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는 사람들과 달골과 민주지산 일대에서 비박을 한다.

맞을 준비를 하는 날.

 

소나기가 얇게 지났고,

바예호의 시가 닿았다.

아르헨티나의 보르헤스, 칠레의 네루다, 멕시코의 파스,

그리고 한국에 김수영이 있었고, 페루에 바예호가 있었다.

엊그제 바예호 시집을 문득 꺼냈더니

오늘 사랑하는 벗도 그의 시를 보내왔다.

그도 이 시집을 쥐고 있는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같은 흐름을 타고 있을 때 마음 더 좋지.

 

 

인간은 슬퍼하고 기침하는 존재…

 

세사르 바예호

 

인간은 슬퍼하고 기침하는 존재.

그러나, 뜨거운 가슴에 들뜨는 존재.

그저 하는 일이라곤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어두운 포유동물, 빗질할 줄 아는

존재라고

공평하고 냉정하게 생각해볼 때……

 

노동의 결과로

서서히 만들어진 것이 인간이며,

상사이며, 부하인 존재.

세월의 도표는 상사의 명패에

빠짐없이 투시되지만,

까마득한 그 옛날부터

백성의 굶주린 방정식에 대해

상사의 눈은 반만 열려 있음을 고려해볼 때……

 

인간이 때로 생각에 잠겨

울고 싶어하며, 자신을 하나의 물건처럼

쉽사리 내팽개치고,

훌륭한 목수도 되고, 땀 흘리고, 죽이고

그러고도 노래하고, 밥 먹고, 단추 채운다는 것을

어렵잖게 이해한다고 할 때……

 

인간이 진정

하나의 동물이기는 하나, 고개를 돌릴 때

그의 슬픔이 내 뇌리에 박힌다는 점을 고려해볼 때……

 

인간이 가진 물건, 변소,

절망, 자신의 잔인한 하루를 마감하면서,

그 하루를 지우는 존재임을 생각해볼 때……

 

내가 사랑함을 알고,

사랑하기에 미워하는데도,

인간은 내게 무관심하다는 것을 이해한다고 할 때……

 

인간의 모든 서류를 살펴볼 때,

아주 조그맣게 태어났음을 증명하는 서류까지

안경을 써가며 볼 때……

 

손짓을 하자 내게

온다.

나는 감동에 겨워 그를 얼싸안는다.

어쩌겠는가? 그저 감동, 감동에 겨울 뿐……

 

; <희망에 대해 말씀드리지요>(바예호 시선집/문학과 지성사, 1998)

 

아, ‘어쩌겠는가’.

처연한 사람살이라.

어쩌겠는가, 살아갈 밖에.

어쩌겠는가, 안을 밖에.

인간의 그 참을 수 없는 숱한 낯 뜨거움과 삶의 할큄 속에서도

그래도 저버릴 수 없는 그 무엇으로 일어나

믿고 모색하고 사랑하고 연대하고,

그렇다고 결코 또 다른 할큄을 피해갈 수도 없는 사람의 일 사이를 저만치에서 걸어오는 사람,

그들이 날 살렸고, 나로 그가 살지니,

눈물 나는 우리 삶이여, 사람, 사람, 사람이여,

‘죽창가’의 ‘되라 하네 되고자 하네’의 구절처럼.

천지인의 ‘청계천 8가’도 흥얼거리노니.

“칠흑 같은 밤 쓸쓸한 청계천 8가/산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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