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7.25.달날. 가끔 구름

조회 수 722 추천 수 0 2016.08.10 16:14:34


 

대해리도 33도.

 

1989년 시작한 물꼬가 대해리 학교 공간을 쓴 게 어언 20년.

그것도 첫 해는 서류절차 없이 그냥 썼으니 무려 21년차.

폐교된 학교를 96년 가을부터 썼는데,

2001년까지는 그렇게 서울과 영동을 오가며 학교가 꾸려졌고,

2003년부터는 서울에서 짐을 꾸려 아주 영동으로 오게 되었다.

을의 자리가 어디라고 다를까.

20년을 아주 성실한 세입자였고, 허물어져가는 학교를 윤낸 훌륭한 관리자였는데,

그것도 문을 닫은 학교를 다시 학교의 기능으로 살려내 쓰는,

이만하면 이제 좀 관계를 다르게 맺어도 좋지 않을까,

도교육청에 요청한 바가 있었다.

드디어 그 건으로 오늘 지원청에서 다녀갔다.

오래 벼르던 일이었고, 올해를 넘기지 않으리라던 일이었는데,

부담만 많고 손에 잡히지는 않던 일이 그렇게 걸음을 떼고 있는 중.

순조롭고, 일이 되어가는 것이 고맙다.

 

19:50 그랑 통화를 하고 있는데 빗방울이 떨어졌다.

더 내리지 않아도 하늘이 마른 땅을 잊지 않고 있음을 말하는 것 같아

반갑고 고마웠다.

기표샘의 연락.

자신에게 쉽지 않은 시기인데 계자에서 아이들 맞으러 나가는 날 상황을 보며

계자를 신청한 교사들 면면을 보고는 자신의 빈자리를 발견하고

함께 걱정하고 움직임을 그려봐 준다.

아이들을 맞으러 나가는 날 운전 상황이 원활해보이지 않는 거다.

아니면 내가 나가야 할.

밥바라지가 없는 속에 밥의 중심인데다 전체 진행자이니 움직임이 여간 재지 않을 것.

상주하지 않아도 다들 그렇게 움직임을 확인해주고

물꼬를 같이들 꾸려간다.

주축교사의 대부분은

여기서 초등 계자를 경험했고 중고생 새끼일꾼을 거쳐 품앗이샘들.

참말 귀한 자리이다, 여기 물꼬!

 

조카가 일가 어른들이 가는 여행에 동행했더랬는데,

사진을 정리하여 묶어왔다, 여정도 써서.

뭔가 그러자면 시간도 들여야 하고 공도 들여야.

기특하고 고마웠다.

야무진 그이다.

마음을 전하는 법을 어린 사람에게 또 배우나니.

늘 그렇게 나를 가르치는 우리 아이들!

 

하나가 이러하면 다른 하나가 또 저러할지니,

도교육청에 요청한 일이 마음 좋은 반면

야박한 메일을 하나 보내고 마음 잠시 가라앉아있는 밤이다.

‘다름이 아니라..여름계자비용을 조정할 수 있을까 해서요. ^^;

금액조정이 얼마까지 될 수 있을까요?

애들이 커가니 나가는 비용이 만만찮아 연락드립니다.ㅜㅜ’

물꼬의 교육일정 참가비는 형편에 따라 낼 수 있다.

그런데, 과부사정 홀아비가 안다고 당신이 어려운 사정인데도

물꼬 또한 넉넉한 살림이 아닌 줄들 아시고

정말 하실 수 있는 만큼들 부담을 하시기도 한다.

그 마음씀에서 얼마나 많은 걸 배워왔던지.

어떤 사정이신가 여쭈었다.

‘특별한 사연이라 하니...뭐라 적기에 그러하네요.;;

캠프비랑 물가는 계속 오르는데 저희는 재정상태가 녹록치 않아 한 번 여쭤봤습니다. ㅜㅜ;;’

 

‘쉽지 않은 말씀하셨을 터인데...

 

그러게요, 갈수록 어째 사는 일이 쉽지 않은 대한민국이네요.

물꼬 형편도 말씀드리자면...

교장 일을 보는 저부터 이곳에선 어느 누구도 임금을 받고 일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자원봉사이지요.

물꼬는 약간의 후원(논두렁)과 교육일정 참가비로 살아가는데,

그마저도 한 해 운영은 턱없고, 제가 나가는 강연이나 바깥수업(치유수업 등) 혹은 원고료로 나머지를 메웁니다.

(그렇게 일 년을 살지만 그건 다른 별일, 공사라든지, 생기지 않을 때 겨우 꾸려지는.

보수공사라든지는 고스란히 빚을 안게 되는.)

그나마 임금이 나가지 않으니 운영이 가능한.

이곳의 교육에 대한 질감은 어느 곳에 견줄 게 아니라고 자부하지만

사실 공간의 열악함에 비하면 계자 참가비가 낮지는 않은 줄 압니다.

그러니까 계자에는 학교 살림 후원인 측면이 포함되어 있는 거지요.

계자를 보내는 가정들인 경우

대개 물꼬를 오래 만나며 물꼬의 존립을 같이 고민해주시는 분들이 적지 않아

일일이 양해를 구하진 않았지만 어느 정도 이런 사정에 대한 이해가 깔려있답니다.

 

살기가 만만찮기야 어디라도 매한가지여

올해는 형편이 좋지 않은 아이가 다른 때보다 더 많은지라

이 경우라면 참가비를 다 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마셨다. 고마웠다.

 

그리고, 사랑에 확신이 없다는 그대에게.

사실 낸들 어이 알랴만

뭔가가 그대에게 주어졌을 때 가장 좋은 걸 상대에게 주고 싶다면

그런 것도 내 마음을 아는 단면 아닐까 싶더라.

그 좋은 걸 내가 더 갖고 싶다면

그 마음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 욕심을 또 보는 것 아닐까 싶기도 하더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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