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2016 여름, 어른계절자유학교 네 번째’를 같이 꾸린 이들이 남긴 갈무리글입니다.

늘처럼 맞춤법은 틀리더라도 고치지 않았으며,

띄어쓰기도 가능한 한 원문대로 옮겼습니다.

다만 의미 전달이 어려운 경우엔 띄워줌.

괄호 안에 ‘*’표시가 있는 것은 옮긴이가 주(註)를 단 것.

함께한 모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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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용:

이번 만남이 아니었다면 한번도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

옥샘, 희연샘, 정환샘, 인교샘, 미자샘, 연규샘, 장순샘, 정말 잊지 못할거예요.

우리 이안이가 처음 왔던 계절학교에서 똑같이 밥먹고 풀뽑고 절을 했고 산에 올랐었다고 자랑하던 그 산도 갔어요. 산을 오를 때 힘들었지만 옆에서 좋은 얘끼 해주시는 많은 분들과 함께하니 재미있기도 했습니다. 저의 얘기를 하고 싶어도 할 말이 없더라구요. 정말 자신을 위해서 뭔가를 했던 기억이 가물가물해요. 앞으로는 저를 위한 시간을 많이 가져서 다음 기회에는 나에 대한 얘기를 많이 늘어놓고 싶네요. 그리고 먹거리 하나도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고 모두들 열심히 살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여기에서 얻은 힘과 지혜로 얼마를 더 버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열심히 생활할게요.


사미자:

어른 계자 끝나는 지금 드는 생각은 진작에 왜 오지 못했나이다.

물꼬 이념, 물꼬 시스템, 물꼬 사람들이 좋아 아이를 물꼬 계자에 보냈지만, 나는 다른 곳을 여행다닐 시간을 기꺼이 내면서도 물꼬에서 마련하는 어른 대상 프로그램에는 시간적 제약을 내세워 참가하지 않았었다. 이번 계자에서 했던 것들은 백배, 숨 명상, 잡초 뽑기, 고추 다기, 산오르기, 계곡에 가서 물 담그기, 각자의 마음을 드러내놓는 야단법석 등이었다. 일을 하면서 느끼는 자신감, 뿌듯함, 행복감이 참 컸다. 땀이 뚝뚝 떨어지고, 그 속에서 더위와 함께하는 기쁨. 개인적으로 느끼는 행복감과 더불어 물꼬라는 공간이 주는 편안함과 너른 마음, 옥샘에게서 느껴지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 삶의 열정, 부지런함, 때론 단호함까지, 옥샘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내게도 전해져 나 또한 내 자리에서 열정, 애정, 나눔을 계속 이어갈 기운을 잔뜩 얻었다.

어느 곳을 여행하느냐 보다 누구와 여행하느냐가 더 기억에 남듯이 같이 한 인교샘을 보며 자극을 받았다. 좋은 것들을 나누려 행동하고 시부모에 대한 따뜻한 시선에서 넓은 아량을, 연규샘을 보며 최선을 다해 더 좋은 모습의 자신을 만들어가는 게 보여 예쁘고 대견하고 꼬옥 안아주고 싶었다. 은용샘에게는 힘내라고, 그리고 모든 게 잘 될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2박3일이 너무 금방 지나갔다. 이곳에 있던 모든 시간이 소중하고 이곳에 와 너무 큰 선물을 받고 간다. 참 행복하다.


홍인교:

오랜만에 왔네요.

참으로 오랜만에...

내가 갖고 가야 할 세 가지를 상상해 봅니다.

귀하고 소중한 것들 남들이 몰라줄 때 서운하고 속상한 마음 올라옵니다.

강요하고, 이해시키려고 합니다.

이젠 나의 진심을 호소하기로 합니다. 내가 이렇게 간절한데... 우리함께 해줄 수 없겠니?

내 안에 넘치는 에너지에 치여 어린 윤호가 버겁고 힘들었을 수 있네요. 내 욕망을 버리고 머리를 조아려 윤호 가는 앞길에 축복의 기도를 보내야겠네요.

나의 선함이 누군가에겐 살고 싶은 힘이 될 수 있음을 다시 기억해보네요. 친절한 사람이고자 했던 그 마음을 다시 꺼내어 내가 평안하실 그도 평안하길, 나의 친절이 그를 살게 하길. 내가 좋은 사람이 되기를 또다시 상기해보네요.

함께했던 미자쌤, 은용쌤, 연규쌤, 옥샘 모두 건강하시고 좋은 인연이 되어 감사하네요.

한결 같은 삼촌의 손길도 감사하구요.

깜빡 쪽잠을 잔 해먹 위에서 남편 생각이 나네요.

