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39.4도, 우리는 숲에 있었더랬습니다.

2008년 도입된 폭염특보제가 오늘 우리나라 모든 지역에 처음으로 내려졌다고.

오후 4시 경주가 39.4도로 가장 높고, 영천 39.3도, 합천 38.7도, 밀양 37.8도,

대구·안동, 서울 35.9도 의성 37.2도, 대구 37.1도, 영덕 36.7도.

이런 날 아래 있었더라면...

절묘한 물꼬의 날씨, 물꼬의 흐름이라...

“오후 3시에 가마솥방 식탁이 뜨끈뜨끈했어요.”

산을 내려왔더니 학교 아저씨가 그랬지요.

 

여느 날과 달리 서두른 아침이었습니다,

버스는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으니까.

새벽 5시, 밥바라지 엄마들이 밥을 준비,

6시 샘들이 김치김밥을 쌌고,

06:30 새끼일꾼들 일어나 아이들을 깨우고 이불정리,

07:10 아침밥,

07:40 산오름 복장 확인,

07:50 교문 출발,

08:20 대해리 들머리 헐목에서 물한리행 버스에 올랐습니다.

 

10분여 달려 민주지산 물한계곡 주차장에 부려졌지요.

해우소들을 다녀오고, 산오름을 위한 안내를 듣습니다.

오늘은 민주지산이나 삼도봉 정상 혹은 석기봉이 목표가 아닙니다.

날이 너무 더운 까닭도 있지만,

소슬바람같이 이는 깊은 계곡의 호젓한 길을 아이들과 걷고 싶은 이 여름이었지요.

삼도봉을 향한 길을 타다가 석기봉 쪽으로 가는 은주암골을 탈 것입니다.

‘은주암골엔 누가 살았나’,

09:00 민주지산 들머리에서 출발.

 

늘 이야기와 함께하는 산오름입니다.

옛적 왕의 폭정에서 살기 힘들었던 백성들이,

죽은 자, 태어나지 않은 아이에게까지 세금을 매기니 살기 어려워진,

새로운 나라를 꿈꾸며 산에 숨어들었습니다.

힘이 없으니 처음엔 역모를 꿈꾸는 세력과 결탁하여 난을 꿈꾸나

그들은 그들의 이익으로 백성을 이용하려 한다는 걸 깨닫고

이제 백성들끼리만 혁명을 도모하여 모여든 곳이 은주암골.

굳건하게 주인(백성)을 은혜롭게 섬기는 절 은주암이 있는 골짜기.

거기 깊고 너른 굴 하나에 들었는데,

군사를 앞세운 왕은 혁명가의 가족들을 볼모로 산을 나오라합니다.

가족들도 산으로 구해내려

한 아낙이 시집올 때 입은 붉은 치마를 잘라 나무마다 매달아 표식을 하는데,

군사들인들 그것을 못 보나요, 어디.

그런데 그 리본들의 끝은 은주암으로 이어졌습니다.

일찍이 백성들을 구하는 삶을 꿈꾸었던 주지 스님은

시주를 위해 오는 불자들을 위한 끈이라며 군사들을 따돌려 혁명가들의 가족을 숨겨주고

쌀이며 먹을 것들로 혁명가들을 돕지요.

하지만 군사에 대적할 힘이 혁명가들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결국 산을 포위하고 들어온 무장한 군사들에 못 이겨 훗날을 기약하며 산을 내려가는데,

한 사람을 남겨 도망치게 하지요.

우리들의 생각을 널리 알려 달라, 그러면 그 뜻에 동의하는 이들이 또 있으리라,

그리하여 그 생각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이제 백성들도 힘을 합쳐 나라를 전복할 수 있음을 깨달은 왕과 정치가들이

더 이상 그들 마음대로 나라를 주무르지 못합니다.

그 생각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늘날에도 눈 부라린 이들이 있다는 걸 알고

위정자들이 저들 맘대로 권력을 휘두를 수 없게 되지요.

은주암골 은주암굴에서의 그들의 뜻이 비록 실패하였지만

지금도 그 정신은 그렇게 이어지고 있다 합니다.

