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건지기’.

새벽부터 밭에 들기로 한 아침,

그래도 절은 하고 가야지.

티벳 대배 백배로 이른 아침을 열고

감자를 으깨 채소를 다져넣은 속으로 샌드위치를 만들어 싸서

장순샘네 고추밭으로 갔다.


‘바다’.

때는 고추의 시절이라, 5천포기 고추가 늘어서 있는 밭에 늘어섰네.

아직 개지 않은 날이 일하기 좋았어라.

“판소리 가르쳐주세요.”

한 대목을 부르면 따라 부르기.

“그게 아니고...”

“아니, 웃기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 진짜 들리는 대로 따라 한 거예요.”

“그런데, 인교샘, 노래 할 때도 손은 고추를 따야지! 안되겠다, 일이 안 되겠네.”

이렇게 웃고 저렇게 웃고.

두 시간 넘어 되는 시간이 도움은 좀 되었을꼬. 그 많은 고추의 새 발의 피였을 것이라.

그래도 잠시 거든 일손에 마음이라도 푹할 주인장이었으면.

“친절해야 합니다. 내 작은 친절로 그가 살고 싶어질 수도 있을 것,

내가 친절한 그 순간이 누군가에겐 생의 가장 어려운 한 때일 수도 있을 것.”

“그런데, 어제 산에 갈 때도 그랬고, 다섯 명이 여행 다니는 것 같은...”

연규샘 말처럼 정말 여자 다섯이 하는 여행 같았던 시간.


마친보람’.

낮밥으로 채소죽을 준비하는 동안 갈무리글들을 썼다.

지난해는 자신의 핵심감정이 무엇인가 살피기도 했고나,

모인 이들이 같이 음식을 만들던 보글보글도 있었는데,

밤엔 그림명상도 하였더랬네,

이번에 준비한 ‘내 어린 날의 상징’ 시간도 못하고 지났네,

노래도 덜 불렀구나,

아, 사흘은 너무 짧다.

하지만 오롯이 자신에게 쓴 휴가.

“자신을 위해서 사흘도 낼 수 없는 생이 무슨 자기 생이래...”


비로소 2016학년도 여름 공식 일정이 다 끝났다.

후속 작업을 위해 연규샘이 남았고,

내일 금룡샘이 휴가를 이곳에서 보내려 들어올 것이다.

마당에 퍼질러 앉아 우리 보낸 여름날을 반추하다보니 어느새 자정에 이르렀더라.

정리하고 글 쓰며 한 주가 흐를 것이고,

여전히 내일은 또 내일의 방문자들이 있을 이곳.

한참은 더 본관이 잠자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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