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가 반갑지는 않다!

보이지 않으면 잠깐 잊을 때도 있지만 늘 그를 의식한다.

내 삶이 바쁜 건 같이 사는 이들이 많아 또한 그렇다.

그들의 밥상을 내가 다 챙겨야하는 거야 아니지만

서로 충돌하지 않게 자리를 잡아주자면 부산할 때가 있다.

때로 나보다 약한 그들이니 그들을 향해 어떤 분노를 표출할 때도 있다.

파리 한 마리 집안으로 들어와 사람을 귀찮게 하거나

혹 알이라도 까서 온 집안에 그것들이 휘저을까 지레 걱정 많아서

파리채로 움켜잡을 때

그냥 그를 잡는다를 넘어 무언가로 향한 약간의 분노적 감정이 섞이기도 한다.

오늘 반갑지 않은 ‘그’를 만났다.

바쁘게 뭔가 생각나 급히 나가다

그만 볕을 바래러 혹은 먹이를 구하러 아니면 산보를 나왔을

그랑 그만 마주쳐버렸다.

작년 즈음부터, 아니면 더 오래전일지도, 우리는 이곳에 같이 살아왔다.

어쩌면 그가 이사를 가고 닮은 다른 존재가 이곳에 머물게 되었는지도 또한 모를 일.

서로 보고 싶지 않은 존재들이 그리 만나기라도 할까,

늘 달골 마당을 걸을 땐 조심스레 발을 움직이는데,

어째 오늘은 일이 그리 되었다.

이런! 서로 어쩔 줄 몰라 하다가

그가 먼저(아마도 그가 더 약하니까) 벽 쪽을 타고 꽃밭을 줄줄줄 가다가

마침 하수관을 발견하고 옳다구나 들어가버렸다.

얼른, 아주 얼른 벽돌을 가져다 그 구멍 막아버렸네.

꽉 막았다니깐.

또 다른 벽돌을 가져다 창고동 싱크대도 꼭꼭 눌러두었다.

작년이던가 양천구 어느 아파트에서 싱크대 수챗구멍으로 쑤욱 뱀이 나왔더라지.

혹여 그러기라도 할세라.

내 위험과 불편을 좀 비켜놓고 보니 그제야 상황에 대해 조금 여유가 생겼다.

아, 어쩌나, 저러다 죽겠다.

그런데, 그가 사라지고 나더라도 또 다른 누군가 오지 않을까.

그래도 낯이 익은 놈이 낫지 않을까,

새로운 이는 새로 또 서로 익혀야 하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니.

“야, 나와라, 나와!”

결국 벽돌을 치웠다.

나는 그가 여전히 불편하다.

하지만 같이 산다, 이 집이, 이 마당이, 이 산이 어찌 내 것이기만 하랴.

나랑 사는 뱀!


날마다 아침 수행이 끝나면 명상정원 '아침뜨樂'에 든다.

한 바퀴 둘러보고

아가미못까지 올라가 수중식물들도 들여다보고.

당장 손이 갈 수 있는 일을 손대기도 한다.

오늘은 현수막이 바닥에 끌리고 있더라.

다시 당겨 매주고.

아래 학교에서는 학교아저씨가 모래사장 둘레 풀을 뽑고 있었다.


사람들이 왔다, 소정샘과 호성샘, 그들의 아이 라윤이와 태율이, 그리고 그들의 벗 정재샘.

전통주를 공부하는 정재샘은 맛이 깨끗한 송악주와 아몬드잼을 만들어왔고,

소정샘네는 우도에서 온 막걸리며들을 실어왔다.

홀로 왔던 이가 식구가 둘이 되고 셋이 되고 이제 넷이라...

내가 보탠 게 있는 것도 아닌데 뿌듯하고 ...

품앗이샘들이 홀로 이곳에 손발 보태다

친구며 연인이며 가족들이며 같이 다녀가고,

그러다 이같이 일가를 이루어 인사를 오고...

그리 오니 좋데, 참 좋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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