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다온다 하고 이 산마을을 잊고 지나가버린 비였다.

저녁 버스가 들어올 무렵,

멀리서 보내운 반가운 이들의 인사가 소나기를 물고 왔다.

그저 넘의 집 가는 길에 들린 듯 잠시였으나

기온을 내려 숨통을 틔워준 비님이었다.

 

민주지산에서 비박을 하고 내려와 하룻밤을 묵은 사람들이 떠나고

그 자리로 연규샘 들어오다.

계자(계절자유학교) 준비위 활동 시작.

내일은 태우샘이 들어온다.

이가 누구인가. 일곱 살에 물꼬를 왔고,

계자 아이였던 그가 중고생 새끼일꾼을 거쳐 제대를 하고 온다.

쇠날에는 휘령샘과 정환샘이 들어와 계자를 같이 준비해주고

해날 아이들을 맞은 뒤 나간다.

화목샘도 들어온다.

계자 준비는 교무실 앉은뱅이 책상에 쌓인 우편물과 널린 책을 정리하는 순간이

그 시작점이다. 일상의 쌓인 일들의 단면.

나흘의 손님맞이 그리고 비박의 고단함을 잠시 풀려 해먹에서 흔들거렸으나

곧 들어온 전화를 시작으로 교무실에서 작업을 했다.

아차차, 등산화에서부터 등산용품들을 꺼내 널고 말리고 여미는 일도.

 

저녁밥상.

찬을 늘여놓는 밥상도 좋으나 중심 요리에 집중해서 간단하게 먹는 밥상이

산골 삶다운 소박함과 외려 격조 있는 풍경이 되기도.

서구에 있을 때 주로 차리던 밥상이 그러했다. 

오늘은 밭에서 갓 따온 가지와 물꼬 닭들이 낳은 달걀이 주재료였다.

 

한 어른의 문자.

어차피 죽을 인생 왜 태어났을까요...’

그러게.

태어났으므로 살지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까닭.

죽지 않을 바에야 살아야.

그것도 잘 살아야 할 것!

내가 좀 더 괜찮은 사람이 될 거라는 믿음도 우리의 내일을 밀고 가는 좋은 길.

삶에서 만나는 소소한 기쁨이 주는 그 빛나는 순간이 또한 우리 삶을 밀고 가지요.

하여 마음 좋게 유쾌하게 살 일.’

답 문자는 그러했다.

물꼬의 논두렁 한 분과 오랜만에 연락이 닿았다.

그 사이 퇴직을 하고 먼 여행을 다녀오셨단다.

좀 쉬는 중에 물꼬에 인사 맨 먼저 넣게 된.

그간 애쓰신 시간들, 식사 자리 한 번 마련하여 찬사키로.

크게 의지하던 어머니를 잃고 사는 일이 더욱 고달파진,

그래서 누구도 만나지 않고 있던 나이든 품앗이샘 하나도 연결이 되었다.

고맙다, 그래도 어려운 시간 물꼬가 생각나서.

사람들은 그렇게 이곳에 마음을 부린다.

여기 사는 내게도 물꼬가 고마운.

이곳이 여행지고, 이곳이 안식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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