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 계자를 끝내고 남아있던 이들 가운데

낮 버스로 새끼일꾼 도영 형님과 건호를 보내는데

숨이 막혀 얼른 나무 그늘로 들어가야 했던 한낮이었다.

40도도 우스울 기온이라지만 그래도 여긴 그늘에 들면 전혀 다른 기후대.

기락샘이 그들을 영동역까지 태워나가고,

도영 형님은 건호를 지하철역까지 데려가 부모님께 팔기로 하였네.


동행하고픈 이들만 같이하기로 한 아침 수행방에는

연규샘 정환샘 희연샘이 함께했다.

밥상을 정환샘을 중심으로 차려내고

(정환샘은 계자 전에도 사람들을 그렇게 거둬 멕여 일을 덜어주었다.

세상에! 그런 예비 교사라니...),

교무실 곳간을 정리하고,

계자 때문에 자리를 떠났던 물건들을 다시 일상의 자리로 보내기.


어른계자에 조금씩 사람들의 관심이 넓혀지고 있다.

네 번째라고 하지만 첫 번째는 20여 년 가까이 된 늦봄, 엄마들이 모였던 반짝모임이었고,

두 번째는 어른계자를 처음 띄우며 품앗샘들이 몇 모였던,

그리고 지난해야 비로소 어른계자의 꼴새를 갖춘 처음이었던.

허니 두 번째 어른계자인 셈.

구호야 거창했지만

그저 피서이고 쉼이고, 그리고 자신에게 주는 선물일 시간.

누구랄 것 없이 우리 너무 바쁘게 살아들 가니.

모녀인 김상희님과 품앗이 여진샘이 복학 준비기와 겹쳐 못 왔고,

김수경님은 162 계자에서 이미 상담을 하고 떠났고,

품앗이 태우샘은 할머니가 위독하신 중이라 대기상태,

윤선의님 부부는 참가 고민만 하다 말았고,

공연규 김희연 마장순 문정환 사미자 최은용 홍인교 그리고 게스트 류기락,

그리고 상주 식구 둘, 그리하여 열이 먹는 밥상일 테다.

밤에는 12학년 류옥하다 선수도 들어와 밤참을 먹는 시간에 합류할 테고.


‘익히기’.

17:20 저녁 버스가 들어오고 사미자님 등장,

약사이신 당신은 162 계자를 끝낸 샘들을 위해 피로회복제를 주머니 주머니 담아왔다.

곧 자가용으로 최은용님도 도착.

홍인교님은 계자를 끝내고 하룻밤을 더 잔 건호를 맞이하고 내려온다고

내일 낮버스를 들어오기로.

“모두 어른 계자 구성원이면서 시작되는 순간 뒷배이기도 해요.”

연규샘 정환샘 희연샘 미자샘 은용샘,

마늘 까고 고구마순 줄기를 벗기며 손을 보태고 얼굴들을 익혔다.


물꼬 수영장, ‘서해바다’ 건너 이르는 곳 ‘거인폭포’.

더웠으니, 해 넘어가고도 열기 여전하니.

이번 구성원들이 주로 162 계자를 보냈던 아이들의 학부모이기도 하니

아이들이 움직인 동선을 따라가 보는 것도 의미 있으리.

그것이 또한 물꼬를 이루는 공간(안 만이 아니라)을 둘러보는 것이기도.

우리 아이들이 놀 듯 그렇게 돌미끄럼틀을 타고 내렸다.

처음엔 주춤거리던 아이들처럼 어른들도 위험하지 않을까 쭈빗쭈빗,

하지만 한 번만 타보면 다시 오르게 되는.

아래서 다른 이들은 환영의 물을 뿌려주었네.


저녁밥상.

일정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부려놓은 고기와 반찬과 주전부리와 곡주들 속에

장순샘이 밭에서 막 와 자두를 올려놓다.

누군가 밥을 하면 다른 누군가는 치운다.

물꼬의 작은 모임들에는 밥바라지 없이 옥영경이 밥을 내며 전체를 안내한다. 수행이다.


‘물꼬 한바퀴’.

자유학교 노래들을 손말로 익히고 나선 밤에 하는 물꼬 투어.

운동장을 향하는 세 개의 바깥 불을 다 켜고, 공간마다 모든 불을 또한 켰다.

물꼬에 불을 다 밝힌 건 처음 본다는 정환샘, 분위기 있더라고.

“그게 무슨 말이래?”

“낮에 하는 안내만 들었는데 뭔가 신비로운...”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을 끊임없이 외는 물꼬의 움직임과

물꼬가 하는 ‘일과 예술과 명상을 통한 교육’,

공간마다 그 의미와 하는 일,

그리하여 물꼬가 하는 생각을 엿보게 되었던 시간.


‘메아리’. 노래집을 펴들고 노래부터 하나 익혔네.

아카펠라.

악기 없이 사람의 목소리로 악기 되어 서로 맞춰 부르는 노래는

모두를 하나로 모아낸다.

하기야 어떤 음악인들 그렇지 않을까만.


‘마주보기’.

왜 왔는가를 물었다.

물꼬와의 인연도 되짚어보게 된다.

아이로 이곳에서 자라기도 했고,

교사로 준비하는 과정에 만나기도 했고,

아이를 보내며 물꼬를 알게 되기도 했다.

나? 스물둘에 시작해 낼모레 육십(이라고 한다) 할머니가 돼버렸다.


‘믿음의 동그라미’.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듣고 어떻게 반응할지를 나누다.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깊이 듣고, 따뜻하게 보며, 진심으로 받아들일 준비.


‘실타래’, 숙제검사라고도 부르는.

준비해온 자신의 이야기들.

미자샘은 약사로서 대안의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내 몸을 전문가들에게만 맡기지 말자는,

정환샘 희연샘은 어린 날의 기억을 중심으로 자신이 겪는 마음의 문제들을 내놓다.

우리는 끊임없이 흔들리는 존재,

그러면서 중심을 찾아나가는 게 삶 아닐지.

부모 자식 인연이 얼마나 깊은지,

부모 그늘이 천리라고 아니 가고 만리라고 아니 갈까,

저승에서도 자식 집 짓고 계실 부모일지라.

우리는 모두 아들딸이고 부모이거나 부모가 된다.

그 관계에 대한 이해가 결국 타인에 대한 이해와 받아들임이 되었던.


‘夜단법석’,

말 그대로 한밤에 단에 올라 법석을 떨지라.

자신을 풀어놓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것이 또한 다음 걸음을 걷는 힘이 되리.

달과 별과 바람이 되는 시간.


새벽 4시에야 가마솥방 불이 꺼졌고,

교무실은 아직 책상 불 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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