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이 지역에서는 이 맘 때 다슬기를 잡으러 들어갔다가

깊은 곳 물살에 휩쓸려 그만 영영 떠나버리는 이들이 생기고는 한다.

물을 굽어보며 다슬기를 잡다보면

현기증과는 다른 아득함이 생기고

그들이 사는 곳으로 점점 깊이 손을 뻗다보면

어느새 몸이 강 한가운데 가 있는 거다.

아, 이러다 나오지 못하기도 하는구나 싶었던.

어린 날 외가에 있는 감나무에 올랐을 때처럼.

나무에 올라 익은 감에 손을 뻗치다

한 발만 혹은 조금만 더 더 하다

어느새 허공이 평지인 양 착각하기까지 하는,

거길 디딜 수 있을 것 같고는 하였다.

그러다 그만 가지가 무게를 못 이겨 툭 부러지기도 하고.

그 아래 바위에 스치며 떨어져

피 엉겨 붙은 얼굴에 놀란 할아버지가 발라주시던 빨간약 아까징끼...

 

청소년계자를 준비하는 주간.

손님부터 들어섰다.

문경에서 차 도구를 연구하는 분이랑

한 대안학교의 교장선생님이 방문하셨다.

월류봉에 나가 물에 들어 다슬기를 잡았네.

걷고 노래하고 환담하고 저녁이 내리도록 놀다가

돌아와서는 차를 달이고 달이고 달이고,

홍차 보이차 아포차를.

다인(茶人)은 찻잔이며 차시며들을 선물로 내려놓으셨다. 

두 분 다 묵어가신다.

같은 길을 걷는 사람들로서 넘들에겐 또 내놓지 못하는 이야기들을

두루 나누고 의논하다.

 

그리고, 시 한 편 읽는다,

'밤이 되기에는 등이 부족하고, 새벽이 되기에는 가슴이 남아'돌아.


 

나는 오늘 이 고통을 세사르 바예호로 겪는 것이 아닙니다. 예술가로도, 인간으로도, 살아 있는 존재로도 겪는 것이 아닙니다. 카톨릭 신자, 이슬람교도, 무신론자로도 겪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고통스러워할 뿐입니다. 내가 세사르 바예호가 아니었다 해도 이 고통을 겪었을 것입니다. 예술가가 아니었다 해도 겪었을 것이며, 인간이 아니었다 해도,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해도 이 고통을 겪었을 것입니다. 카톨릭 신자, 이슬람교도, 무신론자가 아니었다 해도 겪었을 것입니다. 오늘은 저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단지 고통을 겪을 뿐입니다.

 

지금 나는 이유 없이 아픕니다. 나의 아픔은 너무나 깊은 것이어서 원인도 없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원인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요? 그 원인이 되다 그만둔 그 중요한 것은 어디로 가버렸을까요? 아무것도 그 원인이 아닙니다만 어느 것도 원인이 아닌 것 또한 없습니다. 왜 이 아픔은 저절로 생겨난 걸까요? 내 아픔은 북녘바람의 것이며 동시에 남녘바람의 것이기도 합니다. 마치 이상야릇한 새들이 바람을 품어 낳은 중성의 알이라고나 할까요? 내 연인이 죽었다 해도, 이 아픔은 똑같을 것입니다. 목을 잘랐다 해도 역시 똑같은 아픔을 느꼈을 것입니다. 삶이 다른 형태로 진행되었다 해도, 역시 이 아픔은 똑같았을 것입니다. 오늘 나는 위로부터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그저 단지 괴로울 따름입니다.

 

배고픈 사람의 고통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그의 배고픔이 나의 고통과는 먼 것임을 봅니다. 내가 죽는 순간까지 굶게 된다면, 적어도 내 무덤에서는 억새풀이라도 하나 자라겠지요.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샘도 없고 닳지도 않는 나의 피에 비하면 그대의 피는 얼마나 풍요로운지 모릅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필연적으로 아버지나 아들이 되어야 한다고 지금까지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나의 이 고통은 아버지도 아들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밤이 되기에는 등이 부족하고, 새벽이 되기에는 가슴이 남아돕니다. 그리고, 어두운 방에 두면 빛나지 않을 것이고, 밝은 방에 두면 그림자가 없을 것입니다. 어쨌든지간에 오늘 나는 괴롭습니다. 오늘은 그저 괴로울 뿐입니다.

 

- 세사르 바예호 시선집,『희망에 대해 말씀드리지요』가운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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