그 은주암굴을 향해 가는 오늘의 산오름입니다.

오늘은 옛적 그 아낙의 치맛자락처럼

‘자유학교 물꼬’라 적힌 리본들을 나무에 매달며 가는 길이었지요.

 

잣나무 숲길을 가로질러 삼도봉으로 향했습니다.

계곡 둘을 지나 석기봉으로 가는 길에 접어들었지요.

이제부터는 물꼬가 ‘티벳길’이라 부르는,

저기 깎아지른 아래로 계곡을 끼고 걷는 오솔길입니다.

길이 끊어져 오랫동안 드는 사람이 없다가 최근에야 다듬어진 곳이지요.

 

어느새 은주암굴입니다.

안쪽은 물이 차올라 들어갈 수 있는 곳은 그리 길지 않았으나

기표샘과 화목샘이 먼저 들어가 안쪽에서 경계를 치고

아이들이 다섯씩 들어갔지요.

“머리 조심!”

“와 냉장고다!”

“엄청 시원해요!”

“추워요, 추워!”

굴이 있는 것에 놀라고, 그 서늘함에 놀라고, 신기해라 했습니다.

정말 이야기 속에 나오는 그 굴이라니!

(이 일대는 일제시대 탄광지역이라 더러 이런 굴들이 발견됩니다.)

 

돌아오며 갈림길 너른 계곡에서 오래 오래 물놀이를 했지요,

도시락도 먹고.

지루할 즈음 물을 나와 다시 길을 되밟아 주차장에 도착.

다시 몸을 축이러 들어간 계곡에서 우리는 ‘평화’롭고 ‘행복’했습니다.

몇몇의 샘들은 위에서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었고,

또 몇은 아이들 속에서 같이 첨벙거렸지요.

같이 들어 꽤 너른 곳에서 물장구를 치다 그늘로 들앉았는데,

앞에서 용욱 채성 결 재현 민수 여원... 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이거 삼계탕 솥단지야.”

“나는 살아있는 닭!”

“삼계탕에 또 뭐가 들어가지? 너는 대추!”

“저는 파요.”

“파도 들어가나?”

“그냥 넣어요.”

그러다 상어도 되고 거북이도 되고...

아이들과 만드는 정토와 천국, 극락에서 즐겁기도 즐거웠습니다.

 

안에만 있다가 이렇게 밖으로 나오면 서로의 면면을 또 보게 되고,

다른 관계들도 맺고 더 이해하고 더 가까워집니다.

병준이는 물꼬에서 돌아갔으면 후회했을 거라지요.

이틀째 밤부터 사흘째 오전까지 눈물바람까지 하며 집에 보내달라던 그였습니다.

다니는 학교의 반도 좋지만 자신이 욱하는 성질이 있는데,

물꼬에 있으면 마음이 좋은 것 같아 신기하다 했지요.

90%가 다르답니다.

새끼일꾼으로도 오고 싶다네요.

처음엔 친구들이 싸우는 것도 불편했지만

지금은 건호가 이안이를 불편해하는 게 마음에 걸린다고.

채성이는 도영 형님 뒤로 가면 초코파이가 없다고 하면 막 뛰어갑니다.

계자의 산오름 때마다 맨 뒤에서 샘들 손을 붙잡고 올라야 했던 그였지요.

오늘은 손도 안 잡고, 저 앞에서 걷고 있었습니다.

또 성큼 자란 거지요.

현택샘은 하은이랑 하준이랑 걸으며 소소한 일상들을 나누고,

예지샘은 인영이랑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인영이는 예지샘을 착한샘이라며 좋은 선생님이 되실 거라 북돋았습니다.

아이의 찬사와 격려에 모든 피곤이 사라지고 가슴이 뜨거워졌더라는 예지샘.

채성이는 예지샘을 기억해준다 했지요.

‘아이들은 스치는 말로 한 것일 수도 있지만 이런 한마디가 교사가 오랜 꿈인 나를 간절하게 만들었다.’(예지샘의 하루재기 가운데서)

 

산에 오르는 일이 힘이 들고, 힘이 드니 몸이 더 많이 떨리던 뚜렛장애 이안이는

한두 걸음에 한번은 몸을 격렬하게 떨어

곁에서 주인샘이 손을 잡아 균형을 맞춰주어야 했지요.

