳐라’> 가운데

“돈 매클린의 ‘빈센트’와 ‘아메리칸 파이’”가 시와 노래로 퍼져나갔다.

고흐는 ‘책을 읽으며 그림을 그렸고, 편지를 쓰며 그림을 그렸고, 술을 마시며 그림을 그렸고, 무엇보다도 걸어 다니며 그림을 그린 고독한 화가’였고,

이생진 선생님 역시 걷고 쓴 시인이셨다.

그리고 시대를 비껴가지 않았던, 시인은 가장 예민한 결을 가진 이들,

선생님 역시 그러하셨고,

그리하여 우리를 세월호에 다시 타게도 하셨네.


자살

-세월호 참사

 

죽었다

안개 낀 야산 소나무에 매달아 죽었다

사람들은 그 죽음에 말을 아낀다

(생략)


(중략)


나는 세월호가 침몰하던 다음 다음 날

*강 교감이 자살했다는 비보를 듣고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수학여행 인솔 책임자라는 숙명적인 명의名義(?)

명의가 뭔데 하며 하늘에 침을 뱉었다

죽음 앞에서는 할 말이 없다

1년 2년 세월이 흘러도 할 말이 없어

무겁게 한숨을 쉰다

200명의 생사를 알 수 없는 마당에

살아남아 숨 쉬는 지금의 자기는 자기가 아니라며

다시 세월호로 들어가 그들과 함께하고 싶어하는 몸부림

하지만 물속으로 들어간다고 가라앉은 배가 다시 뜨지는 않는다


(중략)


아이들보고 침착하게 기다리라며 구명조끼를 챙겨주던 그때만 해도

살아서 나갈 빛이 보였는데

그날 저혈당 쇼크만 없었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아이들 다 물속에 버리고 혼자 살아남은 부끄러움

누가 봐도

‘저게 교감인가 저만 살아서 어슬렁거리고’ 하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오는 것 같아 견딜 수 없었다

무거운 책임감

그 책임감이 그를 야산으로 끌고 간 것이다


(중략)


군자 같은 스승이었다는데

윤리와 도덕을 가르쳤다는데

혼자만 살아서 돌아와

체육관 가득 찬 눈물과 울분의 소리를 안고

어떻게 참을 수 있겠는가

나라고 해도 아니 소크라테스라도

그 순간을 견딜 수 있었겠나

남편이 살아 나왔다는 소리에 반가운 발걸음으로 달려온 아내를

그 길로 돌려보내고

안개 속으로 사라진 그림자

그래도 살면 살 수 있는 건데

살아서 다하지 못한 일 더 하면 되는 건데

살아 있으면 또다시 죽을 기회는 있어도

한번 죽으면 살아날 기회는 영영 오지 않는 거

살아서 남은 힘을 살아 있는 제자들에게 쏟으면 되는 것을

죽음으로 끌려간 강 교감

미안하오

끝까지 살아 있으라고 붙잡지 못해 미안하오


(* 강 교감:세월호 침몰 당시 단원고등학교 교감 강민규)


그예 우리는 울고 말았다.

또한 시인은 위로하는 자라.

이생진 선생님은 시가 무엇이어야 하는가, 시를 무엇으로 쓰는가를 늘 먼저 보여주시며

눈길 위를 곧게 먼저 걸어가시는 당신이다.

우리는 저런 미수를 흉내나 낼 수 있을까...

[미수(米壽): (‘米’의 파자(破字)가 ‘八十八’인 데서) 여든여덟 살]


<그리운 바다 성산포>의 몇 구절과 노래로 선생님의 무대가 막이 내리고,

이어 게스트로 시인 최정란샘의 시낭송,

객석에서 조청자님의 짧은 글 낭송, 사회자도 낭송 한 편.

마지막으로 아침뜨樂도 소개하러 나갔네.

저 광활한 우주로 솟구쳐 오르다, 물꼬의 학교이념의 마지막 구절처럼

이 뜨락에서 그러고자 한다는!


다시 산길을 내려와 밥상에 앉다.

이전에는 저녁 밥상을 물리고 하던 시잔치였는데,

올해는 시 잔치를 하고 내려와 밥을 먹는다.

젊은 사람들은 가마솥방에서 학교가 떠나가라 웃음소리 높았고,

이생진 선생님을 모시고 몇몇은 달골에 모여 환담을 나누었네.

야삼경엔 학교 마당에 불을 피우고 둘러앉아 여름밤을 노래하였으니,

빗방울 떨어지기 시작하는데도 아랑곳 않고.