그마운, 참 귀하고 귀한 사람과 함께 잘 살아가야겠네요.


공연규:

곤했지만 따뜻한 시간이었습니다. 함께하신 분들게 좀 더 활기찬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하고 모든 활동에 열심히 참여하지 못해(* 연규샘은 162 계자를 하고 이어 어른계자를 내리 했음.) 아쉬웠지만, 그런 저를 다들 이해하고 배려해주셔서 한편으론 감사했습니다.

돌아보니 이번 어른계자는 저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샘들께서 치쳐있는 저에게 에너지를 불어넣어주시고, 저의 이야기에 공감해주시고, 좋은 어른들을 만나 사흘동안 가치롭고 따듯한 이야기, 눈빛, 마음, 감정을 나눌 수 있어 참 행복했구요,

어른계자동안 따뜻한 시간들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내고 나니 저를 예뻐해주시는 이모가 세 분이나 생긴 것 같아 든든하기도 해요.

이런 시간을 제게 선물해주신 물꼬, 인교샘, 은용샘, 미자샘, 장순샘, 옥샘께 감사드립니다.


문정환:

(* 반칙이다. 누가 이런 장문의 글을 쓰래. 기차에서 몇 자 써서 보내라 했더니 공부 안 하고 이걸 썼구만. 희연샘 글이랑 섞어 반반씩으로 해석해야겠네, 하하.)

쉼이 필요했던 시기, 마침 어른들을 위한 계자가 열린다고 하여 마찬가지로 쉼이 필요했던 절친한 후배 희연쌤과 함께 물꼬로 동행하게 되었다. 공식 일정은 흙날부터 달날까지였으나, 일정상 하루 일찍 들어가 하루 일찍 나갈 수 있도록 해주셔서 매우 감사드렸다. 그래서 초등 계자가 끝나는 쇠날부터 일정을 함께하기로 하였다.

쇠날 오전 중에 학교에서의 급한 일을 대강 마무리해놓고 희연쌤과 함께 영동으로 향하였다. 162계자를 마치고 갈무리를 하고 있는 장소에 도착하였다. 그곳은 이미 눈물바다. 체감온도 36도를 오르내리는 날씨 속에서 자신을 살피기보다 주변과 아이를 먼저 살펴야하는 일정이었는데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어 괜히 울컥해졌다. 아니, 그 눈물은 아마도 그 극한의 상황을 이겨내고 기적을 연출해 낸 그들이 느낀 감동 때문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인사를 나누고 다음을 기약하며 옥쌤, 연규쌤, 도영쌤, 훌쩍 커버린 건호, 희연쌤, 나는 어른 계자를 위한 장을 보고 학교로 향하게 되었다.

7명이 오늘 오늘 저녁은 나와 희연쌤이 책임지기로 하였다. 책임진다니 거창한 것을 만드는 것 같지만 소량의 밥과 고구마줄기 볶음이 전부였다. 옥쌤께서 ‘아무거나!’라고 말씀하셨으면 정말 막막했을 것 같은데, 고구마줄기라는 재료를 말씀해주셔서 전에 우리 어머니가 고구마줄기 볶음 해주셨던 것을 떠올리며 만들어보았다. 희연쌤이 먹기 좋게 손질해주어서 나는 그냥 볶기만 하면 되었다. 사실 고구마줄기 볶음은 처음 만들어보았다. 채식을 즐기지 않고서야 쉽게 생각하기 어려운 식재료인 것 같기도 하고, 빠르게 먹고 공부를 해야 하는 입장에서 고구마 줄기를 까서 껍질을 벗겨야하는 일은 매우 번거롭기 때문에 쉽게 하기 어려운 것 같다. 초등학교 5학년인 건호가 맛을 보더니 맛있다고 한다. 까다로운(?) 초등학생 입맛을 만족시켰기 때문에 정말 맛있게 되었나보다 생각했다. 연규쌤과 도영쌤이 산 치킨을 먹고 나중에 밥에 조금 먹어보았는데 어라.. 생각보다 괜찮은 음식인 것 같다. 훌륭한 밥도둑인 것 같다. 고구마줄기의 매력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항상 새로운 배움과 깨달음이 가득한 이곳, 물꼬의 매력이다.

