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7.26.불날. 구름 조금

조회 수 748 추천 수 0 2016.08.10 16:16:53


    

이 삼복에도 수행은 계속된다.

이른 아침부터 땀을 흠뻑 흘리고 개운하게 아침을 연다.

 

마을을 나갔다 왔다.

예년이라면 청계가 끝난 한 주 뒤 계자,

이번에는 그 사이에 두 주나 있다.

아무래도 여유가 좀 있다.

마치 이런 더위를 예견이라도 했는 양 다행하다.

한 대안학교의 교사 모꼬지에 잠시 들리다.

더운 날에 애들 쓰신다. 훌륭하다.

 

돌아오는 길 한 다인의 다실에 들린다.

진기하고 값난 다기들보다 오래된 시골농가의 정갈한 뒤란이 더 감동이었다.

후미진 곳이야말로 어떤 공간의 맨얼굴.

어느 구석이고 손이 가지 않은 데가 없었다.

깨진 다탁을 얻다.

차를 마시며 물을 바로 내릴 수 있는 다탁이,

중국황실다례를 하고 있으면 다해라고도 하는 그것의 필요가 큰데,

하나 있으면 좋으리 오래 바랬더니

이렇게 손에 오는 날이 있더라.

도자기 재질로 금이 간 곳이 있으나 그게 대수일까.

마침 주인장이 깨진 자기를 붙일 수 있는 에폭시 접착제를 준비해두어

당장 그 자리에서 고치기 시작했다.

상 위에 금간 곳은 메우고,

측면 아주 크게 벌어진 곳은 그것대로의 멋이라 하며 벌어진 채 두었다.

주인장은 깨지지 않도록 야물게 채비하여 실어주었고,

큰살림에 잘 쓰일 거라고 커다란 대야며 채반들이며도 트렁크에 넣어주었다.

일전에는 종이타올의 잔뜩 보내주시더니...

여기저기서 돌봐주는 물꼬 살림이다.

 

물꼬가 폐교된 대해분교를 써온 지 20년,

이제 새로운 상황을 만들려 도교육청과 조율에 있다.

어제는 지원청에서 그 일과 관련하여 서둘러 다녀가더니

오늘은 또 도교육청 담당과장이 급히 다녀갔다.

교육감 비서실에서 전화가 들어오고

교육감과 서로 일정을 맞춰보다 보니 당장 내일로 약속이 잡혔으니,

그쪽에서 급히 현장을 봐야 했을 터.

일이 잘 되어가려는지 일단 걸음은 빠르다.

 

계자 참가비를 조율하는 일들이 이어진다.

적어도 돈이 없어 못 오는 아이는 없도록 하려해왔다.

(그런데도 어려운 사정에서 여러 차례 나눠서라도 참가비를 다 챙겨 보내주실 땐

 이곳 형편을 살펴봐준 그 마음에 무어라 말씀 드릴 수 없는 고마움이...)

그렇다고 그 사정에 대해 어떤 증명서를 요구하거나 그런 건 아니고

그저 어째서 그리하고자 하는지 당신의 형편을 묻기는 한다.

올여름은 어느 해보다 그런 가정이 많은데,

오늘도 한 분께 답글 드렸다.

 

‘물꼬는 교장 일을 보는 저를 비롯 어느 누구도 임금을 받지 않습니다.

달마다 조금씩 보태는 후원(논두렁) 얼마쯤과 교육 일정 참가비(그것도 형편에 따라들 내는),

그것으로는 한해 살림이 어림도 없어

제가 바깥수업(치유수업) 혹은 강의, 더하여 원고료를 보태 살아간답니다.

어려운 말씀 나누어주셨는데

선뜻 그냥 보내주십시오, 하지 못해 외려 죄송합니다.

 

사실은 ‘형편대로’라는 제도가 때로는 서운함도 일으켰음을 고백합니다.

큰 아이 어학연수 혹은 해외여행을 보낸다고

작은 아이 물꼬에 보내면서는 형편이 아니 되어 덜 보낸다,

가족 여행 다녀와 물꼬 참가비를 낼 여력이 안 된다 할 때,

물꼬는 그래도 되는 공간이라는 게 고맙기도 하지만

물꼬의 가치가 그만큼의 비용을 지불할 만큼이라고 생각지 않는 건가 한편 서운하기도 한 그런 때도 있는.

마음이란 걸 살펴보는 좋은 공부가 된단 말이지요.

명상이 달래 명상이겠는지.

 

헌데, 어머님 메일 읽으며 마음이 참 좋았습니다.

형편을 세세히 말씀해주셔서 고마웠고

(형편이 어렵다, 사정 이야기 없이 딱 그 말만 하는 분도 있는),

얼마를 보낼 수 있는데 괜찮겠느냐 그리 물어주셔서 고마웠고

(어려우니 형편대로 하겠다 하고 얼마를 보내겠다 말없이 그저 자신이 결정하여 내는 분도 있는),

그것이 또 적지 않아 물꼬 살림을 헤아려주셨다 싶어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그 부모가 어이 말했든,

참가비를 어찌 내었든,

단 한 번도 그것으로 아이를 바라본 적 없답니다.

참가비에 대한 건 재정 일을 돕는 이와 저만 아는 일.’

 

그리고, 그대의 연애에 부쳐-.

같은 상황에도 다른 해석들이 있지,

예컨대 효자 아들 이불 이야기처럼.

겨울저녁 아들은 아비가 들어오기 전 그 이불에 들어가 자리를 뎁혔다지.

그 효자 아들 이야기를 듣고 다른 댁 아들도 그리하였다는데,

이 아들은 아비한테 혼쭐만 났네, 버릇없이 저 먼저 들어갔다고.

효자를 만드는 것도 불효자를 만드는 것도 아비였으니.

어차피 자기 수준, 수위만큼 해석하는 법 아니겠는지.

그가 욕심쟁이로 보이면 내가 욕심쟁이어서 그럴 수도 있을 것.

꼭 어디 내가 예뻐서 예쁘게 보나. 그가 예쁘게 봐주는 것.

그를 예쁘게 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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