하지만 걸었습니다. 올랐지요. 마침내 끝에 이르렀습니다.

계자 동안 우준이와 민이는 이안잉를 끊임없이 모두 속으로 불러들여주었고,

이안이도 적극적으로 모든 일정에 함께했지요.

‘아이들이 자꾸 침을 튀긴다고 불편함을 겉으로 드러내는 것이 기분 나빴을 법함.

그럼에도 무너지지 않는 것이 존경스러움.’(주인샘)

‘이안이는 본인이 남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상황에서는 한없이 예의바르고 말도 차분하게 잘하는데 본인이 불편하고 힘든 상황에 놓이게 되면 다른 아이와 마찬가지로 투정을 꽤 부린다.’(수현샘)

 

서연이는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첫째 누나가 스물다섯 살인 용욱이는 막둥이인데

형제가 여자 여자 여자 남자라서 자신이 가문을 이을 장손이라는군요.

인영이는 얼마나 밝아졌는지 모릅니다.

우리 모두 산을 오를 수 없으리라 걱정한 현이는

소리 지르고 징징거리는 것이 산에 다 흩어져버렸습니다.

동행한 수현샘의 역도 컸을 것.

장난도 선을 지키고 말에 잘 귀 기울이며 친절한 재현은

산에서 더욱 그러하였네요.

6남매도 산 아래 시작부터 싸워대더니 산을 오르는데 집중하자 싸울 일이 없어졌지요.

싸워대던 체력을 산오름으로 발산시킨 때문 아니었을지.

민이는 정말 의젓했습니다.

낚싯대로 쓸 막대를 들고 휘두르기도 했는데

들고만 가자 약속하니 끝까지 그리하였다지요.

생태주의자 정은이는 가마솥방에 있던 설악산 케이블카 반대 현수막에도 관심을 보이더니

생태보호에 관한 이야깃거리를 여럿 나눠주었습니다.

우준이는 찬우를 격려하며도 가고 있었지요.

아이들이 어른들을 챙기며 가기도 했습니다.

“제 깊은 걱정이 뭐라구요?”

“샘들요!”

어른들이 걱정이지요.

아이들의 대답처럼 산행조차 아이들 걱정 안합니다.

그들은 자연에 더 가까운 존재들이니 더 편히 걸을 터.

희정이는 태희 형님을 챙기며 가고 있네요.

 

헐목에서 학교로 2km를 다시 걸어 들어오는 길.

하은이에게 물을 주려고 하자

자기 차례가 아니라며 다른 아이에게 먼저 물을 내밀었습니다.

하준이가 코피가 나서 우준이가 멀리서 큰소리로 샘들을 불러 주었네요.

이제 1학년인 아이가 고단했을 겝니다. 동선이 긴 이곳이니, 게다 오늘은 산행까지.

뙤약볕 아래 땀으로 흠뻑 젖은 몸,

학교 마당 그늘 드리운 평상에선 팥빙수와 쪄낸 옥수수가 기다리고 있었지요.

스물일곱(원우가 빠진) 아이들과 열일곱의 샘들 무사귀환!

모다 애쓰셨습니다.

 

남은 사람들은 남은 이들대로, 아래는 또 아래의 일이 있으니, 학교를 건사했습니다.

배탈이 난 소연샘(집 떠나 이 불편한 곳에서 퍽 걱정입니다), 예경샘과 지혜형님,

밥바라지 1, 2호기 엄마들이

아이들 보낸 뒷자리를, 그리고 맞을 앞자리를 정리하고 있었지요,

먼저 돌아가게 된 원우의 마지막 즐거움을 위해 소연샘이 오목 장기 알까기도 하고,

밥바라지 1호기 엄마를 배웅도 해주었습니다.