나는 물꼬에서 밥을 하는 것이 참 좋다. 다른 사람들이 내가 한 것을 먹어주며 맛있다고 해주는 것에서 나의 존재가치를 느끼고 행복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내가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어서 참 좋다. 그냥 배고파서, 살려고, 억지로 어두컴컴한 자취방에서 밥을 하여 혼자 먹으면 정말 아무 맛도 못 느끼고 음식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데, 땀 흘리며 고생하는 저들을 위해 어떻게 하면 맛있게 만들까 고민하며 만들어 즐겁게 나누어 먹으면 기분이 좋고 음식도 맛있게 느껴지는 것 같다. 나중에 교사 생활 마무리짓게 되면 영화 심야식당에 나오는 주인 할아버지 같은 사람이 되어볼까도 싶다. 마음 맞는 사람들과 저녁을 먹으며 가볍게 곡주 한 잔 마신 이 날의 저녁은 정말 즐겁고 행복했다.

쇠날 밤에 유성우를 볼 수 있다는 기사를 접하고 옥쌤께 밤에 같이 보자고 건의 드려볼까 했는데 안 그래도 그런 생각을 갖고 계셨다고 한다. 나는 별똥별을 보는 경험이 처음이었다. 돗자리에 누워 유성우를 놓치지 않기 위해 밤하늘을 보는데, 가슴이 먹먹해졌다. 아마 나에게 이런 여유가 없었다는 것이 후회스러워서 그랬을 것이다. 떨어지는 별똥별에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하는 속설에 따라 소원을 빌기로 했다. 구체적인 소원을 빌면 그 사이에 별똥별이 지나가게 되므로 구체적인 소원을 정해 그것에 번호를 붙이기로 하였다. 별똥별이 지나가면 1번! 1번! 이런 식으로 외치는 것이다. 지금 가장 큰 고민은 임용시험이어서 1번 소원에 임용시험 합격을 빌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조금 후회스럽다. 임용시험이 다른 것 다 제쳐두고서 ‘1번’을 차지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싶어서이다. 나도 별 수 없는 인간이구나 싶었다.

날이 밝아 흙날이 되었다. 간만에 아침 수행을 하였다. 나눔을 하는데 건호가 울먹거렸다. 사정을 들어보니 오늘 집에 돌아가는데 혼자 돌아갈 것이 많이 걱정이 되었나보다. 혹시나 낯선 이가 악의를 품고 자신을 해치지 않을까 하는 걱정. 형과 함께 돌아가지 않고 하루 더 남아있는 것은 본인의 선택이다. 자신이 책임져야 할 사항이긴 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가 그만큼 각박하고 위험해졌다는 것 같아 마음이 안 좋았다. 문명은 갈수록 발전하여 편리해졌지만 왜 항상 우리는 주위를 살피며 조심해야하고, 마음 놓고 기차를 타지 못하며, 밤늦게 돌아다니지 못하는가 싶었다. 세월호 사건, 강남역 사건, 구의역 사건 등...최근에 있었던 일련의 사건들이 떠올랐다.

건호가 그렇게 먹고 싶어했던 잔치국수를 했고, 맛있게 먹어주어 보내는 마음이 한결 나아진 것 같았다. 기락쌤과 하다가 마침 영동역 방향으로 나가게 되어 건호와 도영이도 같이 나가게 되었다. 도영이가 가기 전에 옥쌤께 ‘다녀오겠습니다!’라고 하였다. 물꼬니까 할 수 있는 인사법인 것 같다. 마음만은 항상 물꼬에 있으며 나는 잠시 나가있는 것이라고 그렇게 여겨졌다. 그래서 물꼬에서의 떠나보냄은 그렇게 슬프지만은 않은 것 같다.

조금 있으면 어른 계자가 시작되므로 남아있는 사람은 남아있는 사람대로 각자 역할을 해야 했다. 연규쌤과 희연쌤과 나는 역할을 나누어 청소를 하여 손님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였다. 점심 먹고 잠깐 쉬기로 하였는데 연규쌤이 물꼬 들어와서 그동안 푹 쉬지도 못하고 힘들었을 것 같아 희연쌤과 둘이 깨기 전에 다 끝내보려 했지만 결국 깨버렸다. 물론 둘이서 끝내기엔 이곳은 매우 넓은 공간이다. 평소엔 삼촌과 옥쌤 두 분이서 학교를 관리하실텐데 정말 힘드시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도 여유가 있다면 자주 와서 도와드리고 싶다.

