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좀 봐, 아침은 그리 외칠 만큼 맑았다.

멀리 가을이 걸어오는가.

운동장 가 은행잎들의 색은 어느새 여간해서 눈치 채기 어려울 만치 잃고 있었다.

흐려가는 오후,

가까운 마을에 소나기 내린다더만 대해리를 잊은 하늘이었다.

서울, 22년 만에 최고 기온 37도.


기록이란 얼마나 중요하던가.

오늘 흙집 뒤란 온수보일러에 생긴 문제로 보일러 사장님과 약간의 마찰.

계자 가운데 생긴 문제였지만 다행히 날이 더운 덕에

20일 이후로 미뤘던 일이다.

그런데, 히터봉을 언제 갈았는가로 보일러 기사와 설전

“여기고 저기 기숙사고 제가 간 적이 없어요, 절대.”

“제가 히터봉 그런 게 있다는 걸 어찌 알겠어요, 한 분야의 전문부품인 걸.”

교체했다는 이 측과 안 했다는 저 측의 다른 주장.

얼마를 보냈다는 기억도 있는데, 한사코 그런 일 없다는 저 쪽이다.

그러면 갈지도 않고 비용을 청구했던가.(아무렴 그렇기야 했겠냐만.)

“제가 일지며 들춰볼게요.”

“저도 알아보겠습니다.”

그런데, 간 기록이 없다는 거다.

헌데, 굳이 교무실까지 갈 것도 없었다.

먼저 생각했던 건 송금 기록을 확인하려했던 건데,

우리에겐 누리집의 ‘물꼬에선 요새’가 있지.

자잘한 기록들이 거기 담겨있다. 그런 일이라면 남겼음직도 하다.

검색어로 히터봉이라 치니 ‘2010. 7.16.쇠날. 비’가 떴다. 청계가 있었던 전 날이었더라.

와, 기록의 중요성!


달골 명상정원 ‘아침뜨樂’에 어떤 나무들을 심으면 좋을까 몇과 얘기들을 나누어 왔다.

한 선배는 나무 전문가한테도 물어 봤던 모양.

“감나무가 어떨까 하네.”

소식을 전하며 감나무가 담긴 여러 자료들도 함께 보냈다.

감나무는 칠절(七絶)이라.(당나라 문인 단성식이 쓴 수필집 <유양잡조>)

첫째 오래 살고, 둘째 좋은 그늘을 만들고, 셋째 새가 집을 짓지 않고, 넷째 벌레가 없으며, 다섯째 단풍이 아름답고, 여섯째 열매가 먹음직스럽고, 일곱째 잎이 크기에 그렇다지.

감나무는 오상(五常)이라.

잎에 글을 쓸 수 있으니 문(文)이고,

나무를 화살촉으로 쓰니 무(武)며,

열매의 겉과 속이 같아 충(忠)이고,

늙어 이가 빠져도 먹을 수 있으니 효(孝)며,

가을 끝까지 열매가 달려 있으니 절(節)이라

또한 감나무는 오색(五色)이라.

줄기의 검은색, 잎이 푸른색, 꽃의 노란색, 열매의 빨간색, 곶감의 흰색.


감나무, 좋겠다.

내 삶에 특별한 나무이기도 한 감나무이다.

어릴 적 살던 뒤란에는 커다란 감나무가 여럿이었고,

한 나무엔 하도 올라가 앉았던 거라.

외할아버지는 아예 거기 집을(말이 집이지 널 두어 장) 만들어주셨고,

심지어는 밥을 올려주기도 하셨다.

가지 끝에 먼저 익는 감을 따려다 그만 뚝 부러져

떨어져 내리며 커다란 바위에 얼굴이 갈려 어른들을 걱정시키기도 했고

(딱 그랬다니까. 지금도 볕 아래 얼굴의 얼룩이 보이는),

내 어린 날의 많은 날이 거기 있었던.

그런데 이 영동에 왔더니 가로수가 감나무라.

학교 마당에도 여럿 있다, 감나무.

감나무, 그래 좋겠다.


162 계자를 끝내고 돌아간 품앗이샘들의 평가글도 도착하기 시작.

‘... 그곳에서 불편하게 여겼던 화장실, 찬물로 샤워하기, 에어컨 없이 생활하기 등이 막상 집에 돌아와 생각해보니 그래도 정말 잘 지내다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만큼 집에서처럼 편하게 생활하지 않아도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이 불편한 곳에 왜 다시 아이들이 찾아오고, 아이들이 새끼일꾼으로, 새끼일꾼이 품앗이일꾼으로 오는지 몸으로, 마음으로 이해하게 되었어요. 저도 기회가 된다면 다음 계자 때 더욱 단단한 마음가짐으로 또 함께하고 싶습니다!!

...

아이들과 생활하면서 배우는 것도 많았지만, 함께 일했던 새끼일꾼, 품앗이일꾼들에게서 얻는 것도 정말 많았습니다. 새끼일꾼들은 저보다 어린나이이지만 아이들을 대할 땐 정말 저보다 능숙한 부분도 많고, 배울 점도 많았어요. 또 모든 샘들이 친절하게 알려주고 함께 도와주셔서 잘 지낼 수 있었습니다.

...

옥샘께서 계자동안 하셨던 말씀들도 너무 생생하게 떠올라요. 아이들에게 항상 ‘~이도 이유가 있어서 그랬을 거야. ~이는 왜 그런거야?’ 라고 차분히 물어보시고, 재치 있게 아이들을 대하시는 모습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또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나 시끄러운 아이들을 신경 쓰다가 조용한 아이들이 소외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말씀이 화살처럼 콕 와 닿았습니다. 제가 교사를 꿈꾸면서 항상 다짐했던 것이 조용한 아이들이 소외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어요. 학교에서 친구들을 보면 상대적으로 조용한 아이들이 그런 불만을 갖는 것을 많이 보았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정신없는 틈에 그것을 잊고 있었어요. 그래서 옥샘의 말씀이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집에 와서도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을 떠올려요^^ 샘들 하루재기 첫날부터 너무 마음에 와 닿는 말씀을 해주셔서 눈물이 났는데 하루재기 때마다 정말 좋은 말씀들을 듣고, 마음에 새길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처음에 낯을 가려서 샘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것도 아쉬운데, 다음에는 이야기도 더 많이 나누면서 좋은 시간 보내고 싶어요. 일주일동안 모두 정말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이제 개강하고 열심히 생활하다가 다음 계자 때 기회가 된다면 꼭 모두 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으윽, 어깨 통증이 가시지 않고 있다.

입안에는 새로운 부위에 혓바늘이 돋고,

다리의 뜸자리들엔 뒤늦은 물집이 생겨 가려움을 일게 한다.

여름 일정이 그렇게 몸에 남았다.

더웠던 여름이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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