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까지 비 왔다.
하지만 땅 겉만 살짝 아주 살짝 적셨다.
‘하지’다. 정점에서 다시 짧아지는 해.
늘 이맘때면 스웨덴의 하지제를 그리워한다.
내년에 웁살라에 있을 거라던 계획이 달라지면서
보리라던 하지제도 못 봐 아쉬울세.
바깥 수업을 가기 전 태석샘 저녁을 대접했다.
시 잔치에 놓였던 달골 명상정원 ‘아침뜨樂’ 조감도를
수채화로 그려주셨더랬네.
스마트폰에 코 박고 있다가 혼나는 아이들 이야기가 나왔다.
그래서 무슨 책을 읽고, 그래서 서로 무슨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는가,
그런 한탄들.
그런데 말이다, 아이들이 그렇게 하고 있는 절박한 무엇이 또한 있지 않겠는가!
우리 어른들의 더한 무엇(성찰?)이 더 필요하단 생각.
‘어른들은 뭔가 제 발이 저릴 땐 별것도 아닌 걸 부풀려가며 스스로 흥분하고, 스스로 화내고, 스스로 결론을 내려가며 장황하게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한 성장소설에서 열세 살 아이가 담임선생님의 정신교육에 그랬지.
‘어른들은 이상하게 남의 얘기를 잘도 지어내고 관심도 많았다. 다른 사람의 불행이 곧 자기의 행복도 아닌데, 남의 불행한 이야기는 아주 좋은 얘깃거리가 되는 것이다. 그러다가도 막상 남의 불행을 보면 같이 눈물짓는 게 또 어른들이었다. 그러나 남의 행복을 보고 같이 웃음 짓는 일은 별로 보지 못했다.’
그런 구절도 있었다.
낯이 뜨거워진다, 우리 그렇다, 나 그렇다.
아이들 앞에 설 때 훗날 저 아이가 이 순간을 기억하리라,
그러면 등을 곧추세우게 된다.
아이들 문화를 한탄하기 전 아이들 향해 애정으로 귀 기울여주기,
우리 꼴이나 좀 보기!
밤 2시 달 휘영청,
아, 하지의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