저녁먹을 즈음 여원이 어머님 미자쌤과 이안이 어머님 은용쌤이 학교로 들어오셨다. 어색한 기운을 눈치채셨는지, 옥쌤께서 제안을 하셨다. 계자 기간 동안 아이들이 어디서 지냈는지 보여드리면 좋겠다고. 그래서 연규쌤과 희연쌤과 같이 두 분을 모시고 아이들은 거인폭포라고 부르는 물꼬 수영장으로 갔다. 그 사이에 옥쌤은 저녁을 준비하시는 걸로. 두 어머님이 보시기엔 아이들이 놀았던 곳이 위태로워 보였나보다. 물론 나도 여름계자를 처음 경험해보았던 작년에 그렇게 느껴졌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아무렇지 않게 미끄럼틀도 타고 물장구도 치는 것을 보면서 겨우 안심했던 기억이 났다. 두 분을 안심시키기 위해 희연쌤, 연규쌤과 같이 어린아이마냥 미끄럼틀도 타고 물장구도 치는 모습을 보여드렸다. 그런데 미자쌤의 말이 압권이었다.

“정환쌤! 나 같으면 희연쌤 밀어버리고 그랬을텐데~”

“저 그러다가 희연이한테 무슨 짓을 당할지 몰라요!”

미자쌤 참 아는 것도 많으시고, 말도 잘하시고, 심지어 놀 줄도 아신다! 이런 분을 보고 팔방미인이라고 하는가보다. 돌아가려고 하는데 희연쌤이 벗어놓은 내 슬리퍼를 집어 멀리 던졌다. 후우... 미자쌤 말을 들을 것을 그랬다. 심지어 선견지명도 있으시다. 미자쌤 참 어마어마하신 분!

학교로 돌아가서 먹었던 옥쌤이 해주신 밥은 감동 그 자체였다. 육식을 하지 않으심에도 소불고기를 직접 재워두셔 볶아주셨고 텃밭에서 자란 호박으로 국을 끓여주셨고 직접 담그신 열무김치 등 정말 맛있었다. 빠르게 끼니를 때워야하는 상황 때문에 편의점 도시락, 라면 등 인스턴트 식품을 자주 먹었었는데 딱 봐도 건강에 좋아 보이는 제철음식을 먹으니 그 자체만으로도 힐링이 되고 위로 받는 느낌이어서 좋았다.

저녁을 먹고 어느 정도 휴식시간을 갖고 드디어 계자가 시작이 되었다. 처음 오시는 분들을 위한 물꼬투어가 있었고, 그 속에서 물꼬가 갖는 생각,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 교육이 어떠해야하는가에 대한 내용들도 담겨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때 가마솥방에 걸려 있는 학교 이념에 대해서 처음으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스스로 살려 섬기고 나누는 소박한 삶, 그리고 저 광활한 우주로 솟구쳐 오르는 나!’

나는 과연 자립이 가능한가? 나는 주체적인 사람인가? 나는 과연 스스로를 낮추고 타인을 높이는 삶을 살고 있는가? 행여나, 혹시라도 나는 타인을 무시하고 건방떨지 않았는가? 나는 내가 가진 것을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있는 사람인가? 나는 사회에 보탬이 되는 쓸모 있는 사람인가? 나는 소박한 삶을 살고 있는가? 나는 자유로운가? 등... 어떻게 보면 삶의 이정표, 나침반과 같은 글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여러번 보았던 글귀가 왜 이제야 나에게 깊게 다가오는 것일까? 물꼬의 이념이지만 누구나 좌우명으로 삼아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옥쌤께서 학교 이념을 설명해주신 순간이 나에게 참 깊은 울림을 주었던 순간이었던 것 같다.

서로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이안이 어머님, 은용쌤의 사정을 듣고 생각이 참 복잡해졌던 것 같다. 아직도 장애아동에 관한 인식이나 편견이 많이 문제가 되는 것 같고, 이들을 위한 인프라가 많이 부족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일단 나부터가 교사가 되었을 때 이들을 보살필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우리나라 최고의 교원양성기관이라고 자부하는 한국교원대학교에는 왜 특수교육과가 없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과 함께 회의감도 들었다. 이 때 진지하게 고민해보았다. 대학원에서라도 특수교육을 배워볼까 하고.