2호기 엄마 김수현샘은 날마다 아이들 컵을 뜨거운 물에 소독하더니

오늘은 행주와 앞치마를 빨아 볕에 널고,

부엌을 다 뒤집어 선반 모든 곳, 양념 바구들까지 죄 윤을 내주었습니다.

아, 누가 그리해줄 것인가요.

일 잘하는 줄 지난여름 청계에 손 보태실 때 일찍이 알았지만

마음을 다 내신 움직임!

‘소연 예경 샘들과 남아서 설거지부터 빨래, 교무실에서 가마솥방까지 최대한 깨끗이 하려고 애썼다. 아무리 쓸고 닦아도 물꼬에서는 티가 나지 않는 법. 지금의 물꼬를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손들이 바삐 움직였을까. 밥바라지 1호기 샘이 가고, 2호샘이 너무 열심히 움직여주셨다. 모든 식기들을 소독하고 점심까지 만들어주신다. 손맛으로 만든 수제비.

점심을 먹으며 물꼬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잠시 그때의 물꼬는 어땠었을까 하는 생각에 잠기고, 그 장면이 내 상상이겠지마는 진짜 눈앞에 보였다.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이 보였고, 갑자기 내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오늘 밥바라지 샘들의 노고를 똑똑히 알고 느끼고 더 감사하고 겸손한 마음을 가지게 됐다.). 옥샘의 청춘이 바쳐진 물꼬라는 점이 약간 쓰라렸을까.’(지혜 형님)

 

샘들은 늘어졌는데,

팥빙수를 먹고 다시 뛰는 아이들입니다. 역시!

이 삼복더위에 축구라니요.

방에서는 재현이와 용욱이가 메뉴그림을 그리고 놀고,

몇은 이안이의 그림을 구경하고,

희정이랑 송인 여원 서윤이는 샘들과 무서운 이야기 이어달리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한데모임.

왜 산에 갔는가를 물었지요.

은주암골 얘기를 들으려고, 건강하라고, 좋은 기운 받으라고, 살아가는데 힘내라고,

서로 협력하라고, 더우니까, 굴에 들어가서 시원할라고, 모기 밥 줄라고, ...

그 모든 게 답일 테지요.

우준이는 이안이 형이 잘 다녀와 대단하다고 했습니다.

넘치도록 노래도, 이번 계자에 좀 덜 불렀던 그 노래들을

오늘은 마을이 떠나가라 불렀습니다.

왔던 아이들, 그러니까 물꼬의 선배들이 부르는 ‘신아외기소리’도

학교 가득 울려 퍼졌습니다.

이들은 또 다음에 올 이들에게 선배가 되어

먼저 익힌 것들을 알려주고 노래 부를 테지요.

‘오늘은 마지막 활동날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한데모임 때 아이들이 모여 노래를 부르는 모습조차 뭉클하기도 했다.’(예지샘)

 

대동놀이로 강강술래 한판 놉니다.

재밌데요, 재밌습디다. 늘 해도 신이 납니다.

이런 단순한 가락과 놀이로 이토록 흥겨울 수 있다니

늘 하면서도 언제나 새로이 즐겁습니다.

현이 주체하지 못하는 흥으로 한가운데서 춤을 추었지요.

장작놀이. 서쪽 하늘로 뜬 반달이 별을 달고 있는 밤이었지요.

‘쌤들 하루재기 하기 직전에 화장실을 다녀왔는데 그때는 들어간 달과 별들이였어서 물꼬의 기적이, 아이들을 환하게 비추기 위해 나타난 별과 달이, 일어났구나 새삼 느꼈습니다.’(인영샘)

노래와 노래가 잇고, 우리들이 보낸 그간의 시간을 한마디씩 갈무리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거의 광란 수준의 인디언놀이.

모두 온 마당을 복도를 방을 뛰어다녔고 시커매졌다지요.

우리들은 자유로웠고, 그 자유는 우리는 한껏 살맛나게 했습니다,

여기서 보낸 어느 시간인들 그렇지 않았을까만.

 

샘들 하루재기.

