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도. 체감온도 35도.

20년 대해리 생활 가운데 가장 더운 날이었다.

고개를 숙이고 일을 하고 있으니 목에 흐른 땀으로 땀띠가 다 생긴.

“하기야 늘 ‘지금’을 사는 사람이라 꼭 가장 더운 날이 맞는지는 또 모르겠네.”

 

달골에서 주말을 묵을 열 사람을 위해 채비를 하고 내려오는 동안

아래에선 정환샘을 중심으로 점심 밥상을 준비했다. 스물 가까이.

그렇게 또 시간을 벌어주었다.

모두가 들어오자 오래 온 사람들도 많으나 처음처럼 또 학교를 한 바퀴 돈다; 물꼬 투어.

그건 물꼬에서 어떤 활동들을 하는지 이해하는 시간.

늘 하는 짓도 잊기 쉬운 게 사람인데

하물며 간간이 오면야 익기가 어디 쉬울까.

 

청소를 나눠서 시작할 때,

달골에 묵기로 한 열의 식구들이 와 다시 또 학교 한 바퀴.

오랜 벗이자 물꼬의 든든한 후원자인 옥미샘과 그 가족들 열이

이번 주말 달골 공간을 쓰게 된.

다른 이라면 마음 쓰여 이맘 때 방문자를 받을 수 없을 테지만 그러할 만한 그네.

연규샘이 이번에 교무 일을 맡으며 계자 전체를 관장하니

물꼬투어를 안내할 짬이 나오더라.

그런데, 첫걸음하는 밥바라지 1호기 엄마가 도착한 시간이 같은 때.

대해리 들머리 버스정류장에 내려 예까지 실어주어야 할.

아이를 데리고 이 뙤약볕에 짧은 길 아니기에.

마침 주인샘을 내려주러 온 이영심 엄마네가

(주인샘이 주윤발을 닮았다고 소개한 제 아버지랑 말이지)

깜짝 나타나 그 일을 또 도왔네.

물꼬가 상설학교로 문을 열었던 2004년 큰 아이의 입학을 모색하던 분들이셨으니

그 인연이 또 십수 년.

 

162 계자 미리모임.

사람이 많다. 저녁 밥상에 아이 하나 포함 스물한 명.

이것만도 일정 한 덩어리이다.

그 밥을, 점심과 저녁을 정환샘을 중심으로 차려냈다.

누구신가, 이런 사람을 키워낸 부모님은?

더러 요리를 잘하는 이들을 보지만 이곳에서는 그 양에 기함들을 토하는.

“교육부에 청원서 내야 해, 교사 뽑을 때 밥 시켜보라고.”

뭐나 잘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밥은 할 줄 알아야지, 선생이라면 말이다.

제 밥 한 숟갈 할 줄도 모르면서 무슨 선생이냔 말이다.

뭐 물꼬가 하는 생각이 그렇다는 거다.

그런데, 양만 해내도 대단한데, 맛있기까지!

“내일 아침도 내리 하는 걸로!”

“메뉴만 정해주시면...”

어! 한단다. 할 수 있단다. 해보겠단다.

“내가 살다 살다 이런 호사를 다...”

덕분에 계자 준비로 밀고 온 시간이 고단을 잠시 풀다.

밥상에 앉기 전 샘들은 물꼬 수영장 거인폭포로 가서

아이들과 갈 자리를 미리 점검도 하고 왔다, 그 사이 또 한뼘 자랐을 풀들도 베어내고.

물에도 풍덩!

 

사는 일이 무에 그리 대단한 게 있으랴,

우리 늙고 금세 죽을 거다.

사는 게 뭐라고 좋은 벗들과 마음 좋게 지내는 시간이 최고일세.

그것도 띵까띵까가 아니라

(띵까띵까가 국어사전에도 있는 부사임을, 온전한 낱말임을 이제야 알았다)

의미 있는 날을 같이 보낸다면야 더욱.

“그리고, 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일인가.

  아이의 삶 가운데 한 부분을 그 부모들이 아이를 눈앞에서 볼 수 없는 그 시간,

  우리들이 그들 앞에 있습니다.“”

소름 돋도록 엄청난 일인 거지.

다시 화들짝 놀란 양 우리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되새기다.

“스물한 살 외대 영어동시통역과 2학년입니다.

 초등 2년에 물꼬랑 처음 만났고, 동생 둘도 물꼬를 다녔어요.

  물꼬 오면 솔직히 너무 힘든데, 피서 가는 거다 싶더니 여기도 역시 덥고,

  역시나 열심히 살고 있고, ...

  여기 오는 것은 제 삶에 값진 경험, 돈으로 살 수 없는,

  여름 덥고 겨울 춥고... 그래도 그 가치를 알고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인영샘이었다.

연규샘이 물꼬 13년차,

화목샘이 물꼬 5년차, 군대 다녀와,

기표샘 무려 19년차, 휘령샘 8년차, 정환샘이 6년차,

새끼일꾼 11학년 해찬이 9년차,

태희 5년차, 현지 11년차, 도영 7년차,

지혜가 긴 공백을 거치긴 했으나 물꼬 12년차,

주인샘은 청소년계자부터 왔더라지.

드디어 새끼일꾼으로 진입한 8학년 윤호가 물꼬 6년차.

그리고 올 방학 계자도 같이 계자를 꾸리게 된 교원대샘들, 민혜샘, 예지샘, 경민샘, 예경샘, 현택샘, 소연샘.

작년에 친구 따라 방문한 적이 있는 수현샘이 계자 첫발,

지나간 겨울 계자를 같이 한 뒤 이미 물꼬 사람임을 증명했다는 효기.

밥바라지 1호기 수경엄마, 2호기는 사흘째부터 합류.

새끼일꾼 포함 스물 셋의 어른이 이번 계자를 꾸린다.

 

“좋자고 하는 일이다!”

뜨겁게 땀 흘린 경험이 우리를 좀 더 나은 사람이도록 할 것이다.

얼마나 귀한 인연들인가, 이 산마을에 이리 모여.

얼마 전 한 대안학교 교장샘의 심정을 들었다.

세상으로 나가면 늘 주눅들어버리더라지, 학교가 자꾸 쇠하여 가고, 당신 늙어가고.

그러고 보면 물꼬는 터무니없이 당당하다, 제일 큰 학교이기라도 한 양.

그 당당함과 자신감이 어디서 나오는가?

물꼬 역사를 만들어온 바로 이 샘들로부터, 내 뒤에 샘들이 있어 그럴!

 

밤, 공간마다 마지막 준비를 하고.

경주에서 오는 영욱이와 희정이는 부모님들이 한밤에 부려주고 갔다.

내일 아침 먹을 밥도 정환샘을 중심으로 차린다; 무려 어른 스물둘에 아이 셋.

아, 161 계자 전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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