야단법석 시간에는 저마다 말하기 어려웠던, 물꼬라서 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풀어내었다. 미자쌤의 ‘과잉진단’에 관한 특강 및 건강 관련 지식들은 정말 도움이 많이 되었다. 항상 긍정적이고 쾌활한 후배 희연쌤에게도 그런 고민이 있는지 몰랐고, 연규쌤도 그런 그늘(정호승 시인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시가 생각나서요.)이 있는지 몰랐다. 그래, 그럴 것이다. 옥쌤은 항상 사물에는 이면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사람의 마음도 사물이라면, 마음은 가장 이면을 보기 힘든, 보이기도 싫은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내가 선생님이 되고 싶은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가장 보이기 싫은 부분이다. 가장 부끄럽고 후회스러운 기억 때문에 선생님이 되고자 결심했기 때문이다. 부끄럽지만 사람들 앞에서 털어내고 나니 비난은커녕 오히려 좋은 교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격려해주시고 응원해주셔서 매우 감사드렸다. 자신감이 많이 떨어져 있었는데 이렇게 응원해주시는 분들을 위해서라도 꼭 올해 열심히 해서 합격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공부에 대한 의욕이 돌아왔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하는 해날이 밝았다. 신기하게도 백배하는 것도 가뿐했고, 명상할 때도 매미소리가 기분 좋게 들려와 좋았다. 아침은 물꼬의 명물 콩나물국밥이었다. 옥쌤과의 약속을 어기고 과음을 했는데도 속 풀어주시려고 콩나물국을 끓어주셨다는 생각에 한없이 죄송했다.(아니라고 말씀하셔도 전 그렇게 생각할게요...죄송합니다.) 밥을 먹고 잠깐의 티타임을 가지고 목공실(구 숨꼬방) 주변의 풀을 뽑았다. 나무 판자들 사이에 자란 풀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들도 살아보겠다고 이렇게 열악한 곳에 뿌리를 내려 자라는데, 이에 비하면 나는 온실속의 화초인데... 난 뭐가 그렇게 불만이 많고 절실하지도 않고 축 쳐져있는 거지?’ 그 와중에 희연쌤이 노동요를 요청하였다. 연령대가 비슷한 사람이 있다면 못 부를게 없었으나, 두 어머니가 계셔서 눈치가 많이 보였다. 그러니깐... 그때는 모두가 알 수 있는 흥겨운 노동요가 떠오르지 않았다. 어릴 땐 잘 몰랐지만 커서 생각해보니 상황에 맞는 적절한 말이나, 회식 자리에서의 권주사나 노래 선곡 같은 레파토리는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 것이 꽤 유용할 때가 많다는 걸 느낀다. 이런 것들도 내가 잘 살고, 잘 쓰이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풀을 뽑고 들어가서 희연쌤과 나는 12시 20분 버스를 타기 위해 준비를 하였다. 준비하고 나왔더니 옥쌤께서 홍차에 오렌지주스를 블렌딩하신 것을 주셨는데 차를 이렇게 즐길 수도 있구나 싶었다. 신기해서 나중에 찾아봤더니 떼오오랑쥬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홍차에 약간 쓴맛이 있는데 이것에 약간 거부감이 있는 분들에겐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짖는 소리 때문에 시끄러워서 창밖을 보았더니 인교쌤이 들어오고 계셨다. 인교쌤과는 밥바라지로 맺어진 참 특별한 인연인데 다시 뵈니까 너무 반가웠다. 그런데 이렇게 오시자마자 헤어져야 해서 너무 아쉬웠다. 인사드리고 나오는데 아쉽기도 했지만 속으로는 차라리 잘됐다 싶기도 했다. 아무리 나나 희연쌤도 20살이 넘었다지만, 다른 분들이 보기엔 아직 어린 친구일테고, 자녀가 있으신 어머님들끼리 계시는 것도 더 죽이 잘 맞고 재미있으실 것이라는 생각에... 그 뒤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무튼 좋은 시간 보내다가 돌아오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이번 사흘이 나에겐 너무 꿈만 같은 시간들이었다. 너무 기분 좋아서 깨기 싫은 꿈같았다. 맛있는 음식도 많이 먹었고, 한여름밤에 돗자리 깔고 누워 별을 보는 여유도 갖고,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나의 꿈에 대해 격려와 응원도 받았고, 힘을 주셨다. 그리고 또 다음을 기약하였다. 이런 생활이 계속 될줄 알았는데 어느새 조치원역에 내리니까 꿈에서 깬 것 마냥 우울해졌다. 하지만 내가 잘 사는 것이 돕는 것이라는 말씀 기억하고, 다시 마음 가다듬어서 내 본업에 충실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험 잘 보고 이번 겨울 계자 기분 좋게 다녀갈 수 있으면 좋겠다.


김희연:

<지금 이 순간>

내가 숨쉬며 살고있는 지금 이 시간이 가장 소중하다는 것을 느끼고 갑니다. 항상 과거를 후회하거나 그리워하면서 나 스스로에게 고통을 주었습니다. 지금 내가 숨쉬고 있는 현재가 소중한 것을 느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수행을 하고, 어른계자 준비를 하고, 식사준비를 하고, 풀을 뽑는 등 몸으로 일을 하고 땀을 흘리면서 마음 정리를 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물꼬에서 지낸 시간을 잊지 않고 힘들때마다 마음을 가지런히 하며 살겠습니다. 임용고시 한 번에 끝내고 또 가겠습니다! 물꼬에서 만난 모든 분들께 감사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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