‘아이들의 끈기와 인내심을 보는 시간이었다.’(효기 형님)

‘‘산’이라는 공간이 주는 안정감, 편안함 이런 게 있는 것 같아요. 물꼬 학교 안에 있기만 하면 싸우고 감정이 상하던 아이들이 산에서는 마음이 그래도 누그러지는 것 같아요. 보통의 산행이 아니라 은주암골까지만 올라 계곡에서도 쉬엄쉬엄 쉬다가 오는 널럴한 여정이였어서 좋았습니다.’(인영샘)

작은 발로 산을 오르고, 힘들지만 멈추지 않고, 모르지만 겁내지 않고,

아이들이 더 참는다는 말을 실감들 했다 합니다.

‘아이들을 보며 멋진 모습, 못된 모습들이 있는데, 멋진 모습보다도 그 둘이 같이 있다는 것이 아이들의 오늘과 내일이 기대되는 이유라 생각함’(주인샘)

태희 형님,

내가 지금 지내고 쓰고 있는 시간들이 정말 소중하구나 생각을 정말 많이 했다고.

경민샘은 건호랑 나눈 대화를 전했지요.

해미는 장애를 가지고 있는데 다른 게 없어 보여요, 하더랍니다.

화를 못 참는 성격인건 알지만 그냥 그런 것뿐인 것 같다고,

그런데 굉장히 맞는 말이라 놀랐다는 경민샘.

‘그래서 장애를 가진 건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와 다를 건 없다고 했다. 우리도 마음에 상처를 입으면 그것이 마음에 일어난 장애이듯 다르지 않은 친구라고. 그래서 굉장히 기특했다. 생각하는 바를 솔직하게 털어내 주었고, 그 시선이 굉장히 담백했기에.’(경민샘)

‘현이란 아이는 본능에 참 충실한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팥빙수가 먹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올라가고... 단순히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아니라 순수하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아이라고 생각하자 현이를 바라보는 느낌이 달라졌다. 모든 아이를 이런 방법으로 받아들이기는 힘들 테지만 노력은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화목샘)

누가 누구를 가르친단 말입니까,

아이들이 우리를 가르칩니다.

‘오늘 병준이가 말하길 집 가고 싶다며 울던 놈이 내후년에는 새끼일꾼이 되어서 같이 보낸다. 무량, 규민이도 새끼일꾼이 될 날이 올 것이라는 기대감에 들떠있었다. 나도 어린이였지만 그 어린아이들이 샘이 된다는 게 사실 상상은 잘 안 갔다. 지금은 너무 어려 보이길래.’(지혜 형님)

 

불가에서 아이들이 한 말대로 이렇게 빨리 흐른 시간들이라니요.

시간이 더 있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6남매들에게.

받아들여진 경험들이 날선 아이들을 보다 누그러뜨릴 수 있게 할 것입니다.

사랑하고 사랑하고 또 사랑할 일.

장애만 하더라도, 누구나 장애에 늘 노출되어 있고, 누구나 죽지요, 태어났듯이,

그런 것을 사회가 안아낼 수 없다면 곁에 있는 어른들이 뭐라도 해야지 않을지.

그런데, 장애를 무기로 연민을 무기로,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데 스스로 상처 입히고 서로 할퀴고,

장애와 부모 없는 것이 유세처럼.

그래서 그것이 더 강화되는 것을 보여줄 땐 안타깝고 아팠습니다.

‘해미만 해도 화를 참을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행동하게 된다고 하는 말을

꼭 그래 보이지 않을 때에도 일종의 방어막처럼 쓰기도 하는 것 같다’는,

같이 사는 서연이가 했던 말이 곱씹어집니다.

부모가 없는 아이에게도, 장애를 갖고 있는 아이에게도

다른 거 없습니다. 그저 안고 안고 또 안아줄 일.

우리에게 사랑보다 앞서는 그 어떤 치유가 있겠는지.

헌데, 가난한 아이들이,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부모 없는 아이들이 갈 데가 흔치 않다는데

그들을 가장 많이 수용하는 곳이 어느 곳보다 열악한 물꼬라는 역설이라니.

 

이 더운 날 숲에서, 산마을에서 보내고 있음을

다시 깊이 감사해하는 밤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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