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여름이었다.

어디 기온만을 말하겠는가.

청계가 있었고, 계자(초등)가 있었고, 어른 계자가 있었다.

그 앞뒤로 준비위 사람들과 갈무리 사람들이 있었다.

비로소 물꼬의 여느 고즈넉한 일상이다.

덕분에 어제 하루 잘 쉬었고,

몇과 통화도 했다.

품앗이 윤실샘은 아이 소식을 전했다.

노산인 둘째가 달을 못 채우고 1.3kg으로 태어났더랬다.

통화를 끝내고 닿은 문자,

목소리 들어 좋다고, 아이가 잘해주고 있어 행복하지만

‘그래도 샘 목소리 들으며 힘 얻을려고요’,

그래 그래 여기서 하는 가장 큰 일이 기도일 것이라.

목소리가 힘이라니 고맙고 또 고마울.

충남대 예비교사들 연수 일정도 논의했다.

9월 첫 주말로 1차를 잡을까 한다.

‘어려울 때 확 가서 막걸리를 마시고 싶다’는 한 품앗이샘의 푸념도 들었다.

그래 그래 오시라!

그럴 수 있는 곳이라니 고맙고 또 고마운.


오늘은 방문자가 있었다.

그저 좋은 마음으로 자신의 삶에 난 두 달 휴가의 막바지를

물꼬에 손발 보태주기로 한 사람이었다.

산골살림을 헤아려 우유며 달걀이며 주전부리거리며 라면이며 꽁치 고등어 통조림이며,

물통들이며 종이타올들이며 부엌살림에 요긴할 것들도 한가득 실어오고,

차와 와인과 다식들도 부려놓았다.

직접 만든 다식 나무접시도 내밀었고,

깊은 계곡에서 개암과 머루도 따왔다.

몇 가지 자잘한 잔손 일을 거들어주었다.

달골 햇발동의 두 개의 부러진 긴 걸레 봉을 고쳤고,

흔들거리는 국자 셋 목을 바로 잡았다.

달골 창고동에는 서서히 찻방을 마련해 가고 있는데,

거기 찻잔들을 얹을 작은 선반을 하나 걸었고,

햇발동 앞 소풍식탁에 파라솔을 걸기 위한 구멍도 뚫었다.

그리고,


국자 두 개가 끝 부분이 빠져나가 뭉툭하다.

처음의 그 길이는 쓰기에 좋은 길이로 만들어졌으니만큼

짧아진 국자는 아무래도 불편하다.

잠깐 그걸 잊고 뭔가를 떠다 그만 냄비 안으로 빠뜨리고는 한다.

제대로 길이를 가진 국자에 밀려

결국 주방서랍(이게 ‘설합(舌盒’에서 나온 말이라지)에 들어가 있던 것을

언제 꼬랑지를 달아주어야지 하고 밀쳐져 있었더랬다.

만만한 게 나무라, 나무 그거 얼마나 널렸고 쓰임이 많은 재료인지,

살구나무 죽은 가지를 생각해냈네,

살구나무 아래 만들어둔 긴 의자에 앉아

툭 쳐냈던 죽은 가지를 적당한 길이로 자르고

가운데를 중심으로 깎아내고 먼저 깎은 쪽을 구멍에 잘 끼운 뒤

돌려 잡고 나머지 쪽을 깎아냈다.

그런 다음 대야에 물을 떠다 적셔가며 물사포질을 했네.

말려 거기 콩기름을 발랐다.

세상에 단 하나 있는 국자가 그리 태어났다. 두 개.

쓰지 못할 물건을, (이런 일을 하고 있으면 곁에서들 꼭 그러지, 하나 사라고),

쓰일 수 있도록 하는 일,

실은 이런 일이 즐겁다.

30도가 넘은 기온이었으나 그늘은 바람 좋았고,

뿌듯하였으니.


밥을 먹고 소화를 시킨다고 밥상머리무대에서 판소리도 했다.

관객이래야 달랑 둘.

얼마 만에 피아노도 쳐보았던가.

잘하거나 못 하거나 우리 아이들이 다른 이들과 나누고픈 게 있을 때처럼

형편없는 피아노 연주에도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그저 즐거운 한 때였네.

그건 여름이 간다는 소리였고 가을이 그 거리만큼 가깝다는 소리였다.

누구도 비난 혹은 부정적인 비판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 또한 그러하다.

진심으로 애정을 가진 비판은 기꺼이 받아들여지고, 고맙다.

나 역시 아이들에게, 동료들에게 자칫 그저 내 마음에 들지 않기에 하는 비판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를 위해 말하고자 함.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일찍이 옥샘은 화를 내지 않아요, 했다.

툭하면 화를 내는데도 그게 화로 가지 않았음은

해당 일만을 거론하며 그 일이 마땅히 화를 낼만하다고 아이들도 인정하기 때문이었을 것.

잘한다고 치켜세우지도 않았지만 못 한다 비난도 없었네.

그래서 소리는 편안했고, 그래서 좋았다.


저녁상을 물리고 방문자는 편히 쉬다가

차를 나누고 야삼경 이르러서야 돌아갔다.

아름다운 산마을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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