위로는 점점 굵어지는 비, 앞에는 우리의 뜨거운 마음을 다 실어놓은 모닥불,

시계는 세 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참, 행사 갈무리 모임도 있었네, 흡족하게들.

나무에 둘러싸여 한 시 잔치에 어떤 모자람인들 있었겠는지.

눈부신 저녁답이었으리.

사회를 물꼬 품앗이샘이 아니라 논두렁 저온샘이 봄으로서

물꼬 내부 행사이기보다 보다 일반적인 시낭송 행사가 되지 않았던가 싶다고도.

자분자분 시 쓰듯 본 사회도 좋았고,

전체를 조율한 감독 아리샘도 정말 애 많이 썼네.


그 불가에서 여직 어른들 틈에서 잠 못 들던 5학년 무량이,

그 아이 일곱 살에 물꼬를 처음 왔다,

그에게 상찬샘이 물었다.

“물꼬가 뭐가 좋아?”

“옥샘요!”

“옥샘이 뭐가 좋아? 다섯 가지만 대봐.”

뭐라고 했더라...

그렇게 아이 입에 올려지는 영광이라니,

잘 살아야지, 곧게 걸어야지, 지극하게 나아가야지!


현수막을 보고 찾아온 귀농인도 있었고,

가까이 이웃마을에서 송남수샘이며 정현샘 가족들,

광평농장 현옥샘이며 식구들,

대전에서 주훈샘을 비롯 일정을 바꾸면서까지 온 어울림 산악회 사람들,

무량이네 식구들도 오고,

멀리 브라질에서 줄리아며,

지리산 아래서 유설샘과 미루샘 식구들, 전주에서 희중샘,

진영과 진주에서 점주샘과 저온샘,

서울경기에서 창환샘이며 상찬샘이며 금룡샘 정호샘 세순샘,

물꼬의 듬직한 품앗이샘들 아리샘 희중샘 서현샘 연규샘 여진샘,

음향을 전담했던 승찬샘 종철샘,

김천의 다례샘들,

빠지면 아쉽다 바삐 달려온 휘령샘,

한밤 기락샘과 류옥하다도 들어오고,

이래저래 쉰에 가까운 사람들이었네.

한 해 한번 그리 얼굴들 본다.

(늘 함께하며 사진과 영상을 담던 병선샘과 성순샘은 라오스 여행 중.

 그리고 안타깝게도 가까이 사는 장순샘이 쏟아진 밭일로 함께하지 못했다.

 인교샘과 가족들이 오기 직전 사정이 생겨 여름 계자에서 보기로 했고,

 소정샘 호성샘네는 다음 주말에야 여름휴가를 물꼬에서 쓰기로 했네.)

“향후 20년은 이렇게 모이기로!”

“20년은 몰라도 2년은...”

이생진 선생님 그리 받으셨고,

“그러면 승엽이 형님은 앞으로 20년 하시고...”

그렇게 또 다음들을 기약하다.

생에 무슨 대단한 게 있겠는가.

이런 게 사람 사는 일 아닐까 싶은...


아름다운 시간은 그 시간을 위한 뒷배들이 있어 또한 가능하였노니,

조정환샘이 어느 저녁 어둡도록 운동장 풀을 깎으셨고,

장순샘이 지난 늦가을부터 아침뜨樂 굴삭기 작업에 내내 붙었고,

금룡샘이 안내장이며 안내판이며 현수막이며 출력을 했고,

태석샘이 아침뜨락 조감도를 그려주고,

원석샘과 품앗이샘들이 여러 날 동안 망가진 학교 현판을 세웠으며,

기락샘이 이불빨래에 쓰라고 달골 세탁기도 바꿔주고...

사진을 위해 정호샘이 드론을 날렸고,

성철샘이 서각을 돕고, 현옥샘이 쑥떡을 해오고,

구름마을사람들이 찐빵을 쪄오고,

유설샘네가 밑반찬이며 과일들을 실어 오고,

이생진 선생님이 화장지 꾸러미를 예년처럼 들여주시고,

미희샘과 상숙샘관 난정샘이 차와 다식을 내고,

주훈샘이며 어울림산악회가 곡주를, 상찬샘이 과일이며를, 무량이네도 수박을,

어제부터 내리 희중샘 연규샘 여진샘 쉴 틈 없이 움직였고,

밥바라지 점주샘 유설샘, 설거지에 줄리아와 세순샘,

음향에 승찬샘 종철샘,

그리고 감독과 사회, 아리샘과 저온샘.

우리 모두 생의 빛나는 하루를 그렇게 같이 만들었나니.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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