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의 날들이다.

8일로 2016학년도 봄학기 모든 수업과 모임이 마무리를 하였다.

콩 모종을 옮겨 심고,

고구마밭을 매고(밭이라지만 겨우 짧은 고랑 몇이다),

푸성귀를 돌아보았다.

 

앗!

여기서 자주하는 감탄사 하나를

달골 唱鼓棟(창고동) 해우소 여자 쪽 변기 하나 앞에서 또 했네.

들어갈 일 없으니 오래 몰랐던.

달골 창고동과 햇발동은 지하수를 퍼 올려 쓰는데,

물을 쓰지 않는 시간에도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왜 나는지 알 길 없기 한참.

그러다 또 다른 일로 움직이다 보면 잊히고.

거기였던 거다.

고리가 들려 계속 물이 흐르고 있었던.

공간이 넓으니 어떤 문제의 원인을 찾는 일도 그리 더디다.

 

그릇을 깨거나 끈이 끊어지거나

영화나 문학 작품에서 관계 혹은 사건의 복선으로 등장하는 장면처럼

오늘 물건 하나가 끊어졌는데,

아, 삶에서 만나는 복선들처럼 무슨 일인가 싶은 불안감이 엄습했다.

역으로, 마음의 걸리는 일이 그런 복선에 얹히기도 할 것.

그렇다면 그 관계 혹은 일에 집중하고 살펴 헤어지거나 계속 보거나 해결하거나 던지거나.

길은 언제나 두 갈래. 하거나 안 하거나.

할라면 하고 말라면 마시라.

 

깜짝 놀랐다.

사흘 동안 학교 아저씨가 만든 사과네집.

(개집. 물꼬 오던 날 사과나무 아래서 똥을 싸서 얻게 된 이름).

공구가 있었고,

그 공구를 잘 써왔고,

보고 배웠고,

오래 생각했고,

그리고 만들었다.

기단을 놓고,

뼈대를 올리고,

지붕은 사선으로,

벽체를 마룻바닥재로, 지난 번 장순이집 지을 때를 보시고.

이제 지붕만 올리면 된다.

학교 아저씨, 예전엔 소사아저씨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당신은

사실 학교의 책걸상을 고치는 일에서부터 온갖 가지 일을 해내는 이로서는

여느 소사 아저씨들 같지는 않은 그니이다.

아무래도 힘도 딸리고, 목수로서의 경험이라든지에서 밀리는.

그런데, 오늘, 근사한 개집 하나 지어내셨더라.

보고 익히고 하는 것, 무섭다!

 

주말에 재홍샘이 다녀가다.

20대 초반의 청년이 서른 후반이 되는 시간 동안 물꼬를 통해 우리 만나왔고,

가끔 힘겨운 내를 건널 땐 연락이 오갔고,

문득 그리울 때도 소식 넣었던,

다녀간 것도 그리 오래는 아닌.

사람 사이의 시간이란 참... 편했다.

 

주말에 류옥하다는 시잔치 사진을 물꼬 누리집에 올려주었다.

제도학교 12학년이 되어서도 여전히 틈틈이 물꼬 일을 거들고 있다.

9학년까지 산마을에서 학교를 가지 않았던 아이는

2년 반여 년의 제도학교 생활을 갈무리하며 대입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니까 내가 이 땅의 고3 학부모, 그게 된 거다.

조부의 재력과 아비의 무관심, 엄마의 정보력이라는 대입에서

조부의 재력은 먼 우주의 이야기이고 엄마는 그 잘난(?) 물꼬 일 하느라 무관심에,

겨우 아비의 정보력으로 돕는.

아이가 가려는 대학이 그 학교에서 겨우 혼자여서

진로지도 교사조차 놓친, 그래서 원서조차 낼 수 없을 뻔한,

그 상태를 알고 대처한 것도 아비였다.

다행하게도 그 전에 아이가 이미 정보를 가지고 제 나름대로 준비하고 있음을 나중에 알았지만.

하기야 제 일을 저가 제일 잘 알지 않겠는가.

밤마다 우리의 통화는,

아들 열심히 하고 있으니 걱정 마요,

그래, 각자 잘 사는 게 서로 돕는 거지, 나도 내 일 잘하고 있을게, 걱정 마,

그랬다.

제 일이나 혹은 제 일이라도 걱정 끼치지 않는 게 서로를 가장 잘 돕는 것.

저나 잘 살이다. 그대도 그대나 잘 사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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